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블리 전의 공효진. 짝사랑과 의리파 전문이던 공효진의 20세기 말, 21세기 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지원’
1999년의 크리스마스 이브. 나를 포함한 삼총사는 학교가 끝난 뒤 극장에 갔다. ‘최강희가 귀신이다!’로 전 국민을 스포일러로 만든 공포 영화 <여고괴담>의 ‘두 번째 이야기’가 개봉하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커플’로 소문난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의 교환일기를 주운 민아(그때는 김민선이고 지금은 김규리다)가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으로 빠져 드는 이야기. 영화는 여고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 가지 소문에서 출발했다. 누구랑 누구가 사귄다더라(화장실에서 딱 걸렸대), 누구랑 무슨 과목 선생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밖에서 딱 걸렸대)…
이 작품으로 데뷔한 공효진은 민아의 친구 ‘지원’으로 등장했다. 스타일 구기는 건 못 참는 처피뱅 커트 머리에, 가슴 둘레가 71이라 슬픈 아이. 멀쩡한 이름 두고 “절벽!”이라 부르는 남자 선생에게 바싹 다가가 자신보다 작은 키를 조롱하는 반항아. 발랑 까져 보이지만, 학교 밖 남학생들 두고 굳이 학교 안 국어 선생님(백종학)을 짝사랑하는 여고생. 하지만 선생님이 효신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에 좌절한다.
20년 후, <동백꽃 필 무렵> 촬영이 한창이던 2019년 여름. 공효진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개봉 20주년 GV에 참석해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한창 멋 부리고 싶은 열아홉에,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라는 것부터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라 “만날 입이 나와 있었던 기억”이 난다고. 소품인 줄 모르고 케이크를 먹다 PD님한테 걸려 대차게 혼나기도 했다고 한다. 항상 어딘가 불퉁한 표정의 ‘지원’은 학교만 가면 죽상을 쓰고 앉아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던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이었다.
<네 멋대로 해라> ‘미래’
보통 ‘서브병’이라고 하면 끝내 여주의 사랑을 얻지 못한 남주에게 느끼는 경우가 다수지만, 공효진은 ‘비’ 정지훈과 주연을 맡은 <상두야 학교 가자>(2003) 전까지 서브병을 유발하는 배우였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고복수(양동근)를 사랑한 ‘미래’가 대표적인 예. 본인이 머리채를 잡아 감방에 보내놓고, 출소한 날 복수하겠다며 찾아온 남자에게 밥 먹으라며 숟가락을 놓아주는 스케일이 다른 여자. 복수가 경(이나영)을 사랑하게 되자 가슴에 구멍이 나지만, 삼각 관계의 클리셰인 유치한 방해 공작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그래서일까? 겉바속촉 미래가 울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품행제로> ’나영’
생각해 보면 우리가 공효진을 사랑하는 이유는, 2000년대에 보기 드문 테토녀였기 때문이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화려한 시절>(2001~2002)에서 좋아하는 철진(류승범)이 ‘색시방’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실(공효진)의 대사를 기억하는지?
“나 다른 건 다 참아도 남자 정조 잃는 건 못 참아!” 한참 추궁하나 싶더니, 사실 확인은 제쳐두고 지폐를 꺼내 철진의 상의 주머니에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목욕탕 가서 네 그 더러운 몸 빡빡 씻어. 특히 아랫도리!”
철진과 연실 커플은 이후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품행제로>에서 다시 만났다. 문덕고 쌈짱 ‘중필’과 그를 짝사랑하는 정란여고 쌈짱. ‘나영’은 모범생인 줄만 알았더니 기세로 밀리지 않는 민희(임은경)와의 삼각 관계에 자존심 제대로 긁히지만, 중필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얻어터지는 의리녀다.
케이트 모스와 조니 뎁, 기네스 팰트로와 브래드 피트처럼, 교제 당시 레전드 커플룩을 남긴 공효진과 류승범. 두 사람은 헤어진 후에도 <가족의 탄생>(2006)에서 헤어진 연인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공효진이 주연을 맡은 <파스타>(2014)에 류승범이 특별 출연하는 할리우드 스타일 의리를 보여주었다.
구도원 선생, 인생 바뀔 준비 됐나?

“인생 바뀔 준비 됐지?” <질투의 화신>(2016) 조정석과 <동백꽃 필 무렵>(2019) 강하늘에게 공효진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공효진과 멜로를 찍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건 정설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2026년에 공블리를 만나 인생이 바뀔 대운의 남자는? <유부녀 킬러>에 캐스팅된 ‘구 구도원’, 정준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