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아티스트는 길고 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창작의 시작이며 철저히 혼자인 공간, 날것 그대로이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그들의 책상을 담았다.

안다빈 | 회화작가

책상을 마주 하고 앉기보다는 옆에 두거나 등지고 서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늦은 밤과 새벽에 이곳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 햇빛보다는 조명을 이용해 작업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작업을 하다 보면 책상에 물감이 묻고 유화 기름을 엎지르기도 하지만 끝나면 깨끗이 닦아내고 정리한다. 그래야 다음 날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지금 사용하는 책상은 작업실에 있던 의자 두 개와 아크릴판을 붙여 만든 것인데 작업실의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책상 위에는 첫 전시 도록과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인 에곤 실레와 카라바지오의 작품집을 두고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작업이 좀 더딜 때 꺼내 보면 이상하게 속도가 붙는다. 마르지 않은 유화물감 팔레트도 늘 놓여 있다. 물감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작업하면 효율이 높아진다.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른 만큼 붓의 마모가 빨라서 새 붓이 없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새 붓을 항상 준비해두곤 한다. 팔레트로 쓰고 있는 건 어머니가 사용하던 쟁반인데 모양이 무척 맘에 들어 가지고 왔다. 가족 사진도 빠뜨릴 수 없다. 언젠가 내 홈페이지에 ‘나의 전부’라는 제목으로 가족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나의 그림은 가족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혼자 외롭게 작업을 하다가도 가족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 공간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 든다. 책상 앞에 걸리는 작품은 수시로 바뀐다. 지금은 가장 최근에 작업한 작품을 걸어두었다. 집에 불이 나면 책상만 그대로 들고 나갈 만큼 소중한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김수랑 | 일러스트레이터

4년 전 동네에 버려진 책상을 주워와 다리 부분만 따로 사서 조립했다. 비율과 나무의 색상, 상판에 달린 서랍장까지 쉽게 구할 수 없는, 흔치 않은 구성이다. 컴퓨터 작업을 제외한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이나 작업을 이 책상에서 한다. 깨끗하게 쓰는 편은 아니다. 어느새 이것과 저것이 뒤섞여 있고,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쌓여가는 형태다. 하지만 어떤 물건, 서류 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만큼은 분명하다. 간편화된 과정이 아닌, 시간을 들이는 공정을 통해 잊고 있던 감정을 찾게 하는 물건에 애착을 갖는 편인데 레테라 22 타자기가 바로 그렇다. 구입한 이후 이 책상 위를 줄곧 지키고 있다. 겟코소의 8B연필은 나무가 너무 단단하거나 무르지 않아 얇고 굵은 선을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어 자주 사용한다. 마음이 복잡할 때 곧은 선을 하나 그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어 늘 책상 위에 놓아둔다. 길을 다니다 이것저것 주워 나르는 게 소일거리 중의 하나인데, 그중에 역사를 알 수 없는 돌이 꽤 많다. 복잡한 생각들로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 때 손에 쥐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해 재료를 선택하기보다는 재료를 보고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라 작업을 하고 남은 소재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아둔다. <A NOT B>는 우타 아이젠라이히(Uta Eisenreich)의 사진 작업을 담은 책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 중의 하나다. 한밤중, 허버트 테리가 디자인한 1980년대 앵글포이즈 램프를 켜두고 이 책상에 앉아 있으면 호젓한 기분과 함께 책상 자체가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작은 섬처럼 느껴진다.

마이큐 | 싱어송라이터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이곳에 앉아 있다. 아니 가끔은 이곳에 앉아 잠을 자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성경책을 읽고 묵상을 한다. 그리고 나의 음악을 만든다. 4장의 정규 앨범을 이 책상에서 만들었다. 책상에는 키보드, 노트북, 메모지, 펜, 성경책, 녹음기, 향초, 팬들한테 선물 받은 인형들이 놓여 있다. 나얼 형이 선물해준 로봇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현지인에게 선물 받은 기린도 있다. 친구가 내 공연을 보고 난 뒤에 네가 음악을 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손으로 써준 성경 구절을 가까이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외국에 나가면 시디를 많이 사온다. 포장도 뜯지 않은 시디를 책상에 쌓아두고는 하나씩 꺼내 듣는다. 건반과 악기는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사실 네 장의 앨범을 낸 뮤지션치고는 수준이 많이 열악한 편이다. 이제는 단종되어서 수리하기 힘든 악기도 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곁에 두고 있다. 나는 이른 아침에 이곳에 앉아 있는 걸 특히 좋아한다. 오토바이 소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소리를 구하는 곳이다. 내 안의 내가 너무 많을 때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는 마음을 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음악이 시작되고 구현되는 곳, 조금도 꾸며지거나 포장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존재하는 곳, 그렇기에 진짜 내 모습이 담겨 있는 곳이다.

