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레프트오버> 시즌 2의 헤로인 리브 타일러가 절친 케이트 모스가 스타일링한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아이를 출산하고, 새로운 사랑은 찾은 그녀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다.

캐미솔은 키키 드 몽파르나스 (Kiki de Montparnasse).

캐미솔은 키키 드 몽파르나스 (Kiki de Montparnasse).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다. 친구의 집에 우르르 모여 파자마 파티를 열던 밤, 소근소근 수다를 떨던 둘 중 하나가 살며시 잠들어버리는 순간. 이게 바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리브 타일러는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내 옆에서 곤히 잠들어버렸다. 파자마 파티를 해도 재미있을 뻔했겠지만 우리는 런던의 어느 스파에서 피부관리와 페디큐어를 받는 중이었다. 이건 리브의 제안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대화가 너무 지루해서 리브가 잠들어버린 건 아니다. 지난밤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즐기느라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든 데다, 첫째 아들 마일로와 갓 태어난 세일러를 돌보느라 아침 6시에 기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세상에! 내가 코 고는 소리에 놀라서 깼어요!” 라고 외치며 그녀가 일어났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디즈니 만화 영화에 나오는 귀여운 콧소리에 가까웠다. 잠에서 깬 그녀의 머리 뒤로 파랑새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환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리브는 예상한 것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본인만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유전자라도 타고난 걸까? 서른여덟 살이 된 지금도 벌에 쏘인 것처럼 통통하고 매력적인 입술은 열여덟 살 그대로다. 하얗고 촉촉한 피부는 매끈하게 빛났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는 질투가 날 정도로 윤기가 가득하다. 몇 시간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듯한 파란 눈은 여전히 투명하게 반짝인다. 우리는 노팅힐에서 만나 점심을 먹은 터였다. 그녀의 약혼자인 데이비드 가드너가 웨스트 런던에 거주하는 덕분에 리브는 최근 이 근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일러의 아빠인 데이비드는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로, 데이비드 베컴의 절친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인터뷰 화보 촬영은 친구인 케이트 모스가 직접 스타일링을 맡았다.“ 하루 종일 속옷 바람으로 있었죠. 은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딤섬과 회를 먹으며 그녀가 웃는다.

 

드레스는 에르뎀(Erdem).

드레스는 에르뎀(Erdem). 

 

 

에어로스미스의 보컬리스트 스티븐 타일러와 모델 베베 뷰엘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열세 살이 되던 해 모델로 데뷔했다“.당시에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뉴욕 출신의 반항적인 소녀로서는 힘든 일이었죠. 부모님의 상황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그랬어요. 제가 순종적이지 않았다기보다 권위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촬영이 재미있어요.” 스타일리스트가 케이트 모스라면 더 특별하고 재미난 일인 건 분명했다. 리브가 케이트를 처음 만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사진가 마리오 소렌티가 주최한 모임에서였다. 리브는 케이트를 자신의 첫 여자친구라 소개했다.“ 어제 촬영 때 케이트는 마치 마법에 걸린 유니콘 같았어요. 제게 온갖 포즈를 알려주려고 했고, 전 최대한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죠. 제멋대로인 그녀의 방식이 좋아요. 느낌이 가는 대로 움직이죠. 물론, 제가 아무리 포즈를 흉내낸다 해도 그녀와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요. 전 완전 아마추어 같다니까요.” 10년간 ‘베리 이레지스터블’ 향수의 글로벌 광고 모델로 그녀를 기용해온 지방시는 아마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최근 그녀는 화제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톰 페로타의 인기 소설을 <로스트(Lost)>의 제작자 데이먼 린델로프 감독이 공동 제작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레프트오버(The Leftovers)>가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2%가 갑자기 사라진 3년 후, 뉴욕을 배경으로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서 리브는 심약한 여인 메그 역을 맡았다. 그녀는 TV 드라마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TV 드라마가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대본과 감독의 수준이 상당하죠. 실력 있는 감독들은 전부 TV 드라마를 계획하고 있거나, 제작하거나 또 감독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특히나 매력적인 여자 역할이 넘쳐나요.” 그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복잡미묘하고 심층적인 내면을 보여줘요. 그러니 흥미롭죠.” 작품을 찾던 리브는 <레프트오버>를 접하고 먼저 린델로프 감독을 접촉했다. 하지만 감독은 그녀에게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가 어떻게 메그를 연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사실 감독님은 무명 배우를 찾던 중이었어요. 저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리브 타일러’에다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강하다는 거였죠. 하지만 제가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와우, 리브 타일러가 열 받았네요!’라고 소리지르더군요. 분노의 감정을 담아 메그의 내면을 표현했다고 흡족해했어요. 드라마에서 전 펑퍼짐한 옷을 입고 노 메이크업으로 나와요! 정말 최악이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드레스는 빌센코(Vilshenko).

