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에 대한 K-팝 팬의 소신 발언

연말연시를 장식하는 수많은 K-팝 시상식 릴레이 무대는 과연 무엇을 위한 걸까? 시상식 좀 다녀본 한 K-팝 팬의 고찰. 

올해 데뷔 3년 차를 맞은 라이즈(RIIZE)가 최근 두 달간 참석한 주요 시상식 및 연말 무대는 다음과 같다. 코리아 그랜드 뮤직 어워즈(KGMA), 마마 어워즈(MAMA),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AAA), 후지TV FNS 후야제, 뮤직 뱅크 글로벌 페스티벌 인 재팬, 멜론 뮤직 어워드(MMA), SBS 가요대전, MBC 가요대제전…. 이 중 절반은 당연히 대만이나 홍콩, 일본 같은 해외에서 열렸다. 2월 개최를 앞둔 한터뮤직어워즈와 디어워즈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라이즈가 바쁜 건 그렇다 치자. 다만 당신이 열성적인 K-팝 팬이라도 궁금할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시상식이 이렇게 많아졌는지, 왜 몇몇 이름은 이토록 낯선지. 당연한 일이다. 일간스포츠가 새롭게 선보인 시상식인 KGMA는 이제야 2회를 맞았고, 동아일보 주최의 디어워즈 역시 2025년이 첫 회였다. 올해 40주년 된 골든디스크 어워즈의 주최사가 중앙그룹이 된 것은 2020년부터다.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언론사 주최 시상식의 비중이 유독 높다는 것이다. AAA는 머니투데이 산하 스타뉴스가 주최하며, 더팩트 주최의 더팩트 뮤직 어워즈(TMA)와 스포츠서울 주최의 서울가요대상도 있다. 2024년 1월 스포츠조선이 방콕에서 개최하려고 했으나 취소된 청룡뮤직어워즈를 비롯해 이름을 바꾸거나 사라지거나, 유보된 시상식까지 포함되면 그 리스트는 한층 길어진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업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하 음콘협)는 우후죽순 생기는 K-팝 시상식 개최에 우려를 표하며, 이에 대한 자정 작용의 일환으로 써클차트뮤직어워즈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음콘협이 문제로 지적한 것은 시상식 개수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시상식이 앱을 통한 유료 인기 투표를 활용해 팬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며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지점, 일부 주최 측이 출연을 담보로 이미지에 해를 입힐 수 있는 보도나 방송 출연 기회 제한 같은 보복 조치를 언급하기도 하는 점을 지적했다. 

나는 오랜 K-팝 팬이자 17년 차 에디터다. 패션 매거진도 아이돌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일찍부터 주장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K-팝에 대한 애정으로 패션지를 떠나 <빌보드 코리아> 이직을 감행하기도 했으며, 14세 때 클릭비 콘서트를 시작으로 정말 많은 국내외 콘서트와 시상식, 페스티벌을 다녔다. 직업상 초대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돈내산’이다. 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유료 투표나 고가의 티켓은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 팬에게 가장 큰 슬픔은 ‘돈을 쓰려고 해도 공연장에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사와 아티스트 사이 위력 관계가 ‘섭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아티스트의 문제가 될 만한 과거는 주최 측에 ‘호재’다. “거기 멤버 과거 사진 뜨지 않았어? 그걸로 얘기해봐야지.” 관계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이런 말이 실제 섭외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획사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는 분명하다.

물론 언론사와 매니지먼트는 갑을관계라기보다는 공생관계에 가까우며 국내 언론사들도 K-팝의 확장과 성공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 바뀌는 미디어 환경에서 이들 또한 여러 수익 창출을 도모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글로벌한 영향력과 조회수가 확보되는 K-팝 아티스트는 유튜브 채널, 인스타 매거진 운영 등에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니까. 다 좋다 치고, 팬 입장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다음의 것이다. 그래서 아티스트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팬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은 ‘기억에 남는 좋은 무대, 특별한 무대’다. 이런 지점에서 음악방송 경험이 누적된 대형 방송국의 시상식은 무대연출 면에서 확실히 유리함이 있다. 실제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MAMA를 선호하는 것은 높은 화제성과 무대 퀄리티를 담보하기 때문일 것이다. 베이비몬스터의 HUNTR/X 커버 무대는 1800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쟁쟁한 출연진들의 무대를 제치고 ‘2025 MAMA’에서 최고의 조회수를 올렸고, 이는 아티스트의 실력파 이미지와도 이어졌다. ‘2025 AAA’에서는 객석에 있던 혜리가 ‘앙탈 챌린지’에 호응하는 장면이 바이럴되면서  TWS의 미니 5집 타이틀곡 ‘Overdrive’는 음원 차트 역주행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이처럼 객석에 앉은 아티스트들의 리액션 장면도 시상식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로 팬들에게 회자된다.

