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찾아오는 봄은 만날 때마다 반갑지만, 우연히 마주한 꽃은 더욱더 반갑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꽃을 만난 여행자들이 말한다. 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이다.
경상남도 하동 매화
하동의 봄은 3월, 매화가 피면서 시작한다. 봄볕이 대기의 온도를 높이면 섬진강변에 자리한 매화나무는 허공 중으로 꽃을 툭툭 피운다. 매화가 피면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 목련과 벚꽃이 꽃봉오리를 열어젖힌다. 찬란한 봄 햇빛 속으로 희고 붉은 꽃이 폭죽이 터지듯 만발한다. 하동 봄 풍경의 절정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10리길에 벚꽃길이 환하게 열릴 때다. 하얀 눈처럼, 솜뭉치처럼 풍성하게 피어난 벚꽃은 깊고 깊은 터널을 이룬다. 바람이라도 불면 비처럼 꽃잎이 쏟아져 내린다. – 최갑수(여행작가)
강원도 회양목
식물의 세계에도 주목받는 꽃과 무시당하는 꽃이 있다.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회양목은 대표적으로 ‘무시당하는 아이’다. 네모반듯한 깍두기 모양으로 가지치기를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해마다 작고 고운 노란 꽃을 피워도 눈길 한 번 받지 못한다. 회양목 꽃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그건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 전은정(<목수책방> 대표)
경기도 수원 수수꽃다리
라일락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꽃이다. 모양이 수수 이삭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수수꽃다리. 이 꽃을 지난 봄 수원의 행궁동 어느 골목을 거닐다 발견했다. 수원 구시가에는 골목마다 오래 된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서울 서촌이나 익선동 못지않은 세월의 정취와 사람 사는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홍상수 영화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의 배경이 된 화성행궁 광장 뒤편 팔달산에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놓치면 1년 내내 아쉽다. – 전현진(사진가)
발리 레드진저
원산지는 말레이시아이지만 발리, 하와이, 세이셸, 타히티 등 열대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생강과의 꽃. 한국에서는 붉은꽃 생강 혹은 홍화 월도라고도 불린다. 길쭉한 줄기에 레드나 핑크, 흰색 꽃잎이 피는데 다 자라면 작게는 2미터, 크게는 6미터에 이른다. 풀 숲이 우거진 우림 지역에서 자라는데 워낙 미모가 뛰어나 주택 담벼락이나 호텔 앞 정원에도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기온이 섭씨 10도가 넘는 열대 지역에서는 1년 내내 볼 수 있다. 특히 6월과 9월 사이에 절정을 맞는다. – 서다희(여행기자)
타히티 티아레
타히티에 가면 사람들이 귀에 꽃을 하나씩 꽂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꽃은 타히티의 국화 티아레다. 타히티 공항에 내리면 달고 진한 티아레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 한 번 그 향을 맡은 사람은 절대 그걸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남태평양 연안에서 자라며 타히티 섬의 여인들이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고. 폴 고갱의 작품 <타히티의 여인들>에서 왼편의 여인이 귀에 꽂은 꽃과 붉은 치마에 그려져 있는 흰 꽃이 바로 티아레다. – 여하연(<더트래블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