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열풍 속, 웰니스와 맞닿은 ‘장’의 세계.


JJAN · Cho Young Jae
‘인막불음식선능지미(人莫不飮食鮮能知味)’. 방배동 골목에 숨어 있는 오마카세 다이닝 ‘짠’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글귀다.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진정한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짠의 조영재 셰프는 발효를 통해 식재료 본연의 진실한 맛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2022년 발효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배움에 그치지 않고, 장과 장아찌, 잼, 차 등 온갖 형태로 맛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미식 실험을 이어왔다.
“제주의 발효 연구 공간 ‘오지나’에서 맛본 어간장이 제 인생을 바꾸었어요. 각종 갑각류가 허연 부유물이 된 어간장에서 폭발하는 감칠맛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시간이 쌓이며 원물의 향과 질감이 완전히 새롭게 탄생하는 발효 과정은 마치 연금술 같아요. 시간이 쌓일수록 맛의 힘이 더 깊어지고, 셰프로서 저만의 무기를 갖추게 됩니다.”
그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하루에 단 6명뿐이지만, 매일 오전부터 영업시간인 오후 6시까지 식재료를 손질하고, 장을 담그고, 장아찌의 발효를 관리하고, 장을 블렌딩하고, 차를 덖는다. 직접 담근 발효 식품의 활약은 메뉴 전반에 두드러진다. 장과 장아찌, 김치 등을 초밥에 곁들이고, 샤리는 6종의 장아찌 국물을 배합해 짓는다. 회무침에 사용하는 소스도 고추장과 간장, 된장을 베이스로 발효한 과일, 잼 등을 섞어 독특한 ‘블렌딩 장’을 창조한다. 모든 재료는 계절의 에너지가 응축된 ‘제철’을 고집해 텃밭에서 기르는 10종의 채소,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자연산 재료만 취급한다.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약식동원’에 뿌리를 둔 그의 요리 철학은 ‘재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음식에 집중해 음식의 여정을 이해하며 씹고 음미하는 과정이 일종의 명상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매개로 몸과 마음을 이어주며, 이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음식 학교를 설립해 지속 가능한 발효 문화를 안착시키고 싶다는 것이 그의 뜨거운 바람이다.

Jogakbo Kitchen · Tom Kim
안다즈 서울 강남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 ‘조각보 키친’은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이 비슷하다. 한식을 기반으로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하는 김민재 셰프는 누가 먹어도 ‘맛있는’ 한식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장’은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는 주요한 요소다.
“장의 높은 염도와 숙성 과정에서 형성된 특유의 향은 장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이질감을 줘요. 하지만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맛의 밸런스가 달라지죠. 장은 단순히 간을 맞추는 재료를 넘어 요리의 깊이를 결정하고, 한식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요.”
한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재료인 장을 요리조리 탐구한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장을 활용했다. 쌈장을 파우더 형태로, 고추장을 칩으로, 간장을 구슬로 만들어 캐비아처럼 연출하는 등 형태의 변주를 시도했다. 익숙한 맛은 유지하되 플레이팅과 식감을 시각적·감각적으로 재해석해 장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였다.
“형태의 변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의 소스와 장을 접목하는 실험도 여러 번 진행했어요. 최근에는 장의 활용 범위를 더 넓혀 칵테일과 디저트에 응용하려고 해요. 이런 시도는 한식의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에요.”
여러 장 가운데 그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건 ‘간장’이다. 버섯, 도라지 등 다양한 재료로 장을 담그며 나름의 도전을 이어가는 그는 장의 ‘예측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데이터화하고 정확하게 계량한다.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맛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오랜 시간 기다린 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지만, 이런 불완전함이 도전 정신을 자극해요.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더 깊이 배우고 확신을 쌓으며, 가장 맛있는 한식의 맛을 구축하고 싶어요.”

한국의 장은 간장, 고추장, 된장에서 그 뿌리가 시작된다. 콩을 삶아 곰팡이를 피운 발효 덩어리 메주를 기반으로 한 이 조미료는 한식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장은 유익균과 아미노산, 펩타이드 등 발효 부산물이 풍부한 자연 발효 식품으로, ‘한국의 프로바이오틱스’라 불릴 만큼 신체 리듬을 안정화하는 데 탁월한 기능까지 갖췄다. 건강한 염도를 함유한 장을 먹으면 짠맛과 신맛이 침샘을 열어 미네랄이 분비된다. 이때 분비된 미네랄은 음식물을 촉촉하게 적셔 소화를 돕고, 미각 수용체의 감각을 예민하게 깨워 맛을 더 깊게 느끼도록 만든다. 몸이 아플 때 다른 반찬 없이도 흰죽에 좋은 간장 한 스푼을 곁들이던 풍습은, 장의 영양학적 효능을 이미 꿰뚫고 있던 우리 선조의 깊은 지혜가 아니었을까.
장은 인위적인 완벽함이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일 때 비로소 최고의 가치를 발현한다. 그래서 세상에 완벽한 장은 없다.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으며, 오래된 씨간장은 한 집안의 정체성이다. 콩, 소금, 물로만 완성된 이 소박한 조미료는 요리 과정에서 적당함의 미학을 깨닫게 한다. 극단으로 치닫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적당히 넣었을 때 최상의 맛을 구현해 여러 재료와의 균형을 고려하게 한다. 겨울에 메주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봄에는 장을 담그고, 1년 혹은 그 이상의 숙성을 거치는 인고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법을 배운다.
장을 담글 때 길일을 택하거나 장독에 나쁜 기운이 들지 않도록 숯과 고추, 솔잎 등을 엮어 금줄을 만들고 정초에 풍물패가 지신밟기를 할 때 장독대를 방문한 걸 보면 한식의 근간이 되는 이 재료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애정을 가졌을지 짐작이 간다. 혼자보다 여럿이 모여 함께 담그는 장 문화는 모든 가치를 인정받아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시간이 쌓일수록 빛을 발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불완전함을 존중하는 장은 웰니스를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맞닿아 있다.
- 포토그래퍼
- 서종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