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디자이너들은 패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자이너의 개성을 드러내고, 시즌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통로로 패턴을 선택한 것이다. 옷차림에도 신선한 활력을 부여하는 패턴의 매력 속으로.

마리 카트란주, 에르뎀 같은 런던 컬렉션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하나다. 바로 패턴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듯한 화려한 패턴은 패션 피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이제는 패턴만 보고도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만의 시그니처가 됐다. 런던 디자이너들이 패턴에 집중하며 주목받고 있었던 것에 반해 국내 디자이너들은 잘 만들어진 패턴 원단을 구입해서 옷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이 패턴에 쏟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동안의 흑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은 많은 디자이너가 패턴의 중요성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만의 시그니처 패턴
지난 2014년 봄/여름 서울 컬렉션에서 디자이너들은 너나없이 독특한 패턴의 의상을 선보였다. 대부분 디자이너가 직접 그리거나, 개발한 패턴들이었다. 오래전부터 패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온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스티브 J&요니 P다. 런던에서 마리 카트란주와 함께 공부했다는 그들의 한남동 작업실 벽에는 스티브가 직접 그린 캐릭터, 카툰, 일러스트, 패턴이 가득하다. 그들의 장기는 밝은 톤의 사랑스러운 패턴. 지난 봄/여름 시즌에 선보인 자수 장식의 페이즐리 패턴 원피스와 레이스 패턴의 데님 재킷과 팬츠는 출시하자마자 완판됐을 정도다. “이번 시즌에 야심차게 선보인 건 유니콘 패턴이다. 오랜 기간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어서 무언가 희망이 될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유니콘이다. 밝은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파스텔 컬러로 화사하게 연출했다.”
이렇게 패턴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는 또 하나 있다. 바로 럭키 슈에뜨의 부엉이 패턴이다. 시즌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부엉이 패턴은 수집가들의 포획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힙합, 앵그리, 태양 등 여러 버전의 부엉이를 시즌별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럭키 슈에뜨 마케팅팀 김미소의 말처럼 귀여운 부엉이 패턴은 옷은 물론 목베개, 방석 같은 리빙 소품부터 최근에 출시한 핸드폰 케이스까지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된다. 럭키 슈에뜨의 부엉이 패턴이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디자이너 김재현은 “한마디로 럭키한 일이죠”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말처럼 한 브랜드가 자신들의 시그니처 패턴을 가진다는 건 쉽지 않다. 해외 명품 브랜드만 보더라도 자신들만의 하우스 패턴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는 극히 일부다. 루이 비통이나 구찌 같은 로고 패턴을 제외하면 에트로의 페이즐리나 미쏘니의 물결 패턴 정도가 대표적이다. “디자이너든 브랜드든 아이콘의 정립이 중요하다. 패턴도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매 시즌 새롭고 특별한 패턴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하나의 통솔력 아래에서 패턴을 운영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드민의 디자이너 장민영은 패턴 디자인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한다. 그 역시도 매년 새로운 패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일러스트를 수백 장 그린다. 심지어 한 가지 패턴을 정해도 막상 옷감 위에 프린트하면 색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이렇게 탄생한 패턴이 바로 이번 시즌에 선보인 파란색과 흰색이 세련되게 조합된 그래픽 패턴이다.
반면 비욘드 클로젯의 고태용은 매 시즌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모든 패턴을 디자인한다. 그의 컬렉션은 항상 하나의 테마가 있다. 비행기를 주제로 했을 땐 비행기 좌석과 여행지의 풍경을 담아 하나의 패턴으로 선보였고, 지난 시즌 유럽 카페의 풍경이 주제일 땐 햄버거, 케이크, 커피 등 다양한 카페 메뉴를 그대로 패턴에 담았다. 고태용은 비욘드 클로젯의 상징인 강아지를 빼놓지 않고 함께 그려 넣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준다. “내가 키우는 반려견을 그렸다. 강아지 패턴을 처음 스웨트 셔츠에 그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강아지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최근엔 바이어들도 매 시즌 강아지 패턴 의상을 선보이라고 요구할 정도로 비욘드만의 시그니처 패턴이 됐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많은 소비자가 눈에 띄는 로고 대신 브랜드의 시그니처 패턴을 원하고 있다. 물론 대량 생산하는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는 여전히 로고를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 스타일은 브랜드 명에서 가져온 알파벳을 활용한 로고 패턴에서 예술적인 터치를 가미한 이미지 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코오롱 스포츠의 로고는 상록수다. 상록수 로고는 단순한 그래픽 디자인이지만, 패턴은 좀 더 다양하게 선보인다. 이번 시즌엔 붓터치가 살아 있는 아티스틱한 디자인으로 변신했다. 상록수 로고의 나뭇잎은 살리면서 다양한 색상을 사용해 페이즐리 무늬 같은 효과를 주었다.” 코오롱 스포츠 그래픽팀의 설명처럼 브랜드에서도 패턴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협업
이번 서울 컬렉션에서 패턴을 선보인 모든 디자이너가 직접 패턴을 그린 건 아니다. 하지만 패턴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는 그림도 잘 그린다. 스티브 J&요니 P도 그렇고, 드민의 장민영도 일러스트에 일가견이 있다. 그렇다면 일러스트에 자신 없는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패턴을 디자인할까? 그래픽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패턴을 선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푸시버튼의 박승건은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그래픽 아티스트 275C와 협업하며 다양한 패턴을 선보였다. 지난 시즌 도트 무늬 패턴, 체크 패턴에 이어 이번 시즌에 선보인 로켓 패턴은 모두 275C의 작품이다. 송자인은 2008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 별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송자인과는 파트너이기 전에 좋은 친구다. 우리는 컬렉션의 기초적인 구성부터 함께 의논하며 그림을 그려나간다. 나는 이런 협업이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컬렉션이기보다는 송자인이 제안하는 하나의 문화로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픽 디자이너 별은 송자인뿐 아니라 정욱준, 서상영 같은 다른 디자이너와도 작업했다. 실력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일수록 패션 브랜드나 디자이너에게 러브콜을 받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는 것. 전문화된 화려한 그래픽 패턴을 만들 수 있고, 옷감에 프린트했을 때도 색상이나 패턴이 잘못 인쇄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그래픽 패턴을 활용해 패션쇼장을 장식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 더욱 화려한 패턴 디자인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이렇게 한국 디자이너들이 패턴 개발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한 건 패턴이 디자이너의 실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제이 쿠의 디자이너 구연주는 앞으로 더 화려하고 정교한 패턴이 등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많은 사람이 클래식한 실루엣에 착용감이 좋은 옷을 원한다. 결국 소재가 관건이다. 소재가 중요해질수록 디자이너의 정체성과 역량을 보여주는 것에 패턴만큼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는 게 없다.” 이 말처럼 멋진 패턴이 계속 등장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멋진 옷을 감상하고 입기만 하면 된다. 물론, 과감한 패턴을 입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