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의 소비 기록에 대한 이야기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통과해온 세대가 ‘느림의 미학’을 습득하고, 스스로 소비의 고삐를 잡기 시작했다.

띠가 세 번 돌았다. 네 번째 ‘말의 해’를 맞이하니 사뭇 묘한 기분이 든다. 1990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를 기억하지만, 디지털로 생존하며 두 시대를 동시에 살아왔다. 스스로 스타일에 신경 쓰기 시작할 무렵엔 유행에 지나치게 반응했고, 질을 따지며 한 벌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는 여러 벌의 선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옷장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빠르게 사고, 빠르게 입고 교체하는 ‘옷 입는 방식’에 철저히 길들여졌다. 일명 ‘패스트 패션’이라고 하는 속도전. 시간이 흘러 그 구조적 한계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값비싼 브랜드의 옷보다 패스트 패션이 제공하던 접근성과 속도가 적잖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 무렵 패션계는 스트리트와 하이엔드 사이의 위계가 본격적으로 해체되던 때이기도 했다.
슈프림과 루이 비통의 협업은 스트리트 컬처를 럭셔리의 중심 무대로 끌어올렸고, 익명의 디자이너 집단으로 등장한 베트멍은 기존 하우스 시스템과 미학적 규범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패션 권위 자체를 뒤집었다. 이 같은 가속의 흐름 속에서 버디버디와 싸이월드,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틱톡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커뮤니티 환경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우리는, ‘무엇을 소유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는지’에 더 집중했다.
1990년생 세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김지용은 이 속도의 시대를 관통했기에 오히려 역방향을 선택했다. 그는 더 오래 기억되면서 입혀지는 옷을 만들기 위해 ‘왜 이렇게까지 빨라졌는지’를 먼저 질문하며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췄다. 이 같은 선택에는 개인적 기억도 겹쳐 있다. “일본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는지를 두고 현지 친구들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요지 야마모토보다 유명해?’라는 질문 앞에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순간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이후 영국 유학생 시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옷을 많이 좋아하던 나조차 정작 소비하고 싶을 만큼 설득력 있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은 많지 않아 아쉬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브랜드 이름에 자신의 한국 이름을 그대로 남겼다. ‘지용킴.’ 서울 한남동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쇼룸, 신제품 경쟁 대신 전시에 가까운 방식으로 컬렉션을 소개하는 태도는 그의 브랜드가 선택한 또 다른 속도다. 쇼룸 한편에 놓인 <선블리치 가먼츠> 역시 같은 맥락.
디지털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음에도, 지용킴은 종이책을 택했다. 조용한 공간에서 책장을 넘기며 옷을 이해하는 경험 자체가 브랜드의 일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쇼룸에서 옷 두 벌을 고르기 위해 3시간 넘게 머물다 가기도 합니다. 오롯이 제 브랜드를 좋아해서 전시를 보러 왔다고 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브랜드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고요.” 이 지점에서 90년생 세대의 태도는 분명해진다. 빠르게 소비하던 세대는 가장 느리게 선택하는 법을 배웠다. 윤리나 지속 가능성이라는 거창한 용어 이전에 ‘내가 이걸 왜 선택하는지’를 끝까지 묻는 방식이다.
90년생이 30대에 접어들 무렵, 패션계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전례 없던 팬데믹이 터진 것. 경험하지 못한 공포와 거리 두기 분화 속에서 기능성과 편안함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스타일의 새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퍼포먼스 웨어는 일상복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옷은 몸의 움직임과 건강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변화는 몸을 어떻게 관리하고, 일상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골프와 테니스 붐을 거쳐 이 순간 러닝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데상트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이다건 프로는 이를 커리어와 결혼·출산, 재정과 건강까지 한 번에 책임져야 하는 시기를 사는 90년생 세대 특유의 감각으로 설명한다. “확실히 90년생은 자기 관리에 다소 강박적인 세대인 것 같아요. 지금이야말로 관리를 해야 하는 때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건강과 일상을 스스로 케어한다는 소신이 명확해졌죠.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분위기도 분명 있고요.” 특히 비용과 진입장벽이 낮은 러닝 장비에 대한 기준은 빠르게 높아졌다.
