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에 그 누구보다 민감해야 하는 피처 에디터 두 명이 일주일 동안 텔레비전과 SNS를 등지고 살았다. 텔레비전 대신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텍스트에 만족하는 대신 사람들의 얼굴을 더 마주할 수 있었을까?

TV 없는 일주일

TV없이일주일을 지내면서 그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시간을 되찾았다. TV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리자 조금은 심심해졌지만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TV중독자에, 매달 TV칼럼을 쓰는 내가 자발적으로 ‘TV없이 살아보기’를 자청한 건 한 편의 영화 때문이다. 환경운동가 콜린 베번이 1년간 환경에 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노 임팩트 맨>이란 영화를 봤는데, 집 안의 TV를 없앤 이후 베번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가 놀라웠다. 대화를 할 때도 시선은 늘 TV를 향해 있던 부부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기 시작했고, 부부의 대화는 더 길고 풍성해졌으며,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서 TV앞에 앉아 먹던 습관도 사라졌다. ‘TV없는 세상’에 사는 베번 가족의 일상은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에 와 리모컨을 찾아 TV부터 켤 만큼 TV중독자의 삶을 살아온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누군가 나의 일주일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준다면 화면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봤다.

아침, 기상과 동시에 세수를 하고 메이크업을 한 다음 TV앞에 차려진 밥상에 앉는다. <아침마당>을 보며 밥을 먹고 출근을 한다. 퇴근 시간, 집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는다. <웃어라 동해야>를 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TV앞에 주섬주섬 상을 차리고 앉아서 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먹는다. 일일 드라마가 끝나면 9시 뉴스가 시작된다. 점심시간에 인터넷 뉴스로 본 뉴스가 똑같이 반복된다. 뉴스가 끝나면 드라마를 볼 차례다. 이 시간에 말을 하는 건 금물이다. 드라마를 처음 봐서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더라도 질문을 하는 건 큰 실례다. 침묵 속에서 드라마에 푹 빠져 보낸 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토크쇼를 할 시간이다. 수요일은 <무릎팍도사>와 <라디오스타>를 하는 날이다. 오늘은 어떤 게스트가 나올까?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본다. 김태원 아저씨가 나온단다. <라디오스타>까지 다 보고 나자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내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쭉 써놓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때까지 집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이 TV와 함께다. 드라마에 한번 빠지면 평일에는 되도록 저녁 약속을 잡지 않게 된다. 주말에도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 있다 보면 씻고 꾸미고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아진다. 하는 것 없이 배는 또 왜 그렇게 고픈지 평소에 먹지 않던 과자며 피자며 치킨까지 옆에 두고 끊임없이 먹는다. 낮잠까지 자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다음 날, 출근하면 주말 전보다 오히려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3년째. 매달 마감이 끝나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그 주 주말은 누워서 TV를 보면서 지내다 보니 새로 시작한 드라마도 보게 되고, 그럼 또 본방을 사수하게 되고,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가끔은 한심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요즘 트렌드를 읽으려면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챙겨 봐야지”하며 자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TV앞에 앉은 내 모습이 싫어졌다. 거실 유리에 비친 나는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일주일간 TV없이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프로젝트의 첫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을 했다. “일주일 간 TV를 안 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까 TV가 보고 싶은 분은 안방에 가서 보세요.” 그날 아침, 평소라면 거실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었겠지만 이날은 식탁에 앉아 가족들과 먹었다. 한 식탁에 둘러앉아 온 식구가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인가! 평소보다 10분 일찍 식사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퇴근 시간, 일주일 전이라면 <짝패>를 보기 위해 서둘러 가방을 쌌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드라마를 볼 수 없으니 집에 일찍 들어갈 이유가 없어졌다. 미루고 미루던 발레 수업에 가기로 했다. 랩 스커트를 걸치고 토슈즈를 신으니 저절로 우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첫날부터 점프동작까지 배웠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오니 드라마를 할 시간이었다. 굳게 닫힌 안방에서 드라마 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방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스마트폰을 끼적거리다 트위터에도 들어가보고 그래도 재미난 게 없어 몇 달 전 읽다가 구석에 팽개쳐놓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니체의 말>. 책을 읽다 보니 슬슬 잠이 온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어제 <짝패>가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제 방송 분까지 블로그로 모니터를 쫙 하고 나서 미리보기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드라마 예고편은 왜 늘 결정적인 순간에 끝나는지, 중요한 부분은 쏙 빼고 보여줘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그날 저녁은 참으로 힘든 밤이었다. DMB가 나오는 스마트폰이었으면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TV소리를 듣는 게 괴로워 집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집 근처 한강 산책로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달밤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동안 TV와 함께 보낸 밤 아홉 시 이후의 세상에 대해 참으로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TV없이 산 일주일 동안 잃어버렸던 5시간을 되찾았다. 벼르고 벼르던 발레를 시작했고, 먼지만 뽀얗게 쌓여 있던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고, 사기만 하고 쌓아놨던 책 두 권도 모두 읽었다. 지난 달 책을 들고 인터뷰를 했던 사진가를 만나 얘기도 나눴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고 영화를 봤다. 드라마 두 회를 놓치고 나니 관심도 시들해지고, 출근을 하면 그날 저녁에 할 일을 적기 시작했다. TV를 안 보면 트렌드에 대한 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요즘은 TV보다 인터넷이 먼저 TV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아닌가.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오디션에서 누가 탈락을 했는지, 기사와 블로그,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온 종일 누워서 멍하게 TV만 보던 주말이 사라졌다. TV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리자 조금은 심심해졌지만 삶은 더 풍성해졌다.