한상혁 | 패션 디자이너

엠비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놓여 있던 책상이다. 회사에서 임원들의 취향을 고려해 맞춰준 책상인데 다행히 맘에 든다.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 책상 모서리에는 스피커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마음에 드는 오브제가 놓여 있는데 내 눈에 예쁜 것을 하나씩 두고 보니까 실버와 골드 정도의 색감으로 정리되었다. 도장, 돋보기, 엠비오 리뉴얼을 할 때 썼던 오브제, 치과 진료를 할 때 쓰는 도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모임이다. 가위와 줄자, 핀셋, 피규어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얼마 전 앱솔루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에서 선보인 로봇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정교한 스케치를 할 때 필요한 세밀 도식화의 불은 퇴근할 때까지 늘 켜져 있곤 한다. 작업에 대한 영감을 패션 자체보다는 다른 문화와 예술에서 받는 편이라 현대 작가에 관한 책과 작품집, 사진집, 영상을 보는 것을 즐긴다. 현재는 장 콕토와 영화 <노웨어 보이(Nowhere Boy)>에서 영감을 받은 엠비오의 다음 시즌 광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엠비오의 지난 가을/겨울 콘셉트가 바로 ‘애매모호함’인데 큐레이터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사진을 보고 딱 저거다 싶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과 몸이 마음에 들어 책상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두었다. 이곳에 앉아 혼자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도 하고 분노를 삭이기도 한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현하며 그것에 대한 대화를 끝없이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하고 상상을 하고 무언가를 찾아보고 끊임없이 그린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했던 일은 책상에 ‘recharging’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일이다. 책상 외에 다른 수납 공간과 테이블, 의자에도 ‘이해하다’, ‘인정하다’, ‘혼돈하다’, ‘명쾌해지다’ 등의 뜻이 담긴 스티커를 붙였다. 가장 친근한 ‘술’, ‘담배’, ‘영양제’ 스티커도 이곳 어딘가에 붙어 있다. 회의를 하고 회사를 둘러보고 식사를 하고 외근을 한 뒤, 결국에는 내가 앉아야 하는 곳.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지만 가장 많은 책임을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나의 책상이다.

신선혜 | 사진작가

처음 스튜디오를 만들 때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어렵게 나의 공간이 만들어진 후 가장 먼저 책상을 넣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다니는 물건을 죄다 들고 와 책상 위로 아래로 쌓아 올렸다. 4년 전에 밀라노의 코르마노 벼룩시장에서 산 이 책상은 컬러가 맘에 걸리긴 했지만 다리가 벌어지는 디자인이 맘에 쏙 들었다. 벼룩시장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힘들게 옮긴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에 앉아서는 좋아하는 잡지를 본다. 어린 소년이 많이 나오는 잡지와 인테리어 잡지를 특히 좋아한다. <맨 어바웃 타운>, <판타스틱 맨> 등이 주로 책상에 올라와 있다. 몇 개의 잡지를 마구 펼쳐놓으며 보는 식인데 그러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정리를 한다. 하지만 금방 또 무언가가 펼쳐지고 쌓이곤 하는데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 더 좋다. 체계적으로 수납을 잘 못하는 편이라 볼에다 이것저것 주워 담는다. 자잘한 물건을 한꺼번에 넣어놓을 수 있는 볼, 쓰레받기, 프라이팬까지 모두 수납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30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1970~80년대 플라스틱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액세서리, 몇 년 전 컬렉션 취재 때 받았던 패션쇼 초대장, 색깔 펜, 2001년에 터키에서 샀던 초, 여행지에서 모아온 영수증, 유리병 등 큰 의미 없는 잡동사니 하나하나까지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둔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짐을 쌀 때, 촬영 없는 시간에 유일하게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 마음대로 어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 이곳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한유주 | 소설가

이 책상은 심플하고 뭔가 많이 놓아둘 수 있을 것 같아서 3년 전에 구입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쓰던 견고한 나무 책상이 있었는데 그것과 같은 것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대체된 것이다. 책상에 앉으면 청소부터 한다. 한 주의 계획과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웹서핑을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컴퓨터가 아닌 메모지에 손으로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손으로 뭉개가면서 글을 쓰고 천천히 기록하는 그 느낌이 좋아서다. 덕분에 책상 위에는 늘 노트와 펜이 놓여 있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두 번이나 똑같은 것으로 구입한 몽블랑 만년필과 그것으로 써도 뒷장에 배어나지 않는 클레르 퐁텐 노트를 주로 쓴다. 요즘은 얼마 전에 번역한 <눈 여행자>와 이종규 시인의 <흑백>이라는 시집을 읽고 있다. 이종규 시인의 책을 좋아하는데 특히 이 책은 칼로 자른 것 같은 언어가 맘에 든다. 이오네스코 인형과 향수도 책상 위에 자리 잡았다. 인형극을 찍어 그 인형에 말풍선을 달아 <플라스틱 입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용한 인형들이다. 책상은 내게 오십견을 줬다. 밥벌이의 장소이고 도망가고 싶어도 앉아야 하는 곳이다.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테이블>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다. 테이블에 대한 모든것을 경험하고 쓴 시리즈 시가 나온다. 그걸 보면서 나의 책상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높이는 70cm일 것, 다리는 네 개일 것, 글의 무게를 지탱할 것.” 요즘은 이곳에 앉아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하나는 거의 끝나가고 하나는 막 들어갔다. 이 작은 책상에서 태어난 소설 <불가능한 동화>가 곧 세상에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