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의 가을
인기 레스토랑의 오너(리처드 기어)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위노나 라이더). 바람둥이였던 남자는 여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여자는 불치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놀랍도록 식상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전성기 때의 위노나 라이더의 미모가 아닌, 뉴욕의 가을이다. 센트럴 파크, 그리니치 빌리지, 보우 브리지, 록펠러 센터 등. 영화 속에 나온 뉴욕의 풍경을 다른 계절이 아닌, 꼭 가을에 걷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긴다.

 

2 미술관 옆 동물원
영화가 나온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술관 옆에 동물원이 있는 장소는 과천서울대공원이 유일하다. 심은하와 이성재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소박한 영화는 남녀의 차이를 각각 동물원과 미술관에 비유하며, 변화하는 관계를 그려낸다. 춘희(심은하)의 대사, “사랑이라는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건 줄은 몰랐어”는 영화 속 낙엽이 쌓인 과천서울대공원의 풍경과 어우러져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3 가을로

결혼을 앞둔 남녀, 하지만 여자(김지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남자(유지태)에게 남은 것은 그녀가 짜둔 신혼여행스케줄 수첩. 그 수첩을 쥐고 남자는 여행을 떠난다. 우이도에서 시작해 담양 소쇄원, 울진 불영사와 구절리 전나무숲의 풍경이 연인이 남긴 메시지와 함께 펼쳐진다. ‘꼭 너랑 둘이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라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기억하고 싶었어’.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우리는 당장 그 손을 잡고 떠나야 한다.

 

4 게이샤의 추억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교토 아라시야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덴류지를 비롯,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이름 높은 곳이다. 11월 중순부터 무르익기 시작하는 단풍은 늦가을까지 붉은 잎들이 흐드러지며, 오래된 교토의 목조 건물과 정원은 단풍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 외에도 영화 속 치이(장쯔이)가 어린 시절 달려가던 2km 넘게 펼쳐진 붉은빛이 감도는 도리이 산책길, 닌젠지 등 가을의 교토는 볼거리투성이다.

 

5 텐텐
부모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남자(오다기리 죠). 하지만 빚을 받으러 온 사채꾼(미우라 토모카즈)은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자신과 도쿄를 며칠 산책하자는 제안을 하고, 그렇게 두 남자의 도쿄 산책이 시작된다. 도쿄의 공원, 허름한 꼬치 가게 등을 하릴없이 떠돌며 소소한 사건들에 부딪히는 영화는 지금 당장 가을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익숙한 도시를 정처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꺼내보면 좋은 영화. 물론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