드레스는 빌센코(Vilshenko). 

 

 

어린 시절, 노래 부르고 춤추며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니던 리브는 커서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 케이트 허드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열여섯 살 때 리브가 우리 집에서 잔 적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근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죠. 제 차는 아주 오래된 컨버터블이었는데 리브 아빠의 노래가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어요. 우리가 만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브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됐죠. 유명 연예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른 척하거나 숨기려고 하거든요. 저도 그런 경우였고요. 그런데 리브는 볼륨을 아주 크게 키웠어요. ‘제이니가 총을 들었네(Janie’s Got a Gun)’라는 노래였어요. 아빠의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고 있었죠. 순간 ‘얘는 정말 자유롭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리브 타일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주 어릴 때 전화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나요?’라고 말한 뒤 전화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엄마에게 물어봤죠. 엄마는 ‘넌 배우가 될 거란다’라고 말해주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대답했고요. 참 이상한 순간이었어요. 치맛바람 이런 게 전혀 아니라 엄마가 진심으로 제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거 같았거든요. 마치 유리구슬을 들여다보듯 말이죠.”

에어로스미스의 ‘크레이지(Crazy)’ 뮤직비디오에서 10대 가출 소녀를 연기한 리브는 곧 영화 <엠파이어 레코드(Empire Records)>에 캐스팅되었다. 그때가 열여섯 살이었다. 2년 후, 그녀는 성장 로맨스 영화< 미녀 훔치기(Stealing Beauty)>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제 생애에서 잠시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바로 토스카나에서 보낸 그 해 여름일 거예요.” 영화 <아마겟돈>과 <반지의 제왕> 3부작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연달아 출연한 그녀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적어도 아들 마일로가 영화 로케이션에 데리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커버릴 때까지는 말이다. “사실 <레프트오버>의 촬영 직전까지는 좀 힘들었어요. 저는 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영화 작업을 하다 보면 몇 달씩 집을 떠나 있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제가 원하는 인생관과 평생 일궈온 커리어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어요.” 커리어보다 가정을 우선시하려는 마음은 아마도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유년시절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1988년, 당시 열한 살의 리브는 자신을 키워준 뮤지션 토드 룬드그렌이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부는 스티븐 타일러였다. “부모님은 늘 집에 없었어요. 엄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스물 셋이었으니까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을 잘 몰랐을 나이였죠.”

 

스웨터는 피유 아 파파(Filles a Papa). 쇼츠는 키키 드 몽파르나스.

스웨터는 피유 아 파파(Filles a Papa). 쇼츠는 키키 드 몽파르나스. 

 

 

열한 살의 리브를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는 뮤지션 마이클 스타이프는 리브 타일러를 이렇게 기억한다. “리브는 어린 나이에 이미 많은 걸 경험했어요. 그래서인지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해요.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는다면 난 리브가 내 편이기를 바랄 거예요. 그녀는 생각의 뿌리가 단단해요. 그리고 거친 뱃사람처럼 욕을 하죠! 리브를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웃음이 먼저 떠올라요. 리브의 웃음소리는 아주 호탕하거든요.” 얼핏 리브 타일러가 문란하고 화려한 할리우드 스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록스타의 자녀, <플레이보이>지에 등장한 모델 엄마, 아역 스타, 출생의 비밀, 복잡한 할리우드 인맥! 하지만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그녀는 화려한 파티광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연기는 그녀의 인생을 잡아준 동시에 일찍 성숙하게 만들었다.

