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열두 달,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 문화계 원소들이 있다. 음악, TV, 아트, 영화, 책, 공연의 여섯 개 분야를 유영하며 우리는 어떤 것을 읽고, 듣고 보았을까?

Music

1 2013은 내가 대세
크레용팝 크레용팝은 10여 년간 쌓아온 한국 걸그룹의 비주얼을 해체했다. 중독성 강한 그들의 노래와 춤을 군인도, 할배도, 김구라도 따라 했다. 앞으로 그 누군가, 심지어 자신들마저도 이런 노래를, 뮤직비디오는 만들 수는 없을 거다. 그 무엇이라도 아류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엑소 처음엔 제2의 슈퍼주니어겠거니 했다. 하지만 엑소는 슈퍼주니어는 물론 다른 남자 아이돌과도 확실히 달랐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는 물론이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추는 늑대춤, 단정한 교복 스타일링까지 말이다. 김희철의 말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SM 남자 아이돌 중 가장 높은 음원 수입까지 올렸단다. 사장님은 복도 많다.
이하이 에 나올 때부터 이하이는 뭔가 달랐다. 1996년생이 어쩜 저럴 수 있나 싶은 음색과 눈빛과 몸짓을 보여줬다. YG는 본래 이하이가 가진 것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 그녀를 진짜 뮤지션으로 만들었다.

2 2013년의 음반들
음악 칼럼니스트 김봉현, 김작가, 차우진, 이민희, 김홍기가 올 한해 최고의 국내외 음반을 꼽았다.
1 <Hi-Life> 하이라이프 레코즈에서 발매한 앨범은 신진 프로듀서들의 일관되고 탄탄한 프로덕션 위에서 힙합의 어법과 이야기가 얼마나 멋있고 매력적인지를 증명한다. 힙합, 언더그라운드, 젊음이라는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서울 래퍼들의 고군분투와 꿈이 담겼다.
2 장필순 <Sooney 7> 장필순이 10년 만에 내놓은 7집은 그녀의 전작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추종은 가능할지언정 재현은 불가능한 장필순과 주변 음악가들의 재능과 노력이 정성스레 수놓여 있다. 자극도, 힐링도 과잉인 시대에 이토록 깊고 한결 같은 음악인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3 윤영배 <위험한 세계> 이 앨범을 시사 문제를 다룬, 작품성 있는 앨범으로 이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 앨범이 대단한 이유는 윤영배가 음악가로서의 삶과 경험을 음악과 일치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는 마침내 거의 근접한다.
4 선우정아 <It’s Okay, Dear> ‘음악을 갖고 논다’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재즈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에 대한 노하우 위에 그녀의 개인적 푸념과 신세 한탄의 노랫말이 무심한 듯 보컬에 실리며 예측할 수 없이 전개돼 듣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
5 다프트 펑크 <Get Lucky> 올해는 다프트 펑크다. 다소 실망스러운 트랙이 있어도, 일단 다프트 펑크여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댄스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단서이기도 하다.
6 문 사파리 <Himlabacken Vol. 1> 문 사파리는 스웨덴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올해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그들의 음악은 화려하다. 퀸의 ‘Bohemian Rhapsody’처럼 풍성한 사운드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팝과 클래식의 경계를 수없이 오가면서, 우리가 처음 음악을 발견하고 감동했던 순간으로 이끈다.
7 아케이드 파이어 <Reflektor> 트렌드보다는 스타일의 시대다. 2004년 말 그대로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운석처럼 등장했던 아케이드 파이어는 이를 증명한다. 그들의 네 번째 앨범인 에서는 디스코와 뉴웨이브, 포스트 록, 아트 펑크 등 수많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요소들이 조합되는 순간,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고유의 스타일로 승화한다.
8 프레디 깁스 <ESGN> 투팩과의 비교가 어불성설만은 아니다. 지금의 힙합이 놓치고 있는 거리의 찬가와 갱스터 랩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멋지게 해낸다. 사운드, 서사, 태도 등 모든 면에서 장르의 정수와 가깝다.

