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바르는 크림 중에는 맥북 에어만큼 비싼 것도 있다. 가격은 수십 배가 차이 나지만, 이런 크림을 바르는 목적은 하나. 더 예뻐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값 좀 나가는 크림은 어떤 성분을 함유하고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크림이 있다. 하얀 무색의 플라스틱 용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펌프와 함께 담긴 크림은 세안 후 얼굴이 땅기기 전에 발라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떤 것들은 건조함을 예방할 뿐 아니라 홍조를 다스리고, 어떤 것들은 다른 피부 트러블을 개선하는 데 적절한 효과를 보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약간의 허영심을 더해 화장대 위를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이러한 제품들은 보통 두 번쯤 돌려서 열어야 하는 무거운 유리병에 담겨 나온다. 또 건강한 피부색을 연상시키는 옅은 핑크색 제형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뭉침 없이 빠르게 스며들고 봄날의 정원 같은 신선한 향이 난다. 디자인부터 타고난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이런 크림들은 바르는 방법부터 다르다. 손바닥에 덜어 비빈 다음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공들여 발라야 한다. 크림을 바르는 목적이 단순히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느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즐거움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30g밖에 안 되는 크림 중에는 40만원이나 60만원, 심지어 1백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슬링백 슈즈나 랑방의 클러치백과 맞먹는 가격이다. 심지어 구두나 가방은 몇 달이 흘러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달리, 크림은 한두 달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쯤 되면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화장품에 이처럼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비싼 가격이 좋은 크림의 전제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가 고가의 크림을 열망하는 데에는 높게 책정된 가격도 한몫한다. 이러한 소비 심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과 CIT 연구진이 실시한 와인 시음 실험을 예로 들면, 실험 참가자의 대부분은 가장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는(실제 가격은 가장 저렴한) 와인을 최고급 빈티지 와인으로 지목했다. 더 놀라운 것은 MRI 촬영 결과,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는 와인을 마시는 동안 참가자들의 두뇌 활동이 더 활발해지고 훨씬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화장품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미국역사학과의 케이티 페이스 교수는 고가의 크림은 언제나 욕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대공황기의 저소득 여성 노동자들조차 스킨케어에 막대한 돈을 썼죠.”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시장 조사 기관인 NPD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0월부터 2013년 9월 사이에 미국 내에서 150달러 이상의 스킨케어 제품 판매가 무려 20%나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그사이 스킨케어 제품 전체 판매가 7%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경제 위기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고가의 제품은 오히려 판매가 늘었어요. 스킨케어가 사람들의 자기 투자에 대한 욕망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영역인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NPD의 글로벌 뷰티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인 캐런 그란트는 설명한다. 우리나라 화장품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끌레드뽀 보떼의 브랜드 제너럴 매니저 김정은 상무는 소비자들은 고가의 화장품을 피부를 위한 꾸준한 투자, 또는 피부 상태가 평소보다 안 좋아졌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피부 관리 단계에서 매일 할 수 있는 ‘고영양 특약처방’으로 크림을 먼저 꼽아요. 고가 크림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죠. 하지만 시술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에요.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믿는 기대와 동경이 일부분 자리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의 이러한 인식 덕분에 국내 시장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가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세가 이어졌다. 럭셔리 브랜드 또는 브랜드의 고가 라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의 정유진 과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선망은 하지만 구매는 망설였던 고객들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그래도 저가 브랜드에 비해서는 비싸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내 것’으로 사용한다는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예요. 제품력에 만족한 후에는 추후, 그 이상의 제품 구매로까지 확대되는 기대효과도 있고요.”
고가의 크림과 세럼은 대부분 세련된 성분들로 무장해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최고의 재료를 최고치로 사용해요.” 화장품 제조사인 니키타 윌슨은 말한다. 때때로 이 성분들은 효능만큼이나 긴 부제를 달고 우리 앞에 등장한다. ‘남극 빙하에서 추출한 단백질’이나 ‘5월에 핀 프랑스 장미’ 같은 것들 말이다. 수식이 길어지는 이유는 하나다. 똑같이 장미나 녹차에서 추출한 성분을 사용하더라도 종자부터 토양, 기후, 재배 방법과 꽃을 꺾는 방식, 추출하는 방법까지도 차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마케팅의 전개 방식으로까지 이어진다. “고가 화장품은 마케팅에서 기능적인 효능과 효과를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어요. 브랜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과 좋은 원료, 노하우를 담아 개발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제품 자체에 대한 광고나 홍보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다지기 위해 노력해요.” 김정은 상무의 말이다.
소비자의 구매 방식도 다르다. 대부분 럭셔리 브랜드의 고객들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다. 이들은 스크린을 터치하는 대신 크림을 터치하고 싶어 한다. 고급스러운 포뮬러의 촉감이 주는 기쁨만큼이나 패키지 또한 제품의 질을 반영, 강화한다. 예를 들어 겔랑의 유리 용기는 단순히 시각적인 측면만 위한 디자인이 아니다. 유리 용기는 크림의 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 시슬리의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인 로렌스 미셸론은 뚜껑을 열 때 나는 소리까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격 상승을 이끌기도 하지만, 이들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믿음을 높이는 데에도 한몫한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작은 차이부터 시작된 믿음이 고가의 크림을 아침저녁으로 바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피부과의 조시 하워드 박사는 제품이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믿을 때 제품을 더욱 자주, 세심히 바르게 된다고 말한다. 고급스러움을 만끽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피부과 전문의인 라넬라 허시 박사의 말처럼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비싼 크림에 아낌없이 투자한 거라면, 믿음만으로도 제품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크림의 효과 극대화하는 법
1 잠들기 전에 바를 것
일반적으로 스킨케어 제품은 1일 2회 사용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피부가 재생 모드에 돌입하는 시간이자 흡수 성분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한밤중이야말로 활성 성분이 최고의 효과를 내는 시간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낮에 더 효과적인 항산화 성분을 함유한 제품은 예외다.
2 인내심을 가질 것
고가의 크림은 대부분 가격만큼 묵직한 제형과 부드러운 촉감, 고급스러운 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화장품 개발자 짐 해머 박사는 크림은 활성 성분 함유치가 낮은 편이라고 말한다. “크림보다 세럼이나 오일이 고농도로 농축된 성분을 함유하고 있고, 피부에도 그만큼 더 빨리 흡수돼요. 크림의 존재 이유는 농축 성분 외에 피부의 건조함을 장시간 해소해 주름을 완화하고, 피부결을 매끄럽게 하는 데 있죠.” 세럼이나 오일보다 효과가 더딘 것으로 품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3 주의 깊게 다룰 것
저마다 다양한 효과를 자랑하는 제품을 직사광선을 비롯해 습도가 높은 곳, 낮밤으로 온도 변화가 심한 곳 등의 유해 환경에 노출하지 않는 게 좋다. 유분 함유량에 따라 냉장고 같은 낮은 온도에서는 활성 성분이 효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화장품 회사에서 늘 포장 용기 한편에 주의 사항으로 이러한 내용을 표기해두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4 흡수시킨 다음 마사지할 것
혈액순환을 돕는 마사지는 피부의 생기를 더하는 데 효과적이다. 손가락 끝을 관자놀이에서 콧마루로 이동하며 지그시 눌러주면 되는데, 이때 크림을 바른 다음 1~2분 정도 시간을 둬 활성 성분을 흡수시킨 다음 마사지를 하는 게 좋다. 크림의 흡수가 빠르더라도 피부에 유수분이 충분히 공급된 상태이기 때문에 마찰은 적다.

