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안나는 시술’은 원하지만 자연스럽게 늙는 얼굴은 원하지 않는다!?
‘티 안 나는’ 시술의 시대. 인공미에서 자연미로 트렌드가 180도 바뀐 듯 보이지만, 노화에 대한 혐오와 경계심은 여전하기에 우리는 결국 제자리걸음 중이다.

생애 첫 보톡스 경험은 내가 몸담고 있던 <얼루어>의 페이스북 라이브 행사 때였다.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시청자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히알루론산 필러 시술을 받았다. 시술을 담당한 의사는 절대 과하게 넣지는 않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사실 그 순간 가장 무서웠던 건 시술의 통증이나 부작용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입술이 지나치게 두꺼워져 영영 우스꽝스러운 ‘오리 입술’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내 불안을 감지한 의사는 시청자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제 고객은 수술에 보수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얼굴에 칼을 대는 수술보다는 최소한의 시술을 선호합니다. 티 나지 않으면서, 본래 자신의 모습은 유지하되 좀 더 예뻐진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하죠.” 그는 약속을 지켰다. 시술 후 내 입술은 전보다 아주 조금 더 도톰해졌을 뿐이다. 나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2017년에는 ‘MLBB(My Lips But Better)’ 트렌드가 정점을 찍고, 플럼핑 립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에디터로서 첫발을 뗄 무렵만 해도 SNS는 ‘카일리 제너 입술 챌린지’로 떠들썩했다. 인스타그램 사진에 필터를 씌우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심지어 소시지 사진에도 뽀샤시한 필터를 입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는 했다), 뷰티업계의 화두는 온통 눈썹에 몰려 있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미용 시술은 대중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바야흐로 ‘메디컬 에스테틱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이제 예뻐지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간편한 시술을 택했다. 내 피드는 볼 필러, 브로우 리프트, 실리프팅, 그리고 CG처럼 매끈한 이마를 만드는 ‘보톡스 페이스’ 같은 콘텐츠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열광했다(물론 이런 허영심에 반발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등장한 틱톡은 과거 인스타그램 영향력의 수천 배에 달하는 파급력을 가졌다. 거의 매일 새로운 성형 트렌드를 쏟아냈고, 메디컬 에스테틱 업계는 경쟁적으로 틱톡을 통해 신종 시술을 선보였다. ‘시술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헤어와 메이크업 업계도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물론 트렌드는 늘 변한다(예를 들어 배꼽 피어싱이 다시 유행하며, 밀레니얼 세대인 내게도 배꼽 피어싱을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그 유행이 한창이던 Y2K 시절에는 미성년자라 부모님 동의가 필요해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하지만 머리에 리본 핀을 하나 꽂아 ‘리본 코어(Ribbon Core)’ 룩을 연출하는 것과 시술은 차원이 다르다. 시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신체적 위험 부담이 따르기에 훨씬 더 예의 주시해야 한다.
다음 트렌드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던 차에, 최근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이 감지됐다. ‘티 나지 않는(Undetectable)’ ‘감쪽같은’. 요즘 성형수술 앞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이전과는 180도 다른, 바야흐로 ‘자연스러운 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24년 9월 <데이즈드(Dazed)>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감쪽같은 변화’를 언급하며 그가 마치 전성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버디(Byrdie)> 역시 린제이 로한의 놀라운 회춘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 뉴스레터 <에어메일 룩(Airmail Look)>은 과도한 시술로 얼굴이 부자연스러워졌음에도 필러 주입을 멈추지 못하는 ‘필러 맹시(Filler Blindness)’ 현상을 꼬집으며, 이것이 Z세대가 필러를 기피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보도했다(Z세대는 필러 때문에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이 모든 신호는 우리가 ‘포스트-인스타그램’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린다. 과거에는 과감하고 화려한 인공미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풋풋하던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지불’과 ‘젊음’이다. 이에 대한 내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새삼스럽게? 대부분의 미용 시술은 원래 티 안 나게 하는 거 아니었나?” 일반적으로 미용 시술의 목적은 최대한 결점을 자연스럽게 보완하는 데 있다. 이 말 자체가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나? 젊고, 탄탄하고, 날씬한 미인상이라는 전통적인 미적 기준과 별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젊음을 추구하는 건 이 시대만의 유별난 트렌드가 아니다. 젊음은 시대를 관통하며 미의 기준을 지배해온 변치 않는 절대 권력이었다. 하지만 ‘거의 티 나지 않는’ 시술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해서, 그 파급력까지 티 나지 않는 건 아니다. 모두가 ‘감쪽같이’ 결점 없는 외모를 갖게 된다면 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더욱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노화 징후를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전보다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노화에 대한 공포는 이런 ‘트윅먼트(Tweakment, 교정)’를 받아야 한다는 설득력을 높인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받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인공미에서 자연미로 트렌드가 완전히 바뀐 듯 보이지만, 노화에 대한 혐오와 경계심은 여전하기에 우리는 결국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웰니스 문화가 확산하며 나이 듦의 특권이나 건강한 삶의 태도가 강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노화는 자연스러운 삶의 궤적이 아니라 개선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고도로 발달한 의료 기술 덕분에 우리는 노화라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을 뒤로 미루는 게 가능해졌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토록 노화를 늦추기 위해 필사적인가? 의학적 도움은 어느 시점부터 득보다 해가 되는가? 경제적 여력이 되는 이들은 노화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려고 임시방편으로 시술을 찾는다. 복잡한 내면을 마주하는 것보다 외면하는 편이 훨씬 쉽고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그걸 얻기 위해 들인 수고를 잊게 한다. 시술은 비교적 간단한 절차와 즉각적인 효과를 보장하기에 여유 있는 사람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었고, 어느새 부유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경제력이 없는 이들은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다’고 외치는 세상 속 초라한 자신을 자책하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정 소득 구간 아래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워지기 위한 진입장벽은 턱없이 높다.
조각상 같은 완벽함을 추구해온 지난 10년의 트렌드는 이제 마이크로 보톡스나 베이비 보톡스 같은 미세 시술로 완성되는 ‘자연미’가 대체했다. 내가 발끈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적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취향에 따라 시술 메뉴를 고르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마다 바뀌는 시술 트렌드를 좇아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잡지사를 떠난 후로는 한 번도 얼굴에 무엇을 주입해본 적이 없다. 물론 턱관절 장애를 완화할 수 있는 사각턱 보톡스 가격을 검색해보기는 했지만, 아직 이를 가는 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혹적인 시술과 나 사이에 ‘경제력’이라는 장애물이 생긴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예뻐지기 위한 우리의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 영역이지만, 그 선택이 완전한 진공상태에서 이뤄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뷰티 트렌드는 결국 그 시대의 문화·경제·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산물이다. 시술을 원하는 우리의 욕망조차 외부 상황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음을 인지한 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내 모습을 드러내는 일. 이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결정이기에 수고스럽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더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진짜 ‘자연미’다.
- 글
- SABLE YONG
- 포토그래퍼
- 최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