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아이돌이었던 젝스키스가 YG와 계약을 맺으며 21세기의 아이돌 시장에 귀환했다. 15년 넘게 아이돌 팬으로 살아온 에디터가 바라본 격변의 아이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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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는 거 맞니 얘들아? 오빠는 음성사서함 시대라…ㅋㅋㅋ” 강성훈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음성사서함과 인스타그램의 간극에서, ‘격세지감’이라는 사자성어를 난생처음 실감한 것이다! 자타공인 ‘아이돌 덕후’로 살아온 지도 어언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아이돌 산업은 정교해졌고, 팬덤 문화는 공고해졌다. 1세대 아이돌인 H.O.T와 젝키, S.E.S와 핑클이 있던 시대, 그들의 히트곡은 그 해의 노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엑소가 발매 이틀 만에 30만 장의 앨범을 팔아 치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으르렁’만 겨우 아는 세상. 나처럼 아이돌 문화 전체를 소비하는 사람을 부르는 표현도 조금 바뀌었다. ‘잡’에서 ‘올팬’, ‘올수니’로. 뭐, 관심 없는 사람들 보기엔 대체 뭐가 다른가 싶겠지만.

물론 깊은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 내려오는 명언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멤버, 일명 ‘최애’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정말 첫눈에 빠지는 사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덕통사고’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내 인생 첫 번째 덕통사고는 2001년, ‘백전무패’를 외치던 당시의 클릭비 유호석 덕에 벌어졌다. TV 속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데, 가슴이 설레고 그 사람이 화면 밖으로 무한 확장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적 있나? 지오디와 신화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우리 학년에서 클릭비 팬은 나 포함 두 명뿐. 그래도 처음치고는 꽤 살뜰히 팬질을 했다. 친구들과 잡지 사진을 교환하고, 편집부에 정성 어린 엽서를 보내 유호석이 사인한 폴라로이드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 유튜브와 토렌트가 없던 때였기 때문에 ‘본방사수’와 ‘비디오 녹화’는 필수였다. 시간과 마음은 넘쳐나서, 러브장을 쓰기 시작했다. 사춘기 소녀가 쓰는 모든 글은 ‘오빠 멋있어요’로 시작해, ‘제 하루는 어땠어요’를 거쳐 ‘오빠 덕분에 힘이 났어요’ 로 끝난다. 그 러브장은 부치지 않았지만 이미 일주일에 두세 통의 팬레터도 보내고 있긴 했다. 지방에 사는 중학생 팬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처럼 많은 듯 많지 않았다. 부지런히 투표를 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녹화한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돌려보는 것 외에는.

‘사랑이 취미’라고 했던 가을방학의 노래처럼, 7인조의 클릭비가 사라진 이후 나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동방신기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김기범이 있던 시절의 슈퍼주니어는 꽤 좋아했고, 현재는 SM의 모든 아티스트를 유심히 지켜보는 가벼운 수준의 ‘SM 농노’로 지낸다. 박재범이 있던 2PM, 망원동 시절의 인피니트, 발재간을 부리던 틴탑도 좋았다. 하지만 집에서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정도의 열정이었다. 무대 위 걸그룹의 미모는 얼마나 완벽하며, 리얼리티 쇼 속 보이그룹은 얼마나 귀여운가! 함께 ‘오빠’를 외쳤던 친구들 대부분이 비스트와 2PM 이후 업데이트를 멈춘 후에도 꿋꿋했던 내게 두 번째 ‘덕통사고’ 역시 아무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14년, ‘Danger’로 활동하던 방탄소년단이었다. 유호석 이후 13년 만의 사고였으니 다시 한 번 느끼는 격세지감! 이번에 내 뺨을 내려친 것은 ‘진’이었다. (검색창에 ‘차문남’을 검색해보세요!)

10여 년 전과 달리, 발을 깊게 담그려고 하니 자료는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블로그 일기, 멤버들이 직접 운영하는 트위터, 팬들이 찍은 영상과 직캠뿐 아니라 소속사에서 직접 촬영한 대기실이나 연습실에서 멤버들의 모습까지 올라오는 유튜브, 거기에 브이앱도 가세했다. 반면 험난한 점도 있었다. 클릭비를 좋아하던 시절, 라디오 공개방송이 있다면 공개된 시간, 그 장소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음악방송에 나오는 방탄소년단을 보려면 앨범 CD와 응원봉인 아미밤, 음원 다운로드 내역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도 팬카페에서 정해진 시간에 신청 댓글을 재빨리 달아 선착순 내에 들어야 한다(이를 ‘댓림픽’이라고 부른다). 팬 사인회도 아무나 갈 수 없다. 특정 기간 동안 정해진 매장에서 앨범을 사서 당첨된 인원만이 갈 수 있고, 그래서 앨범을 수십 장, 심하면 100여 장씩 사는 일이 벌어진다. 십수 년 전, 클릭비 사인회에 가기 위해 내가 했던 일은 그냥 학교를 조퇴하고 일찍 줄을 서 있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또한 자라서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오사카에서 방탄소년단을 봤다(두 번은 출장 일정과 겹쳤다). 그나마 방탄소년단의 팬덤이 엄청나게 커져버린 지금, 앞으로는 티케팅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얼마 전 마카오 콘서트 예매는 처참히 실패했다.