이다건 프로는 브랜드 마케터의 시선에서도 이를 흥미로운 흐름으로 예의 주시한다. “요즘에는 마라톤 대회가 늘어나고 기록 경쟁의 레벨이 높아지면서, 기록이 좋은 아마추어 러너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러닝화 역시 일상용과 실제 달리기용으로 명확히 나뉘기 시작했고요. 그 기준이 높아진 만큼 카본화를 일상화처럼 신지는 않거든요.” 성취를 향한 장비 업그레이드와 스타일을 드러내는 러닝 룩이 공존하는 지금의 러닝 신(Scene)은, 이 세대의 소비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같은 시기 명품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우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름과 비전이 브랜드의 대표 얼굴이 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왔다. 디자이너의 잦은 교체, 하우스 정체성의 흔들림,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패션의 무게중심이 뉴욕과 아시아로 이동하는 흐름까지, 업계 뉴스는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윤리적 패션에 대한 경각심이 정치적·환경적으로 몸을 조여온 것도 한몫했다. 다수의 제품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대신, 하나를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 시절을 동경하며 엘리 타하리에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 파페치의 스타일리스트와 CRM을 거쳐 지금은 명보 Inc. 레포시 마케팅 매니저인 이재효. 그는 커리어만큼 패션의 빠른 속도를 체험한 당시를 되돌아보며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나 소비의 방식은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새로운 니트를 봐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신발 앞에서는 ‘한 번에 하나만 신을 수 있다’는 현실이 떠올랐어요. 실제로 손이 가는 아이템은 늘 한정돼 있었고, 아무리 값비싼 옷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해지거나 색이 바래서 남는 것이 없다는 감각이 점점 명확해졌죠.” 이후 선택의 기준은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도 의미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 변화에 대해 “반드시 비싸야만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동시에 “오래 손을 타는 물건에는 분명한 기준이 생겼다”고 덧붙인다. 시간을 비교적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지속 가능한 아이템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미디어와 소셜 플랫폼의 보편화는 K-팝 문화를 전면으로 끌어올렸고, 국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범지구적인 트렌드로 확산됐다. 이 흐름은 유럽 럭셔리 시스템의 내부를 경험해온 시선에서도 감지된다.
프랑스 르 봉 마르셰 백화점 마케터로 오랜 시간 커리어를 쌓은 사라 자릴(Sara Jaril)은 현재 여러 대륙을 오가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컨설턴트 에이전시 ‘더 비전 랩’을 운영 중이다. 자릴이 체감하는 오늘날의 패션 환경은 어느 때보다 밀도 높지만 동시에 균질화되어 있다. 그는 옷을 입는 행위와 관련해 지금을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트렌드와 이미지, 정보와 콘텐츠가 과하게 쏟아지다 보니 뭘 입어야 할지보다 왜 입어야 하는지부터 헷갈리게 되죠. 한때는 패션이 취향과 안목을 드러내는 코드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누구나 바로 베낄 수 있는 이미지가 돼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패션을 통해 자신만의 특이성을 드러내려고 한 욕망은 이전보다 분명히 옅어졌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같은 트렌드, 같은 멜로디, 같은 챌린지가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그는 오히려 이 시스템이 진정한 개성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아이러니하게 바라본다.
자릴 또한 소비 기준이 바뀌었다. 요즘 그는 럭셔리 백화점의 디자이너 섹션을 둘러볼 때 가장 먼저 소재 구성과 생산 국가, 가격대를 확인하는데 종종 헛웃음이 난다고 말한다. “원단과 마진 구조, 마케팅 비용, 앰배서더 계약 같은 구조를 알게 되니까 더 이상 신비로울 게 없거든요. 그걸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게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과거와 달라진 건 구매력이 아니라 태도예요. 소위 말하는 ‘세련된 빈곤’, 즉 경제적으로 빠듯한 상태에서 럭셔리 아이템만을 고집하는 상태는 정말 피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자릴은 패션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는다. 다만 시선이 이동했을 뿐이다.
최근 그가 가장 흥미롭게 바라보는 지점은 유럽 외 지역에서 등장하는 신진 브랜드다. 그는 “중국, 한국, 인도, 멕시코처럼 각 나라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오랫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럭셔리 내러티브에 지적인 방식으로 도전하는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 속에서 명품의 의미 역시 보다 폭넓어진다. “잘 설계된 호텔이나 세심한 레스토랑, 깊이 있는 스파 경험은 비물질적이지만, 그 안에서 받는 배려와 집중, 태도를 통해 진정한 럭셔리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어쩌면 오늘날의 패션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일지도 모른다.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한 1990년생 세대에게 럭셔리는 가까이에서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대상이 되었다. 왜 이 브랜드를 택했는지, 이 디자인의 무엇에 끌렸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갑을 연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기에, 이제는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안다. 무작정 멈추지는 않지만, 더 이상 이유 없이 달리지도 않는다. 질을 몰라서 양을 택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양을 경험한 뒤에야 질로 이동했다. 어쩌면 이 변화야말로, 90년생이 세 번의 띠를 지나며 완성해온 가장 현실적인 성장의 궤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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