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미국의 증시에 따라 내 펀드 수익률이 움직이고, 일본에서 벌어진 원전 폭발이 바로 내 밥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세계는, 지금.

월가 시위가 남긴 것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2011년 9월부터 11월까지, 월가에 모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자유주의 국가인 미국의 심장인 뉴욕, 그중에서도 세계금융자본시장을 상징하는 월가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여배우 수전 서랜던 같은 명사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금융계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도 시위대에 지지를 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KBS스페셜-We are 99%, 월가 분노가 점령하다>를 제작한 홍기호PD는 부의 집중, 중산층의 몰락, 일자리 부족 등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던 국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가 월가 시위의 핵심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기회의 땅’이라 불리던 미국의 모습은 양극화가 심화되며 사라진 지 오래다. 하위 20%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인의 42%는 다시 최하위 계층으로 살아간다는 퓨(Pew)재단의 연구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노숙시위가 금지된 후 ‘우리는 99%다’를 외치던 시위대는 사실상 월가를 떠난 상태지만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행보는 워싱턴, LA, 보스턴 등 미국 전역 으로 이어졌다. 월가는 오늘도 건재하다. 하지만 월가 시위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몰락을 예고하거나, 혹은 확인하는 사건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타임>지는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시위대(Protestor)’를 꼽았다.

1000유로 세대, 일어나다

‘휘발유 가격은 나날이 상승하고, 황량해지는 사람들, 공공의 부채와 병원 복도의 쥐는 늘어만 가고있다. 점점 부유해지는 부자들과 점점 더 가난해지는 가난뱅이들의 간격도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축구 우승컵을 가지고 있는데 걱정할 일이뭐있겠는가?’ -<빗나간 내 인생>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탄생하기 전,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의 문제가 먼저 덮친 서유럽에는 일찍이 ‘1000유로 세대’라는 말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주세페 쿨리키아의 <빗나간 내 인생>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무기력한 냉소를 보내는 1000유로 세대인 청년, 발테르의 이야기다. 그리고 2011년, 수많은 발테르가 행동에 나섰다. 지난 5월, 46%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에 항의하며 수만 명에 달하는 스페인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 시위가 절정에 다다른 6월 19일, 마드리드의 광장에 모인 인원은 10만 명에 달했다. 청년들로부터 시작한 시위는 임금이 밀린 경찰, 교육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단체들, 주정부의 병원 폐쇄에 항의하는 의사들 등 전 계층으로 퍼져나가며 사회 곳곳에 쌓여 있던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이어서 11월에는 역시 30%의 청년실업률을 앓고 있던 이탈리아가 스페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수만 명이 총리 퇴진을 외친 끝에 17년 만에 베를루스코니가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고, 월가 시위와 맞물리며 시위는 그리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국제 정치 평론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지난 10월 11일자 사설에서 유럽의 1000유로 세대들이 들고 일어난 이 사건이 중요한 진짜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불만과 참여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의 시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구호는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Democracia Real Ya)!’이었다.

아랍의 봄은 어디까지 왔는가

‘자스민 혁명’, ‘중동의 민주화’ 등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2011년, 중동지역을 휩쓸었다. 1월, 자스민 혁명의 근원지인 튀니지는 벤 알리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냈고 이어 2월에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8월에는 리비아의 카다피가, 11월에는 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시위대에 무릎을 꿇었다. 리비아는 혁명을 통해 완전한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튀니지와 이집트는 모두 첫 선거를 치렀다.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300여 명이 넘는 시민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의 상황도 해가 바뀌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랍연맹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아사드 대통령의 실각이 사실상 예고되고 있는 것. 지난 10월 리비아 시민혁명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경향신문> 이지선 정치부 기자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의 요구는 ‘빵을 달라, 일할 수 있게 해달라, 집세가 너무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독재자라는 명확한 적은 상정되어 있지만 ‘투표권을 달라, 언론의 자유를 달라’는 요구에 앞서 생존의 문제가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과 월가 시위로 이어진 세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2011년 한 해를 들썩이게 했던 각종 시위의 근원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위협감이 존재한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클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집을 살 수 있을까? 같은 생존에 대한 공포 말이다.

미군이 떠난 이라크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9년 만의 일이다. 미군은 지난 12월 18일, 마지막 군부대를 철수했다. 지난 9년간, 수많은 미군은 바그다드 거리를 걸었고, 그곳에서 싸웠고, 피를 흘렸고, 때로는 저주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4,500명의 미군과 15만 명 이상의 이라크 국민이 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9.11 테러의 충격 이후 반년이 지난 2003년 3월,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관계,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찾기 위해 시작된 전쟁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 아랍권 세력들의 내전에 휩쓸리면서 처음의 방향을 잃었다. 치안을 유지하고 이라크의 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돕겠다는 새로운 명분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고 전쟁포로 고문, 민간인 사살 등의 사건을 거치며 이라크를 비롯한 일부 아랍 국가와 미국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이라크 국토는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하며 귀국한 미군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12월 31일을 ‘이라크의 날’로 선포하며 이를 ‘이라크가 주권을 회복한날’이라고 말했지만 종교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바그다드의 거리에 평화가 앉아들 날은 아득해 보인다.

