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RANCE

얼루어와 ‘트루동’ 향수가 함께한 향기로운 밤

2025.11.22김지현

서울의 밤이 붉게 물든 날, 트루동 글로벌 디렉터들이 전한 향의 언어.

트루동 파티가 열린 서울 레스케이프 호텔.
45도, 미드나잇 오멘, 미스티크 3가지 향으로 구성된 ‘누엣 루즈’ 컬렉션.
45도, 미드나잇 오멘, 미스티크 3가지 향으로 구성된 ‘누엣 루즈’ 컬렉션.
사전 초대와 모집 이벤트를 통해 선정한 10인과 함께한 프라이빗 클래스.
트루동의 글로벌 세일즈 디렉터 오헬리엉 르페브르,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 마틸드 코르뱅. 

맡았을 때 단순히 좋은 향이라는 것만으로는 ‘좋은 향수’로 인정받기 어렵다. 향의 세계에서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을 독보적인 창의성과 정체성으로 보여주는 브랜드가 바로 ‘트루동(Trudon)’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향초 하우스 트루동은 17세기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시작되어 300년이 넘는 동안 ‘빛’과 ‘향’을 예술의 언어로 다뤄왔다. 그런 트루동이 이번에는 ‘밤’의 이야기를 향으로 번역했다. ‘누엣 루즈(Nuit Rouge)’ 컬렉션은 보틀 컬러부터 향의 밀도와 감정의 결까지 새롭게 정의한 것으로, 트루동이 8년 만에 선보이는 향수 라인이다. 트루동은 지난 10월 27일, 이번 출시를 기념하며 <얼루어 코리아>와 함께 관능적인 향으로 가득 채워진 시향회를 열었다. 이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서울을 찾은 트루동의 글로벌 세일즈 디렉터 오헬리엉 르페브르(Aurelien Lefevre)와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 마틸드 코르뱅(Mathilde Corbin). 두 사람으로부터 헤리티지의 무게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향을 창조하는 트루동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었다.

누엣 루즈 컬렉션은 트루동이 8년 만에 선보인 ‘향의 세계’다. 리뉴얼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뿐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트루동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이번 컬렉션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누엣 루즈는 향수의 본질적인 매력을 한층 깊이 탐구하려는 트루동의 시도다. 2017년 첫 퍼퓸 컬렉션 발표 이후, 우리는 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로 정의하고 그 방향을 지켜왔다. 누엣 루즈 컬렉션은 그 연장선에서 감정과 정체성을 더 강렬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한 단계 진화한 결과물이다. 

이번 컬렉션의 세 향수 ‘45도(45°)’ ‘미드나잇 오멘(Midnight Omen)’ ‘미스티크(Mystique)’는 모두 ‘20%의 부향률’을 자랑한다. 밀도 높은 향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했나?
시야쥬(Sillage, 잔향)가 강하게 남는 향을 구현하고자 향이 머무는 시간과 확산력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트루동과 합을 맞춘 경험이 있는 조향사 얀 바스니에(Yann Vasnier)와 에밀리 부주(Emilie Bouge)와 협업했다. 둘은 트루동의 철학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고농축 향수 제작에 뛰어난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원료의 깊이와 조합의 균형을 섬세하게 다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개성 강한 조향사들임에도 기존 트루동의 색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얀 바스니에는 트루동의 상징인 ‘꿀벌’에서 영감을 받아 바닐라와 허니의 조합을 제안했다. 그가 완성한 45도는 달콤한 향을 넘어 트루동의 오랜 헤리티지를 향으로 재해석한 시도다. 에밀리 부주는 트루동의 베스트셀러 캔들인 ‘에르네스토(Ernesto)’를 만든 조향사로, 트루동의 색을 잘 이해하는 조향사 중 하나다. 에밀리의 장점과 트루동의 색이 잘 어우러진 미드나잇 오멘과 미스티크는 감정을 향으로 풀어내는 그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에밀리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서사적 구조를 강조한 향을 창조하는 데 주력했다.