자, 여기서 리브의 인생을 한번 되짚어보자. 뉴욕 웨스트빌리지에서 5층짜리 주택을 구입한 게 고작 스물세 살. 그녀의 첫 번째 집이었다. 리브는 이것을 인생 최고의 투자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자신의 집으로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각 층은 임대를 위한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벤 펜트리스와 함께 집 천체를 뜯어 고쳐야 했다(펜트리스는 이후 큰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켄싱턴 궁전 인테리어까지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스물 여섯살 당시 영국 록밴드 ‘스페이스호그(Spacehog)’의 보컬 로이스턴 랭던과 결혼했고,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마일로를 출산했으며 2008년 이혼에 합의했다. “모든 걸 남들보다 일찍 경험했어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일해온 탓인지 20대 중반이 되자 제가 훨씬 더 나이 든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해요.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 인터뷰 중에 그녀가 사과하며 재빠르게 약혼자 데이비드에게 문자를 보낸다. “너무 무례했죠. 미안해요.” 그녀가 연이어 사과를 건넸다. 40년간 에티켓 교사로 일해 온 할머니 도로테아 존슨과 책 <모던 매너: 당신을 성공시켜줄 습관들(Modern Manners: Tools to Take You to the Top>을 집필하기도 한 그녀는 엄격할 만큼 상대방을 배려했다.

 

코트는 휘슬즈(Whistles).

코트는 휘슬즈(Whistles). 

 

 

리브와 데이비드 사이에 오작교 역할을 한 것은 헤어 스타일리스트 제임스 브라운이었지만 둘의 첫 만남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CFDA 어워드 파티에서 케이트 모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작년부터 진지한 만남을 시작한 이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일러를 갖게 됐다. “아이를 갖는 일은 너무나 근사했지만 10년 전과는 달리 경험으로 얻은 직감이 있었어요. 아기가 빨리 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던 데이비드는 2월 12일 뉴욕행 비행기를 예약해둔 터였다. 도착을 앞두고 5일 전부터 그는 매일 꽃을 보내왔다. 5일, 4일, 3일, 2일… . “하지만 마지막 꽃은 받지 못했어요. 갑자기 그가 도착하기 하루 전, 예정보다 6주나 먼저 출산에 들어갔기 때문이죠. 아마도 세일러는 꽃 선물이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무섭고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기 침대도, 옷도 준비하지 못했다. 베이비샤워를 믿지 않는 리브의 탓도 있었다. “저는 미신을 믿는 편이거든요. 아기가 나올 때까지 이름을 남발하고 싶지 않았어요.” 언니 미아가 병원으로 달려와 당시 내슈빌에 있던 아빠 스티븐에게 연락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덕분에 세일러의 할아버지는 탯줄을 자를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찍 세상에 나온 세일러는 출산 당시 2.25kg이 채 되지 않았다. 조산으로 태어난 세일러는 2주간 더 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배는 텅 비었지만 아기가 없는 상태로 병원을 떠나야 했어요. 기분이 정말 이상했죠.”

사랑하는 가족끼리 떨어져 지내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한 일이지만, 다들 어디서 어떻게 저녁을 먹을 것인지 같은 소소한 문제부터 어느 지역의 학교로 아이를 보내야 하는지 같은 어려운 문제까지 해결할 것들이 많다. 데이비드는 전처 다비니아 테일러 사이에서 얻은 아들 그레이와 함께 런던에서, 리브는 마일로와 함께 전남편 로이스턴이 사는 뉴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평생을 여행 가방을 풀었다 쌌다 하며 사는 거 같아요.” 리브가 말한다. 런던에서 가족이 살 만한 더 큰 집을 찾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리브는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살 생각이다. “집시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좋아요. 제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게 있어 성공이란 바로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이에요.” 분명히 리브는 굉장히 가정적이다. “리브와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의 대부분은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 그녀가 놀러 올 때예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따스한 벽난로 앞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죠.” 친구인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의 말이다. 모델 헬레나 크리스텐슨은 “우리가 아흔 살이 되어도 흔들의자에 앉아 야한 농담을 나누는 건 변치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요즘 크리스텐슨은 요리를 좋아하는 리브 에게 수프 레시피를 귀띔하고 아이 학교에 대해 조언을 나눈다.

리브가 꿈꾸는 완벽한 하루가 무엇인지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24시간이요. 전화도 울리지 않고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거예요. 정말 평범하고 일상적으로요.”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끝나고, 나는 집을 보러 가야 하는 리브를 웨스트 런던에 떨어트려줬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기다리던 부동산 에이전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이토록 아름다운 리브가 평범함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