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사진보다 아름다운 건, 상상으로 여백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재주 많은 손으로 남긴 여행의 기록. 일러스트 작가들이 기억 속을 더듬어, 가장 좋았던 여행의 한순간을 그렸다. 인생도 그림 같고, 여행도 그림 같다. 이 한 장에 다 있다.

바뀐 여행

호찌민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요즘은 길어야 1주일 전후의 여행을 갈 수 있을 뿐이다. 1주일 동안의 여행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족한 게 많아도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잘하는 것 딱 한 가지가 있다고 자부하는데, 나는 포기와 타협의 고수다. 포기와 타협은 여행에서 훌륭하게 작용한다. 문득 베트남행을 결정했을 때, 나는 총 8일의 모든 여정을 호찌민 시내에서만 머무르며 오리지널 쌀국수를 실컷 먹자고 다짐했다. 이동하는 시간과 돈을 오롯이 호찌민 시내에만 투자하니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런 여유 속에서 도시의 풍경을 그렸다.

글·그림 오영욱
건축 디자인 사무소장과 일러스트레이터 오기사. 본업과 부업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그는 아무거라도 하나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는데, 잘하는 일이 적어도 넷이나 된다.

캘리포니아의 숨은 얼굴

1. 샌프란시스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건축물이라든가 자연경관이라든가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우며 개방적인 분위기야말로 이 도시의 가장 큰 아름다움일 터인데, 그건 시티 라이츠 서점 같은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시티 라이츠 서점은 1953년 세운 이래 지금까지 세계 각지의 문학, 예술, 동성애, 진보 성향의 정치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자 독립출판사다. 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과 60년대 히피운동의 중심이었던 이곳의 정신이 서가와 의자와 기둥과 벽과 계단 구석구석까지 깊이 배어 있다.

2. 버클리
이렇게 허름한 도시는 난생처음 봤다. 물론 세상엔 내가 못 가본 곳이 많을 테니까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은 캘리포니아인 데다 세계적인 대학 UC 버클리의 도시가 아닌가. 거리는 더럽고 호랑이만한 개를 끌고 다니는 노숙자들에게선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데, 누구 못지않게 더러운 걸 싫어하는 내가 이런 말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게 버클리의 매력이란 걸 깨달았다. 이곳은 과거 히피운동의 성지였고, 여전히 카운터컬처의 도시이며 슬로푸드의 고향인 것이다. 다운타운 버클리 역은 그 모든 곳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글·그림 정우열
귀여워서 사랑하고, 지적이라서 흠모하지 않을 수 없는 시크한 강아지 ‘올드독’ 정우열은 다방면 아티스트다. 저서가 너무 많아서 다 읊을 수가 없다! 현재 <씨네21>에서 절찬리 연재 중.

봄의 가장 예쁜 얼굴

뉴욕
내 생각에 뉴욕은 봄이 가장 아름답다. 봄이 되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도시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원도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뉴욕 맨해튼의 유명공원들은 각각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다.물론 내 느낌으로 센트럴 파크는 가을, 워싱턴스퀘어 파크는 여름이다. 그리고 이스트 빌리지의 평화로운 톰킨스 스퀘어 파크는 당연히 봄이다. 뉴욕의 봄 그 자체. 이 공원에서 봄을 다섯 번 만났다. 그 봄을 잊지 못한다.

글·그림 권윤주
스노우캣은 ‘귀차니즘’과 ‘혼자 놀기’를 21세기의 주요한 라이프스타일로 정립하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홍대 카페에 혼자 있는 남다른 분위기의 여인이 있다면, 그녀가 바로 스노우캣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