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어디까지 진화했을까?

AI 기술을 입고 혁신적 라이프스타일을 이끌 안경의 오늘과 내일. 

스포티브한 ‘벨로 케이토‘ 고글 선글라스는 오클리(Oakley). 크로커다일 패턴의 램스킨 소재 코트와 고트 레더 글러브는 코스(Cos).

마블 세계관 속 토니 스타크의 유산, 첨단 AI·AR 안경 ‘이디스(EDITH, Even Dead, I’m The Hero)’의 현실화가 머지않았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등장한 비밀 병기 이디스는 피터 파커의 홍채를 인식해 작동하며, 스마트폰 해킹부터 위성망 통제, 간단한 명령으로 공격용 드론을 출격시키는 ‘사기템’ 그 자체다. 그토록 섹시한 CEO 토니 스타크의 ‘억’ 소리 나는 패션 감각까지 함축된 이디스는 세상을 데이터로 편집하는, 일상적이면서도 세련된 기술이다. 물론 현실에서 우주 생명체를 향해 미사일을 쏘거나 친구의 메시지를 훔쳐보는 불법적 지시를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눈 바로 앞, 시선의 거리에서 AI가 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패션과 첨단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디스’의 프로토타입과도 같은 AI 안경, 공상과학 영화 속 상상 같은 현실이 오늘과 내일을 새롭게 기록한다.

지금, AI 안경이 바라보는 곳

매 시즌 패션에 최첨단 과학을 정교하게 결합해온 코페르니가 2025 F/W 시즌 주목한 대상은 다름 아닌 AI(인공지능) 아이웨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실험적 디자인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어떤 스타일과도 조화롭기로 정평이 난 레이밴의 웨이페어러 에디션을 선택했고, AI 기술을 더해 완벽히 새로운 차원의 클래식으로 패션쇼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레이밴과 오클리를 포함해 프라다, 버버리, 베르사체 등 여러 패션 하우스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럭셔리 아이웨어 그룹 에실로룩소티카의 통찰이 있었다. 일찍이 메타(Meta)의 손을 잡은 에실로룩소티카는 “단순히 안경의 프레임에 기술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 기술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함”이라며 협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 결과 탄생한 ‘레이밴×메타×코페르니’ 한정판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모델은 캣워크를 활보하는 동안 착용자의 음성 명령을 실시간 처리하는 AI 비서를 통해 ‘핸즈프리 레코딩’ 기능을 실행했고, 이후 그들의 시선은 1인칭 시점(이하 POV) 영상으로 재가공돼 소셜 채널에 공개됐다. 웨어러블 기기가 패션 미디어의 콘텐츠 자산으로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에요. 점점 더 은밀하고 미묘해지는 그 지점이 우리가 표현하려는 패션입니다.” 코페르니의 공동 디렉터 세바스티앙 메이어와 아르노 베일랑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더 나아가 올해 9월 메타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팔목에 착용하는 ‘뉴럴 밴드’를 결합한 ‘레이밴 메타 디스플레이’ 안경을 공개했다. 실제 시야를 가리지 않는 반투명 스마트 디스플레이가 오버레이되는 신제품은, 뉴럴 밴드가 감지한 손동작만으로 AI 챗봇을 호출하고, 실시간 POV 라이브 스트리밍을 지원하는 등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 또 ‘대화 집중’ 기능을 통하면 주변 소음을 차단해 대화 중인 사람의 음성만 선별적으로 증폭시키며, 실시간 자막 생성과 번역(현재는 일부 언어만 한정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전 버전 사용자라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상당수 새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충전 케이스의 부피나 약간의 무게감, 배터리 지속 시간 등이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얼리어답터에게 너무나도 달콤한 스마트 안경의 인기는 날로 치솟는 중이다.
에실로룩소티카 CEO 프란체스코 밀러리는 메타 레이밴 생산량을 연말까지 1000만 대로 늘릴 예정이라는 계획을 발표하며, “머지않아 수억원대의 스마트 안경이 스마트폰을 대체하고, 거대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전망했다. 