Pots of Gold
화려한 포장 뒤에 감춰진 제품의 장단점을 파헤치기 위해 값 좀 나간다는 크림, 그럼에도 판매도 잘되는 크림 12개를 테스트했다.

1 라프레리의 쎌룰라 크림 플래티늄 레어
옅은 라일락빛을 띠는 회색빛 크림으로, 피부톤을 고르고 빛나게 하는 은은한 펄을 함유했다. 조명 아래에서는 반짝임이 도드라져 베이스 메이크업을 아주 옅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잠을 푹 자고 난 다음 날처럼 생기 있어 보인다. 50ml 140만4천원.

2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크레마네라 슈프림
리바이빙 크림 사다리꼴 유리 용기에 담긴 걸쭉한 크림으로, 시실리 섬의 천연 온천수로 만들어졌다. 보습과 퍼밍, 브라이트닝에 효과적인 미네랄이 함유돼 피부를 부드럽게 가꾼다. 끈적임 없이 온몸에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가볍게 마무리된다. 50ml 36만원.

3 아모레퍼시픽의 타임 레스폰스 스킨 리뉴얼
크림 흔한 성분인 녹차에 고급스러움을 더하기 위해 먹기에도 귀한 첫물 녹차만 모았다. 부드럽게 발리는 연분홍빛을 띠는 가벼운 질감의 크림으로, 바른 직후에는 피부를 촉촉하고 쫀쫀하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땅김 없이 피부를 편안하게 한다. 50ml 48만원.

4 시세이도의 퓨처 솔루션 LX 토탈 리제너레이팅 크림
촉촉함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지그시 누르면 손끝으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피부가 촉촉해진다. 심신 안정 효과가 있는 장미와 벚꽃 향이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는데, 경우에 따라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50ml 40만원.

5 에스티 로더의 리-뉴트리브 얼티미트 리프트 에이지-코렉팅 크림
남양진주와 블랙 투르말린, 24K 골드처럼 이름만 들어도 값 좀 나갈 것 같은 성분을 함유했다. 이러한 성분은 눈에 보이는 반짝이는 펄 없이 피부 세포를 활성화해 피부를 화사하게 한다. 피부 유연화 효과도 뛰어나다. 50ml 39만원.