아이돌과 팬, 그 기묘한 관계
대체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아이돌 문화에 심취하게 된 걸까? 케이팝 열풍의 대부분을 견인하는 아이돌 문화는, 사실 한국이라서 가능한 문화다. 우선 우리 사회에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자기 관리’라는 차원에서 외모 지적을 하는 것에 큰 반발감이 없다. AOA가 지금처럼 인기를 얻기 전, 소속사의 리얼리티 쇼였던 <청담동 111>에서 50kg이 넘는다는 이유로 설현이 얼마나 수모를 겪었는지 아는가? 중학생인 전소미가 일주일 동안 바나나만 먹어서 4kg을 뺐다고 해도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꿈’과 ‘열정’을 담보로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는 문화도 자연스럽다.  아이돌 시장이 체계화되면서 연습생들은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한다. 회사는 물론 연습생들끼리도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사회적으로도 ‘대학에 가면’ , ‘성공을 하면’이라는 말로 혹독한 학습을 시키는 것이 허락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돌은 실력보다 외모라고 하지만, 이제 아이돌에게 외모는 1차 통과선일 뿐이며, 어느 정도는 데뷔 이후에 만들어진다. 아이돌 팬이 몰입하고 지지하는 것은 바로 데뷔 전과 그 이후에 존재하는 ‘노력’과 ‘꿈’의 서사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처럼 하나하나 드러나지 않을 뿐 구색을 갖춘 아이돌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기 때문이다. 데뷔 후 인고의 신인 시절을 거쳐 다행히 인기를 얻고 나면, 엄청난 스케줄과 사생활의 희생이 뒤따른다. 예전처럼 국내 활동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비행기에 오르는 것은 예사이고, 팬 사인회, SNS, 브이앱, 안무 영상과 메이킹영상 같은 팬 서비스 영상을 제작하며 팬과도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이건 마치 끝없이 출발선에 오르는 운동선수를 보는 것 같다.애정을 갖고 한번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지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레이스다.

물론 ‘팬심’의 근간은 누군가를 한없이 좋아할 때 찾아오는 순수한 기쁨이다. 정말로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나고, 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당사자가 볼 확률이 낮은데도 생일을 맞은 멤버를 위해 신문과 버스나 지하철역에 광고를 내는 것은, 그렇게라도 해서 전하고 싶은 애정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이름을 걸고 봉사활동을 가고, 아이돌이 드라마나 영화에라도 출연하면 스태프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밥차’를 보낸다. ‘우리 아이 예쁘게 잘봐주세요’라는 제스처다. 애정은 때로 왜곡된다. 이미 오래전에 김동완이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이른바 아가페적 사랑을 쏟다 보니 개인 대 개인으로서는 성립하지 않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개인적인 관계로 치환하려고 한다. ‘우리 애들’ ‘내 새끼’는 분명 애정의 표현이지만 아이돌과 팬은 결코 부모 자식 관계가 될 수 없다. 유사 연애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돌의 열애설에 어떤 팬은 ‘우리 서로 변하지 말자’고 손가락 걸었던 연인 사이의 약속이 배신당한 것 같은 심정을 느낀다. 다만 예전에는 우리 오빠와 열애설이 난 상대방을 비난하는 형태로 폭발했다면, 최근에는 ‘팬을 기만했다’는 것에 분노의 지점을 둔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빠순이’로 비하받던 아이돌 팬덤이 스스로 문화 소비자로서 권리를 찾으려는 것 역시 요 몇 년 사이 팬덤 내에서 보여지는 또렷하고 재미있는 변화다. 소속사가 불합리한 대우를 할 경우 아티스트를 대변해 성명서를 내기도 하고, 보이코트를 선언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 팬덤 내에서도 얼마 전 흥미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혐오’의 여지가 있는 과거의 트윗과 노래 가사, 뮤직 비디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 방탄소년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명품백을 든 여자를 비하하고, 예쁜 여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대중 문화에서 ‘여혐’ 가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주를 이루는 팬덤의 특성상,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는 것을 팬이 소속사가 아닌 멤버들에게 직접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다시 한 번,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무엇일까? 얼마 전, 클릭비의 오종혁을 인터뷰로 만났다. 팬이었음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보내는 삶이 어떤지 궁금했다. 답변은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저보고 ‘넌 연예인이잖아’라고 말하면 정색하게 돼요. 그 말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어요. 너는 돈 많이 벌잖아, 화려하게 살잖아, 매니저가 다 해주잖아 같은 거요.” 클릭비 이후의 그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클릭비를 좋아했던 내 마음이 어떻게 사라져버렸는지 이유를 대지 못한다. ‘팬질’ 의 끝은 흐릿하다. 기본적으로 이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팬은 아이돌에게 웃어달라고, 한국에서 더 활동해달라고, 연애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내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팬이 떠나거나, 팀이 사라지거나, 그 이후에 남은 앞으로의 시간은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몫이다. 그리고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대부분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교해진 시스템과 노하우 덕에 그 시간을 연장시키거나, 아티스트로서 개인의 몫을 좀 더 확보할 수 있게 됐을 뿐이다. 멤버의 이탈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도 없이, 개별 활동도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얼마 전 데뷔 8주년을 맞이한 샤이니와 샤이니월드는 아티스트와 팬덤이 성공적으로 함께 걸어온 좋은 예다.

아이돌 문화는 변한다. 지금의 케이팝 열풍이 한풀 꺾이면 아마도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거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당장 내 마음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 반짝거리는 존재들이 어떤 방향, 어디에서든지 안녕하길 바라며 오늘의 팬질을 계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