한 해의 마지막을 지나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소란하다. 이럴 때 문화며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삶을 견디게 하는 건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다. 2016년, 우리가 누린 문화와 예술.

 

book

작은 서점들
한때 유행쯤으로 여겨졌던 ‘작은 동네 서점’은 올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책보다 굿즈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 같은 대형 서점과 정작 책을 만져볼 수는 없는 온라인 서점 사이에서 각자의 큐레이션으로 선보이는 소규모 책방이 역할을 했다. 작년 가을 문을 연 요조의 ‘책방 무사’에 이어 노홍철이 ‘철든 책방’을 열었고, 신촌에는 미스터리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이 장르 마니아들을 맞았다. 서점과 거리가 먼 듯했던 도산공원에도 포스트 포에틱스와 땡스 북스가 함께 큐레이션한 ‘파크’가 등장했다.

시를 얻다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27쇄에 돌입했다. 문학동네 트위터 계정에서 ‘박준님의 시집을 지어다가 수십 쇄는 찍었다’는 유쾌한 글을 게재했을 정도다. 황인찬의 시집 <희지의 세계>는 7쇄에 돌입했고, 올해 발표된 오은의 <유에서 유>, 허수경의 신작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최초의 시집 서점으로, 시인 유희경이 운영하는 위트앤시니컬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문인들의 문화 살롱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 팍팍한 삶 때문에 시의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분석도, 다른 책값에 비해 저렴하기에 불황 속에서도 지갑을 연다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올해 우리들은 시에 기대고, 시로 위로받았다.

 

ALR_161110_1084_R0다시, 문예지
지난해 민음사에서 발행하는 <세계의 문학>이 40년 만에 폐간한 후 격월간지 <릿터>가 창간되었다. 기존 문예지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연결하겠다는 의도다.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과지성사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는 가을호를 혁신호로 내놓았다. 본권과 별권으로 나누고, 본권에는 문학 작품을 싣고 별권에서는 자유로운 글을 다뤘다. 문예지가 새로운 독자에게 손을 뻗는다.

하루키 효과
새 책이 출간될 때마다 출판사 간의 판권 전쟁을 촉발하는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오랜만의 하루키 에세이집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지만, 수십 년간 사랑받아온 작가로서의 삶을 한번쯤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누끼-오늘의젊은작가13_82년생 김지영_입체북올해의 ‘헬조선’ 상
작년 <한국이 싫어서>가 있었다면 올해는 <82년생 김지영>이 있었다. 조남주 작가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딸 하나를 둔 서른네 살의 여성 김지영이다. 그녀는 한국인이므로 당연히 한국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경험했고, 한국 회사를 다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 이 땅에서 ‘평범한 여성’으로 사는 것의 고단함이여!

주목할 만한 시선 3
페미니즘
“지금은 거의 모든 출판사가 페미니즘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 혐오에 맞서 연대하려는,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독자들이 페미니즘 책을 선택한 것. 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나쁜 페미니스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미니멀 라이프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 불안한 주거 환경 속에서 내면의 균형과 안정을 이루려는 노력은 ‘미니멀리즘’과 일본식 ‘단샤리’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번역서가 인기를 끌자 국내출판사가 기획한 국내 작가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싱글
사회 변화도 변화지만 출판계에서 싱글, 그것도 싱글 여성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싱글 여성이 출판 시장을 떠받치는 가장 거대한 독자군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가장 많이 사는 연령대는 30대 싱글 여성이다. 책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이 그렇다. 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을 자유>, <모든 사람은 혼자다>, <인생학교 혼자 있는 법>

예술계_성폭력
공통된 해시태그가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서브컬처계를 중심으로 촉발된 작은 불씨는 문학, 미술, 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인생은,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삶의 가치를 주장해온 예술계의 폭력과 위선은, 바로 그들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독자를 잃는 위기를 초래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참담함은 피해자의 고통에 비할 수 없었다. 예술계 내 자성론이 일며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