AI와 함께 달리는 시대

오클리는 최근 미국의 ‘힙쟁이’들이 몰려드는 덴버의 리버 노스 아트 디스트릭트에 새 부티크를 오픈했다. 스포츠 마니아가 애정하는 퍼포먼스 룩과 아이웨어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이 매장이 특별한 이유는 메타의 스마트 안경 하드웨어를 실제로 테스트하는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어서다. 첨단기술을 접목한 벙커 스타일의 공간에서 만날 AI 안경 역시 브랜드의 인기 모델 ‘HSTN’과 ‘뱅가드’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다. 둘 다 같은 기술에서 출발하지만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오클리 메타 HSTN’ 라인은 도시 러닝과 출퇴근, 여행 브이로그, 일상 기록 등 다양한 장면을 기록하는 라이프로그 도구로 최적화됐다. 스마트폰도 워치도 필요 없다. 홀몸에 선글라스만 낀 채,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경치 좋은 러닝 코스를 뛰다가 ‘하이라이트 캡처’를 실행해 그 벅차오르는 순간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 여기에 오클리 시그너처 기술인 프리즘 렌즈를 선택할 수 있기에 일상의 색 대비와 주변 환경의 디테일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딱, 오늘을 더 멋있게 기록하는 AI 선글라스인 셈이다.

반면 ‘오클리 메타 뱅가드’ 라인은 스포츠과학과 데이터 중심의 기능을 전면에 내세워 극한 운동 환경을 기준으로 설계한 ‘AI 스포츠 기어’로 포지셔닝된다. 하이퍼랩스와 슬로모션 모드를 제공하는 초광각 12MP 카메라를 탑재했고, 최대 1m 깊이의 물에 30분 침수되어도 손상 없는 IP67 등급 방수·방진 성능을 갖췄으며, 사이클 헬멧과도 완벽하게 호환된다. 또 가민 스마트워치와 연동하면 메타 AI가 착용자의 심박수, 페이스, 호흡 패턴을 실시간으로 읽고 분석해 “지금 속도를 5% 줄이세요” “왼쪽으로 30m 후 방향 전환하세요” 같은 개인 맞춤형 코칭을 음성으로 제공한다. 또 프리즘 렌즈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어 트랙과 로드, 트레일, 워터 등 갖가지 환경에 적합한 최상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오클리의 AI 스포츠 기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전문 러너 출신 트레이너 카슨 밀러는 “AI 안경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눈앞의 퍼스널 트레이너에 가깝습니다. 자세 교정과 보폭, 피로도 관리까지 실시간으로 피드백해줍니다”라고 평했다. 

기억과 감정을 읽는 기술의 미래

이제 패션 하우스는 AI 기술이 넓힌 시야에 감정을 입히고 있다. 케어링 아이웨어는 올해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공식화하며,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감성을 그대로 살린 AI 아이웨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이 참여하고 가까운 미래에 공개될 새로운 라인은 단순한 음성 명령 수준을 넘어 ‘감정 인식 기반’이라는 방향을 모색한다. 착용자의 음성 톤, 시선의 흔들림, 심박수 변화를 읽어 기분에 따라 렌즈의 색조가 부드럽게 바뀌거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자동으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젠틀몬스터 역시 안드로이드 XR(확장현실) 기반의 AI 스마트 아이웨어 개발을 목표로 구글과 손잡았다. 구글의 XR을 총괄하는 샤하람 이자디는 젠틀몬스터의 역할에 대해 “기술이 아닌 디자인과 감각으로 AI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는 파트너”라고 설명한다. 이는 성수동에 들어선 14층 규모의 플래그십 빌딩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서 입증된다. 거대한 인체 조형물과 움직이는 로봇, 반응형 설치물이 층별로 배치되어 있고, 일부 조형물은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곳. 패션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실험적 인터페이스가 되는 셈이다. 향후 구글과 젠틀몬스터가 선보일 AI 스마트 안경 역시, 이런 공간적·시각적 언어 위에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혁신이 곧바로 일상 속으로 스며들지는 못한다. 카메라, 마이크, 통신 모듈을 모두 탑재한 AI 안경은 여전히 법과 윤리의 시험대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파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전파법, 사람의 얼굴이나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동의 없이 타인을 촬영할 경우 적용되는 성폭력처벌법까지 동시에 얽히며 명확한 기준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유럽연합은 정보 보호 명령을 대체하는 법망인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을 통해 ‘실시간 영상 수집 시 익명화 및 저장 제한’을 명시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이민 단속 작전 중 레이밴 메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세관국경보호국(CBP) 요원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후 공공장소에서의 착용 가이드라인을 재검토 중이다. 역사적으로 패션은 늘 애티튜드를 규정해왔다. 패션을 입은 AI 안경 역시 결국 태도를 벗어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AI 안경이 상용화되는 시점, 착용하는 이의 윤리와 미감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도, 또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기억과 감정을 지닌 웨어러블 패션 액세서리로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을 이어가되,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이 안경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며 정의로운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내일이다.

    포토그래퍼
    임유근
    모델
    천쯔
    헤어
    임안나
    메이크업
    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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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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