반면, 중계 채널이 없어서 스트리밍 채널 중계에 그치거나 밋밋한 카메라 워킹의 자사 유튜브 영상으로만 남는 경우는 이 무대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이 시상식 무대 하나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기대치가 높아진 지금 어느 무대 구성, 어느 의상 하나 소홀히 했다가는 소속사고 아티스트고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시상식 무대는 이들에게 높은 스트레스 요인이다. 소속사들이 공개하는 비하인드 영상이 요즘은 노력의 과정을 팬덤에게 확인받기 위한 과제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 치열한 준비에도 타이트한 큐시트 탓에 무대가 축소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석이 잡히는 등의 방송 사고는 여전히 빈번하다. 그저 별다른 안전사고가 없었음에 안도해야 할까? 

또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수상 자체가 의미가 있는가? 많은 소속사와 주최 측 관계자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상을 받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으며, 특히 신인이나 중소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일 경우 큰 무대에 서는 경험 자체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데뷔 6년 차에 접어든 그룹 멤버에게 최근 가장 동력을 얻은 순간을 묻자, 그는 얼마 전 언론사 주최의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꼽았다. ‘대상’이 갖는 의미가 그래도 컸던 것이다. 최근 한 신인 팀이 시상식에 출연한 것을 보고 내심 ‘저 언론사에서 제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이니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수년 전 댄서로 올랐던 이 무대에 아티스트로 서니 감회가 새롭다’는 멤버의 수상 소감을 들었을 때 나 역시 뭉클했다. 솔직히 전 세계 스타디움 투어를 하는 스트레이 키즈가 올해 MAMA에서 대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BTS가 눈물을 쏟은 2018년과는 세상도, 시상식의 의미도 달라진 줄 알았는데!

그러나 지금처럼 티켓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을 노리며 해외를 떠도는 K-팝 시상식이 얼마나 더 유지될 것인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우선 비용이 너무 든다. 1일권 평균 20만원, VIP 혜택 포함 시 50만원까지도 치솟는 티켓 가격, 여기에 호텔과 이동 비용까지 감안하면 부담은 한층 커진다. 10분도 되지않는 ‘최애’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이 비용을 언제까지 지불할 수 있을까? 주최 측은 대형 공연장을 얻어 더 많은 티켓을 판매하고 싶겠지만, 이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마음과 상충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올 정도의 티켓 동원력이 있는 팀, 실제 투표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팬덤이 강력한 아티스트만 중복적으로 소환되고, 그럴수록 중소 기획사나 신인 아티스트도 독려해야 하는 시상식의 본질과는 멀어진다. 관객 경험도 아쉽다. 현장 관객의 시야보다 송출 화면의 화려함에 치중하다 보니, 현장 스크린 설치 등이 미흡할 때도 있다. 단독 콘서트처럼 팬석에 다가가는 연출조차 없이, 대다수의 관객들은 열악한 시야에 갇힌 채 끝없는 스폰서 광고를 견뎌야 한다. 결국 진짜 의미 있는, 소수의 시상식만이 생존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수많은 비행과 클릭 끝에 거쳐 만났던 무대, 이를 향한 해외 팬들의 뜨거운 환호와 열기, 현장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뒤에서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땀을 생각하면서 결국 나는 오늘도 가지 못한 시상식 클립을 클릭한다. 또 미처 알지 못한 뜻밖의 순간과 매력을 발견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UNIQU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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