보틀의 색이 루비 레드로 바뀐 것도 무척 새롭다. 컬러를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가 있나?
기존의 클래식 라인과 차별성을 주는 동시에 이전 컬렉션과 조화를 고려해 선택한 컬러다. 특유의 붉은빛을 통해 고급스러움과 열정, 관능, 그리고 금기된 매력을 함께 담고 싶었다. 

이번 컬렉션의 메인 키 프레이즈는 ‘밤이 깨어납니다’로, 세 가지 향은 각기 다른 ‘밤의 순간’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낮보다 밤에 더 솔직해지고 대담한 감정과 행동을 드러낸다. 어둠은 감춰졌던 본연의 욕망이 피어나기 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엣 루즈’는 이런 ‘금기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피어나는 감각을 향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파티의 주인공 ‘누엣 루즈’ 컬렉션의 향을 맡을 수 있는 시향존.
포토월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82메이저 박석준과 남성모.
‘45도’를 든 배진영.
‘누엣 루즈’ 컬렉션의 키 컬러, 루비 레드 컬러의 옷을 입고 파티를 즐기는 스테이씨 세은. 

트루동은 첫 향은 물론, 잔향까지 중요하게 다루는 브랜드다. 이번 향수들의 잔향은 어떤가?
세 향 모두 ‘밤의 여정’을 따라 저마다 다른 무드와 감정을 보여준다. 45도로는 바닐라, 앰버, 허니가 어우러져 관능적이면서도 따뜻한 잔향을, 미드나잇 오멘으로는 바이올렛과 캐시미어 우드의 조합으로 신비롭고 시적인 향을 표현하고 싶었다. 미스티크에서는 스모키한 우드와 가죽이 어우러진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엣 루즈 컬렉션 중 <얼루어 코리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을 추천한다면?
강렬하고 우아한 잔향을 지닌 45도. <얼루어 코리아>는 대담하고 진취적인 매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기존의 한국 시장 취향과는 다른 향조지만, <얼루어>의 독자라면 그 여운과 특별함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트루동은 한국의 소비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한국은 매우 흥미로운 시장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트루동을 ‘캔들 브랜드’로 인식하지만,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향수 브랜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향에 대한 감도와 트렌드 변화 속도 역시 놀라울 만큼 빠른 한국 소비자는 향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에도 깊이 공감해 트루동의 철학과 서사에 특히 강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트루동의 모든 향에는 프랑스 왕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조세핀’은 나폴레옹 아내 조세핀 황후의 정원을 모티프로 한다. 이는 조세핀이 고향에서 가져와 프랑스에서 꾸민 온실의 풍경을 상상하며 조향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향을 단순한 제품이 아닌 한 편의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로 접근한다.

프래그런스 산업에서 ‘지속 가능한 원료 공급’ 문제는 해결해야 할 주요 숙제다. 트루동은 이런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실천하고 지켜가고 있나?
과거 트루동의 캔들은 100% 비즈 왁스로 제작했지만, 현재는 벌을 보호하려고 완전히 비건 왁스로 전환했다. 특히 유럽산 유채씨에서 추출한 왁스를 사용해 파라핀 냄새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지보단(Givaudan), 로베르테(Robertet) 등의 조향 하우스와 협력해 원료 재배부터 추출에 이르는 모든 공정 과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체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루동의 다음 행보에 대해 살짝 귀띔해줄 수 있나?
올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휴고 페뤼(Hugo Ferroux)가 합류했다. 그는 트루동의 헤리티지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더해주는 출중한 인재다. 최근 뉴욕 록펠러 센터에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프랑스식 벽난로와 장식에서 느껴지는 클래식한 프렌치 헤리티지와 공간 전체에 활용된 거울의 모더니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공간이다. 내년 3월 공개될 트루동의 새로운 컬렉션 역시 그의 지휘 아래 완성했다. 이 컬렉션은 트루동의 다음 챕터를 상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니 많은 기대 바란다. 

    포토그래퍼
    이신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