SNS 실종사건

어느 누구도 SNS에서 자유롭진 않다. 그렇게 일상에 SNS를 들여놓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 SNS를관계를 유지하는 방편과 그렇게 인간관계에 무심한 건 아니라는 방패로 삼는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SNS를 사용할 권리를 박탈 당하고야 말았다. SNS가 얼마나 우리 삶을 파고들어와 있는지, SNS 없는 삶은 어떻게 바뀌는지 직접 경험해보라는 지령을 받은 것이다. OMG, 에디터의 SNS 활동을 장려할 때는 언제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 <하녀>의 포스터 문구가 새삼 떠올랐다.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 그러나 정말 생각해볼 만한 이슈긴 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정보망을 이용한 모든 네트워크를 일컫는 이 그물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트위터, 싸이월드,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블로그, 카페, 네이트온과 MSN, 카카오톡과 왓츠앱. 중단해야 할 것의 목록은 이렇게 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부릉부릉 달려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컴퓨터 시동 걸기. 컴퓨터에 암호를 넣고 바탕화면 띄우면 자동으로 MSN과 네이트온 로그인 창이 뜬다. 여기에 비밀번호를 넣는 것까지 무의식적으로 하고 나서야 비로소 출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느 때처럼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찰나, 아차차. 택시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 습관적으로 누르던 아이폰의 트위터 어플도 멀리해야 했다. SNS 중단 기간 동안 가장 괴로웠던 것이 바로 트위터와 메신저, 카카오톡 서비스였다. 다른 SNS 서비스보다 일상에서의 활용 빈도가 월등히 높았기 때문인데, 털어놓자면 몇 번인가 트위터에 접속해 타임라인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도 했었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보고도 말을 못한다니. 하필이면 이 일주일 동안 자랑할 만한 일이 유독 많았다는 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마침 회사에서 ‘맥북 에어’를 지급해준 것도 그랬다. 앞으로 기사 더 열심히 쓰라는 의미는 차치하고, 박스를 열어 꺼낸 이 은빛 몸뚱이에 반해버린 나머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조금 지나자 맥북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현기증을 느꼈고, 맥북에 대해서 꿰뚫고 있을 ‘트친’들이 생각났다. ‘맥북 과외 선생 급구. 후하게 사례하겠음’이라는 트윗을 올리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타임라인은 흐르고 있지만,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었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쿨한 트위터 세상과는 달리, 늘 고정적인 라인업을 확보하고 있는 메신저 세계에서 나의 부재는 금방 표가 났다. “기자님, 또 출장 가셨어요?”부터, “언제 (네이트온에) 들어와?”라는 메시지와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네이트온과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사실 내 ‘네이트온 친구’는 홍보마케팅 담당자 등 업무상의 친구가 더 많았다. 네이트온으로 간단 간단하게 오가던 업무 이야기가 휴대폰과 사무실 전화로 쏟아졌고, 내 아이폰 배터리는 평소보다 훨씬 빨리 줄었다. 개인적인 인맥이 펼쳐지는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의 중단은 친구들의 화제를 따라잡을 수 없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새 남자친구 봤어?”, “휴가 다녀온 사진 봤어?”, “결혼한다는 소식 들었어?”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청첩장도 페이스북에 올리는 시대였다. 작년 개봉해 아카데미 상까지 거머쥔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흥행에는 사람들이 가진 SNS에 대한 호기심의 영향도 있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물오른 역량으로 한 청년의 눈부신 성공, 그 이면의 냉혹함을 그려냈고, SNS의 본질을 보고자 했다. 많은 학자가 내놓는 SNS의 본질은 외로움이다. IQ는 높을지언정 EQ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극중 마크 주커버그는(실제로 마크 주커버그는 약혼까지 한 품절남이지만)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소셜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SNS를 만든다. SNS가 외로운 사람, 사회적이지 못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대안이자 도피처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정말 인기 있는 사람은 SNS를 하지 않는다’, ‘친구 없는 사람이나 한다‘. ’SNS 인맥은 허울뿐인 관계다’라는 섣부른 판단과 편견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의 SNS는 과거의 PC통신과는 다르며, 많은 부분이 실존하는 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걸 간과하는 것이다.