6 랑콤의 압솔뤼 렉스트레
피부를 생기 있게 하는 장미 줄기 세포를 담은 안티에이징 크림이다. 얼굴에 펴 바르면 은은한 장미 향이 나고 피부 표면에 매끄러운 윤기가 나면서 차진 탄력이 생긴다. 함께 들어 있는 애플리케이터로 지그시 누르며 문지르면 마사지 효과도 볼 수 있다. 50ml 52만원대.

7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의 환유고
손가락으로는 쉽게 뜰 수 없는 차진 제형이다. 얼굴에 바르고 문지르면 처음에는 뻑뻑하게 발리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얼굴에 광이 생기지만 사용한 기간이 길수록 탄탄한 제형의 진가가 발휘된다. 피부가 생기 있어 보이고 피부 탄력도 좋아진다. 60ml 68만원.

8 디올의 디올 프레스티지 사틴 리바이탈라이징 크림
바르는 순간에는 살짝 끈끈한 느낌이 들지만 부드럽게 문지르면 빠르게 흡수된다. 시간이 지나도 번들거리지 않고, 무엇보다 피부의 탄력을 촘촘하게 채우고 피부결을 부드럽게 한다. 은은한 장미 향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50ml 39만원.

9 끌레드뽀 보떼의 라 크렘므
부드러운 촉감의 아이보리색 나이트 크림이다. 되직한 질감이지만 부드럽게 발리고 끈적임 없이 가볍게 마무리된다. 크림을 바른 직후 생기는 윤기가 아니라 피부톤이 균일해지고 피부결이 매끈해져서 건강한 피부에서 보이는 윤기가 난다. 50ml 100만원.

10 샤넬의 르 리프트 크렘 리치
보통 스킨케어 과정 중 피부를 탄탄하게 하는 ‘퍼밍’은 피부 건조를 유발한다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지지만, 샤넬의 리프팅 라인은 일반 퍼밍 크림보다 건조함이 훨씬 덜하다. 하루 종일 피부를 조여 빛나게 하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선사한다. 50g 19만5천원.

11 라 메르 의 리프팅 퍼밍 마스크
얼굴에 넉넉하게 펴 바르고 5분 정도 마사지를 하다 보면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부쩍 칙칙해진 얼굴이 신경 쓰일 때에는 한 번만 발라도 얼굴이 생기 있어 보인다. 발효 성분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기존 제품보다 더 두꺼운 유리 용기를 채택했다. 50ml 27만원.

12 달팡의 스티뮬스킨 플러스 멀티-코렉티브 디바인 크림
연한 산호색의 되직한 크림 제형인데 끈적임 없이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시간이 지나도 유분이 겉도는 느낌 없이 피부를 편안하게 한다. 아로마 성분을 오랫동안 변질 없이 보존하기 위해 유리 용기에 담았다. 50ml 35만원.

Heaven Scents
크림의 향은 기분을 들뜨게 할 수도, 가라앉게 할 수도 있다. 소비자의 30%는 스킨케어 제품을 구입할 때 향을 중요시한다고 답한다. 프랑스 그라스와 뉴욕시에 소재한 로베르테 플레이버 앤 프래그런스 컴퍼니의 세일즈 디렉터인 피에르 울프는 고가의 크림에서 나는 향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강한 플로럴 향이 대세였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특징 없는 향을 선호하죠. 깨끗하고 신선하며 은은한 향 말이죠. 아쿠아와 오존 노트, 바이올렛, 장미 그리고 라일락, 프리지어 등의 플로럴 향으로 이런 특징을 살리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향을 설명하는 데에 쓰인 ‘깨끗한’이나 ‘신선한’ 같은 단어는 심플하다 못해 식상한 느낌이 더 크다. “그런 느낌을 내는 대표적인 향으로 오이를 들 수 있어요. 간단할 것 같지만 오이로 향을 만들려면 천문학적 양의 오이를 사용해야 해요. 자칫 비릿한 향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높은 품질의 오이 오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만 개의 오이를 써야 하죠. 그러니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품 중 인기가 높은 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베르가모트 같은 시트러스 향에 불가리아나 터키산 장미 약간, 여기에 오이 향을 첨가하는 거예요. 이 조합은 아주 깨끗하고 우아하며 인공적이지 않은 천연의 향처럼 느껴져요. 이 향은 많은 회사로부터 완벽하다는 칭찬을 들었어요. 그 크림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수 없는 게 유감일 뿐이지만요.” 그런가 하면 향을 내기 위한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브랜드도 있다. 재료의 향이 충분히 강해서 한방 향을 거스를 수 없는 설화수와 더 히스토리 오브 후, 그리고 녹차로 차별성을 두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 그렇다. 이들은 자연스러운 향을 원하는 소비자의 취향과 원료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원료 자체의 향을 부드럽게 정제하는 것으로 고급스러움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