3 와줘서 고마워요
크라프트베르크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10 크라프트베르크> 결성 43년 만에 한국을 찾은 크라프트베르크는 사상 최초로 3D 영상을 선보였다. 덕분에 3D 전용 안경을 끼고 2시간 내내 스탠딩으로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랩’이 흐를 때 스크린에는 인공위성이 우주를 떠다니는 3D 영상이 나왔는데 한반도를 클로즈업하는 센스를 발휘하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루시드폴 <목소리와 기타> 페스티벌이 난무하는 시대에 공연의 소중함을 반증하듯 작고 조용하게 진행한 루시드폴의 살롱 개념의 공연. 그는 한 달간 종로 골목의 오래된 카페인 ‘반줄’에서 기타와 키보드 한 대로 그날그날 마음 가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종로의 소음, 테이블 위 가습기까지 모두 인상적이었다.
시규어 로스 시규어 로스는 사방을 둘러친 천막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때마침 욘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온 신경은 청각에 집중되었다. 욘시와 멤버들은 공연 내내 두 차례의 짧은 인사만 전한 채, 무차별적으로 그들의 음악을 쏟아냈다. 그것으로 완벽했다. 아름답다, 신비롭다, 몽환적이다, 그 어떤 수식어도 그날의 그들을 대신할 수는 없을 거다.
패티 스미스 ‘여성 로커의 전설’은 무대 위에서 철저히 자유로웠다. 검은 비니와 재킷,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스미스는 정규 11집 수록곡 ‘April Fool’을 부르며 본격적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힘있는 목소리와 단호한 몸짓은 일흔을 바라보는 그녀의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기타를 연주하며 ‘Beneath the Southern Cross’를 부르던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4 다시 듣자, 이 앨범
1 김간지×하헌진 <김간지×하헌진> 팔리는 음악’을 일부러 피해왔던 서울의 젊은 블루스맨 하헌진이 두 개의 칼을 모두 쥐었다. 델타 블루스라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존재하지 않던 장르를 김간지의 드럼을 빌려, 자신의 기타와 실없는 가사로 동시대에 이식했다. – 김작가(음악 칼럼니스트)
2 위댄스 <Produce Unfixed Vol.1> 이 앨범은 음원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위댄스는 지난 1년 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의 공연만으로 팬덤을 만들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위댄스의 존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디’가 무엇이고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예외적이면서도 다분히 상징적이다. –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3 최백호, 에코브릿지 <부산에 가면> 디지털 싱글이기에 가볍거나 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트로와 아우트로 트랙까지 갖춘 이 디지털 싱글은 첫 노래 한 소절만으로도 묵직함을 전하며 가슴을 지그시 누른다.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히트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처럼 이 노래에도 다른 기회가 있어야 하는 걸까? – 김홍기(음악 칼럼니스트)
4 섬데프 <Somdef EP> 한국 힙합의 다양성 면에서도, 완성도 면에서도 이 앨범이 묻히는 건 아쉬운 일이다. 특히 진보가 참여한 ‘사이키델릭펑키주스-퓨처디앤젤로’ 스타일의 ‘서커스’는 올해의 싱글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 김봉현(음악 칼럼니스트)

5 논란 속 프라이머리
프라이머리의 곡을 받은 박지윤은 ‘홍대 여신’ 놀이를 끝내고 섹시 콘셉트로 무대에 올랐고 ‘미스터리’는 빠른 속도로 음원차트의 1위 후보에 안착했다. 그런데 그 곡이 돌연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박명수와 함께 부른 ‘I Got C’와 함께 말이다. 두 곡 모두 네덜란드 가수 카로 에메랄드의 곡과 비슷하다며 질타를 받고 있다. 카로 에메랄드 측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 것을 베꼈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무너지진 않겠지만 쿨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고 불똥은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박지윤에게까지 튀고 있다. 이에 프라이머리는 미숙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말했다. 과연 ‘미숙함’이 전부였던 걸까?

6 뮤직 비디오 열전
아래의 QR 코드로 지금 당장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것.
EXO ‘으르렁’ 비디오는 단순하다. 세트도, 분장도, 의상도, 효과도 없다. 오직 엑소 멤버들만 있다.스테디캠으로 한 번에 찍은 이 비디오는 그만큼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깨닫는 것은 바야흐로 아이돌 팝이 다른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차우진
일비스 ‘The Fox’ 일비스는 노르웨이 출신의 2인조 코미디언 그룹으로, 미국의 론리 아일랜드 혹은 국내의 유브이처럼 유머 감각과 음악성을 동시에 살리는 비디오를 선보였다. 풍성한 상상력을 동원해 묘사하는 여우의 울음 소리 덕분인데, 멜로디는 심히 아름답다. – 이민희
조용필 ‘Hello’ 조용필 신드롬은 추억의 가수 조용필이 아닌 젊은 로커 조용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 기획의 정점은 젊은 비주얼 작가 룸펜스와 함께 탄생시킨 ‘Hello’ 뮤직비디오에 있다. 룸펜스는 역사를 안았고, 조용필은 젊은 피를 수혈받았다. – 김홍기

7 뮤지션의 말말말!
양희은 “이 곡의 제목이 ‘한낮의 꿈’이었군요. 제목도 몰랐고 아이유를 본 적도 없습니다.”
➞ 아이유 신보에 실린 본인과의 듀엣곡을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들려주며 그녀가 한 이야기. ‘한낮의 꿈’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섞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버벌진트 “‘버벌진트가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쯧쯧.”
➞ 일부 평론가들이 <10년 동안의 오독> 앨범이 지난 앨범 <무명>, <누명>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을 내리자 버벌진트가 트위터를 통해 불만을 표출.
싸이 “많은 동양 가수가 미국인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요. 난 미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처럼 행동하는 건 말이 안 되죠.”
➞ 싸이가 QTV <토크아시아>에서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가수들을 향해 던진 소신 있는 발언.
이승철 “민다리에, 티저 팬티에, 착시 의상? 이런 식으로 활동시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
➞ 김예림이 ‘올라이트’ 신곡 티저 영상에서 속옷만 입은 채 등장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승철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덕분에 김예림의 제작자인 윤종신이 식은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조용필 “테두리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내 색깔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나의 음악을 찾아보고자 했어요.”
➞ 19집 를 발매한 조용필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 일흔 평생 음악만 해온 뮤지션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