PC통신과 온라인, SNS와 함께 성장한 우리에게 SNS는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제 SNS는 칫솔과 치약, 치실, 치간칫솔, 가글 같은 생활필수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얼마나 다양하게 쓰느냐, 얼마나 많이 쓰느냐, 무엇을 쓰고 안 쓸 것인가의 개인적인 선택만 있을 뿐이다. 내 주변에는 10분에 한 번씩 트위터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트위터의 중독성을 토로하며 트위터를 끊은 사람도 있고, 카카오톡에 철천지 원수가 친구 추천에 등장해서 경악한 사람도 있고, 페이스북에 전 남자친구는 물론 전 남자친구를 빼앗은 여자친구까지 뜨는 바람에 질색하며 탈퇴한 사람도 있다. 또 싸이월드와 포털 사이트의 카페는 한물 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SNS에서 자유롭진 않다. 그렇게 자신의 일상에 SNS를 들여놓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또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과 그렇게 인간관계에 무심한 건 아니라는 방패로 삼는다.

SNS 없는 1주일을 보내면서, 1주일 후에는 SNS 없는 시간이 다른 것들로 더욱 풍족해졌다고 쓸 줄 알았다. 그게 모범 답안일지도 몰랐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대신 한번 더 얼굴을 맞대고, 메신저와 트위터를 하지 않는 시간에 목소리 한번 더 들을 줄 알았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주일을 보내고 깨닫게 된 건, SNS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관계의 바퀴를 녹슬지 않게 보호해주는 기름칠을 해준다는 것이다. 마이스페이스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깥 걸음을 할 수 없는 친구의 마중이었고, 싸이월드는 분명 친했는데 통 보기 힘든 대학 친구들과의 끈을 이어주는 곳이었고, 페이스북은 낮과 밤이 서울과 거꾸로인 미국에 있는 친구와 내가 시차 걱정 없이, 곤히 잠든 서로를 깨울 걱정 없이 두런두런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트위터는 불특정 다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로얄 패밀리>와 <마이다스> 중 무엇이 더 핫한지, 공연이 끝난 MGMT가 홍대 어디에서 파티를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나의 유용한 정보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SNS 없는 일주일은 SNS의 존재감만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드디어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감개무량한 마음과 감격으로 떨리는 손으로 트윗을 썼다. “이제는 트윗 할 수 있다. SNS 없는 일주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