유럽의 재정적 블랙홀

유럽이 휘청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이어 그리스는 국가부도선언 직전까지 갔다 왔다. 마냥 꿀과 올리브가 넘쳐 흐르는 줄 알았던 풍요로운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은 잘못된 국내 경제정책, 관광 수입의 감소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무리한 유로 존(Euro Zone) 통합’이라는 게 <이코노믹 인사이트>의 김보근 편집장의 말이다. 독일의 정론지인 <슈피겔(Spiegel)>에 따르면 화폐통합이 첫 논의되던 1990년대 초반, 그리스는 이미 GDP의 114%에 달하는 심각한 부채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화폐통합으로 인해 국가신용도가 올라가면서 그리스는 갚을 능력이 없는 국채를 계속 가져다 쓰며 기존의 국정 운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유럽’으로 가는 초석이었던 유로화 통합은 곪을 대로 곪은 그리스 경제 상황을 수술하는 대신에 일시적인 진통제를 투여하는 역할에 그쳤다. 연합국들이 휘청대면서 속이 타는 것은 유럽연합의 맏형 격으로 여겨지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유럽연합의 해체만은 막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EU 정상은 3천4백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의 부채 중 1천억 유로를 삭감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그리스의 채권을 대량 매입한 유럽 은행들이 위기에 처했다. 결국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또다시 공공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는 ‘블랙홀’, 그 자체다.

멕시코는 지금

멕시코의 경제 상황은 현재,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 호와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 무분별하게 맺은 FTA 이후, 쏟아지는 외국 자본과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의 대처 앞에 농촌과 중소기업들은 몰락했다. 해외자본이 금융자본의 80%이상을 장악하고, 광산업은 90%의 업체가 미국과 캐나다의 기업이며, 월마트가 소매 시장의 60%를 차지한것이 멕시코의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마약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이 곧 ‘돈’인 데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이 연간 33조5천4백억원의 규모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마약시장이니 당연한 일이다. <타임>지는 2011년 ‘가장 덜 보도된 기사(Most Underreported Stories)’ 부문에 멕시코의 마약 전쟁 확산을 꼽았다. 그만큼 멕시코의 마약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정부가 본격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마약 조직에 의해 발생한 사망자의 수는 4만3천 명을 넘겼다. 1년에 1만 명이 마약 때문에 목숨을 잃는 꼴이다. 정부의 진압이 거세질수록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무차별적인 보복이 계속되는 공포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한 해에 2,000명의 시민이 살해당한 멕시코 북부의 한 국경도시에서는 지난 12월 9일, 주민 20만 명이 대탈출을 감행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국의 두 얼굴

<뉴스위크>의 특별판인 <Newsweek-Issues 2012>는 ‘중국은 두 가지 이미지를 가졌다. 하나는 세계 정상 수준의 현금을 보유한 초역동적인 국가로서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지도자들이 마음대로 문제를 감출 수 있는 나라의 모습이다’라며 현재 중국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했다. 미국과 함께 G2로 꼽힐 정도로 중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10년간 매년 8~13%의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소비시장을 주도하는 중국은 3조2천억 달러가 넘는 세계 제일의 외환보유 국가다. 고도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신흥부유층의 명품구매력은 중국의 성장을 알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유럽지역에서 아시아인들의 명품 구매누적액 6백90억 달러 중 5백억 달러는 온전히 중국인의 몫이었으며, 2억 명에 달하는 인구의 16%가 명품구매층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는, 실질 구매력만 따지면 올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소수민족 문제와 극심한 양극화 같은 사회적 문제를 비롯해 언론통제, 인권문제 등 반민주적인 모습이 가득하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노동자, 시민 1만5천 명을 사살한 천안문 사태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정작 중국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끊임없는 언론통제와 중앙집권 체제의 교육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오직 자라나는 것만이 중요한 배고픈 아이와 같다. 하지만 아이는 늘 어른이 되는 법이다. 게다가 중국은, 보통 아이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 원전

지난 3월 11일, 동북부 일본을 덮친 대지진이 진짜 재앙으로 변모한 순간은,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바로 그때였다. 공기 중에 누출된 방사능은 손쓸 틈도 없이 육지로, 바다로, 퍼져나갔다. 원전의 공포는 한국으로도 전염됐다. 방사능비를 비롯한 ‘괴담’이 떠도는 것은 일본 현지도 마찬가지.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학교 교수가 CNN에 출연해 ‘오염이 확산될 것’을 확실히 발언했고, 일본의 주간지와 월간지 역시 독자적인 조사를 하고 있지만 신문과 TV 등 매스미디어들은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아요. 국민들은 진실을 원하는데 말이죠.” 프리랜스 기자인 카즈하루 타케우치의 말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탈원전에 찬성하는 일본은 사실상 자국 내 원전의 추가 설치를 포기했다.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역시 원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2016년까지 원전 6기를, 중국은 2020년까지 40기의 원전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한국 역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며 원전 사업이 주춤하고 있지만 한국, 일본과 밀접한 상하이를 포함, 연해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할 중국의 원전에서 만일 사고가 발생할 경우 3국이 겪을 재앙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현재까지 한중일 정부의 원전에 대한 논의는 지난 5월 채택한 원자력 협력 강화 공동선언문 정도다. 원전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우먼파워

정치적 암투와 불안정한 정세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난 아버지나 오빠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와 지지를 기반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이들을 ‘정치 프린세스’라고 부른다. 2011년 8월, 태국 역사상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또 한 명의 정치 프린세스가 탄생했다.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무상교육’, ‘건강보험 확대’ 등의 정책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부정부패 의혹으로 2007년 국외 추방된 탁신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그 주인공이다. 불과 선거 두 달 전에 출마를 선언한 그녀의 정당은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가 13배에 달할 정도로 양극화 문제가 극심한 태국의 국민들 중에는 혁신적인 탁신의 정책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정치 경험이 없는 잉락이 내세우는 키워드는 바로 ‘화합’이다. 취임하자마자 태국 국토의 5분의 1이 잠기는 대홍수를 겪는 등 그녀의 지도력을 시험에 들게 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그녀의 능력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물론 가장 유명한 정치 프린세스는 미얀바(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일 것이다. 지난 11월, 14년 만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미얀마의 국부로 불리는 아웅산 장군의 딸인 그녀는 이미 1988년, 미얀마의 대규모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며 1990년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국제사회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치 프린세스들과 다르다. 1990년의 선거 결과는 군부에 의해 무효화됐지만 오는 4월 1일 실시될 보궐 선거에서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은 다시 한번 정치적 변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김정은의 북한

지난 12월 19일 정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일찍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하며 권력 이양의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급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북관계의 황금시대로 불리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비하면 현재의 남북 관계는 냉전 상태에 가깝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폭격사건 등 전례 없던 사건들이 터졌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각종 협력을 통해 1년에 10만 명가량이 북한을 찾던 때에 비하면 교류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북한 측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등 햇볕정책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한해서만 조문을 허가한 것은 현재의 냉랭해진 남북관계를 증명한다. 서울과 워싱턴, 그 어느 쪽에서도 김정일 전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지난 1월 9일에는 김정은 정권의 식량원조 추가 요청에 대해 양국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내 놓았다. 이런 상황이지만 20대 후반의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한 북한은 ‘그 어떤 정책이나 체제의 변화도 없을 것’을 선언했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강화에 여전히 힘을 쓰겠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김정일의 죽음이 히틀러와 스탈린, 후세인의 죽음만큼이나 좋은 소식이지만 북한의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남북관계는 지금 세계의 눈이 집중된 ‘핫이슈’다. 비록 우리는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혼돈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중심의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2월 4일 치른 총선에서 집권당 통합러시아당의 각종 부정행위가 발각되며 러시아 민중이 분노한 것. 각 지역의 투표소에 미리 기표된 투표용지를 몰래 넣거나, 개표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러시아의 유일한 독립선거감시기구의 웹사이트를 디도스 공격하는 등 정황도 다양하다. 모스크바에는 12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모여 푸틴의 퇴진을 요구했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푸틴은 자신의 긍정적인 업적으로 기억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푸틴이 물러날 것을 권유했다. 러시아 비밀경찰 출신인 푸틴은 러시아판 개발독재자로 여겨진다. 2000년 대통령직 취임 후 2007년까지 연임한 그는 헌법상 3선에 도전하지 못하고 2008년 대통력직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넘기고 총리가 되면서 최고 권력자 자리에서 물러난 듯했다. 그러나 푸틴은 총리 재임 기간 동안에도 러시아의 실질적 지도자로 군림했다. 작년 9월, ‘2012년 대선 때 현 대통령인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총리인 푸틴은 대통령으로 출마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권력 스와핑 선언이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푸틴의 출마를 사람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4년이었던 대통령 재임기간이 6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연임을 허용하는 러시아 헌법상 푸틴이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경우 2024년까지 장기집권 체제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물론 푸틴의 권력기 동안 러시아의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외환보유고는 수십 배 증가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은 더 이상 1인자의 장기집권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 시위의 집회자들은 60%이상이 대학을 졸업한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을 가리켜 ‘넓은 세상을 경험할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고, 옛 소련을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젊은 러시아의 중산층’이라 평가하며 ‘이제 러시아에도 권력자와 권력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대는 ‘우리는 순한 양이 아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푸틴의 아성은 아직까지도 공고하다. 3월 4일 대선까지 채 세 달도 남지 않았지만 푸틴에게 대적할 만한 야당지도자나 대선후보조차 마땅하지 않은 상태다. 푸틴은 야당 지도자들과 대화를 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대화할 만한 사람이 없다”며 거절한 것에 이어 총선에 대해서도 “재검토는 없다”고도 못박았다. 러시아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정권까지 바꿀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