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아시아인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 프로듀서의 ‘K-뮤지컬’ 이야기

2025.08.16김정현

그 누구도 내디딘 적 없는 세계 무대를 개척한 뮤지컬 프로듀서가 이야기하는 K-뮤지컬의 가능성.

셔츠는 톰 브라운(Thom Browne). 팬츠는 세비지(Savage). 아이웨어는 래쉬(Lash). 코트는 더발론(The Ball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 춘 수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스위니토드>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을 제작한 OD컴퍼니 대표. ‘Open Door’라는 의미의 회사 이름처럼 국내 시장을 개척하고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프로듀서 최초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한국인, 아시아인 최초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 시작은 어땠나?
2009년,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가 시초였다. 이후 2014년 뮤지컬 <홀러 이프 야 히어 미>와 2019년 <닥터 지바고>의 리드 프로듀서로 브로드웨이에 도전했다.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위대한 개츠비>까지 올 수 있었다.

2009년 처음 브로드웨이에 도착한 순간을 기억하나?
여전히 생생하다. 매일 들여다보던 브로드웨이 공연 전문 사이트 ‘플레이빌(Playbill)’ 속 연출가와 디자이너가 내 눈앞에 있으니 꿈만 같더라.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시아 변방에서 온 한국인에게 그곳은 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세계였다. <홀러 이프 야 히어 미>와 <닥터 지바고>를 하는 내내 외로움만 남았다. 비를 피하려고 호텔 앞에 서 있는 나를 쳐다보는 도어맨의 시선마저 서럽게 느껴졌다.

거듭된 실패에도 어떻게 계속 문을 두드릴 수 있었나?
모든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 여겼다. 그게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실패해도 무너지진 않았다. 비록 <닥터 지바고>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남은 건 회사의 어마어마한 부채와 망가진 몸이었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한국에서 선보일 작품을 덧칠하고 발전시키면서 다음을 준비했다. 이후 팬데믹이 터지며 공연업계가 문을 닫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영감을 얻었나?
그렇다. 당시의 휴식으로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게 했다. 여러 실패를 겪고 나이가 들며 ‘개츠비’라는 인물에 더 깊이 공감했고 함께 아파했다. 마침 이 작품의 저작재산권이 소멸해 자유 이용 저작물이 되는 시기도 겹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로 주당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원 밀리언 클럽’에 20주 연속 등재됐고, 연극·뮤지컬계 최고의 상인 ‘토니어워즈(The Tony Awards)’에서 2024년 뮤지컬 부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결과를 예상했나?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매 순간 즐거움을 찾으려고 했다.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조급함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전 과정에 몰입했다. 모든 걸 준비하고 페이퍼 밀 플레이하우스에서 트라이아웃 공연 오프닝을 하는 순간, 처음으로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이었나?
트라이아웃 공연 후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축하 인사도 쏟아졌다. 처음 브로드웨이에 갔을 때, 어느 로펌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마주하는 사람마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뭘 자꾸 축하한다는 건지 낯설었는데, 브로드웨이에서는 너도나도 그 말을 하더라. <위대한 개츠비> 이후 비로소 그 말이 ‘당신이 대단한 일을 했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라’는 의미였다는 걸 실감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작과 달리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접근했나?
원작의 무게를 이기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작품의 메시지를 무대 언어로 만들고 캐릭터의 내면은 음악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여기까지 풀어내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크고 작은 파티 장면에 공을 들였고, 그것들이 연결될 수 있는 구성을 찾았다. 개츠비의 비극을 아름답게 풀어내고 싶어 앙상블 역시 하나의 오브제처럼 활용될 수 있게 비주얼에도 심도 있게 고민했다.

한국 시장에서 쌓은 경험 중 가장 도움이 된 건 무엇인가?
한국 시장에 기반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 거다. 브로드웨이에서 내가 가진 경쟁력은 뮤지컬 제작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알고 직접 경험했다는 거다. 미국의 경우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지만, 한국에서 프로듀서는 작가, 연출, 무대 등 다방면을 아우른다.

현지에서 ‘K’의 프리미엄을 체감하나?
물론이다. 과거와 비교해 한국의 문화와 콘텐츠는 관심의 대상이다.

오는 8월, <위대한 개츠비>가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을 한다. 국내 팬에게 관전 포인트를 알려준다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도 한국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높고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우리 관객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설레고 걱정된다.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릴 수 있는 요소를 집중적으로 봐주면 좋겠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도 있나?
2026년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작품 <워더링 하이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라이온 킹> <위키드>처럼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아이템이 있다. 좋은 작품은 늘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무대에서는 항상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그 도전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나 역시 여러 콘텐츠를 보며 다음을 준비한다.

요즘은 어떤 분야에서 영감을 얻나?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미디어아트를 공연에 결합한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공연장 역시 본 적 없는 독특한 형태를 구상 중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에 와서 꼭 봐야 하는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

뮤지컬의 저변을 넓히는 과정에서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어떤 지원이 절실할까?
작품을 기획, 창작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작사, 작곡, 연출, 여러 디자이너처럼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공공극장과 비영리 극장이 그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한다면, 더 풍성한 뮤지컬 시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는 비범한 천재가 정말 많다. 국내 창작자가 더 큰 세계를 꿈꿀 수 있도록 동기 부여의 기회도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느끼는 전 세계 뮤지컬계에 변화가 있다면?
가장 경쟁력 있는 작품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나날이 심각해지는 경기침체와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뮤지컬을 즐기는 선택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작품 역시 제작비가 점점 상승하니 투자 역시 녹록지 않다. 앞으로 더 높은 완성도와 예술성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작품을 위해 서로 괴롭고, 서로를 더 괴롭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한국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여정에서 힘이 되는 존재가 있다면?
설도윤 프로듀서가 생각난다. 2000년대 초반 뉴욕 담당자와 접촉을 위해 애쓰며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료가 있어 지치지 않고 꿈을 꾸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코트는 마조네(Ma Journee). 원피스와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 경 숙

NHN링크 공연 제작 이사.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여정에 NHN링크가 투자자로 참여했으며, 국내 10주년 기념 공연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 토니어워즈 6관왕에 성공했다. 초연을 함께한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대명문화공장에서 일할 당시 <어쩌면 해피엔딩>을 처음 만났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릴 당시 지인 소개로 관람했다. 공연이 끝나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을 보면서 이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연과 재연을 올리고, 여러 상황적 이유로 <어쩌면 해피엔딩>과 잠시 이별하게 됐다.

기자회견에서 박천휴 작가가 초연 당시 포스터 디자인을 만들게 한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흔치 않은 케이스이지 않나?
작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창작진일 테니까 믿고 맡겼다. 원하는 바와 방향성이 확실한 만큼 그 어떤 것도 성에 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필 콘셉트, 티저 영상 등도 창작진과 긴밀히 소통하며 작업했다. 그게 그 작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초연을 함께한 작품과 우연한 기회로 브로드웨이까지 함께했다. 그 과정이 어땠나?
지난해 브로드웨이 공연 셋업을 앞두고, 박천휴 작가의 권유로 투자 참여를 할수 있었다. 당시 이미 주요 투자자들이 참여를 마치고 공연 셋업을 앞둔 상황이었지만, 한 인플루언서의 부정적인 발언으로 인해 한 투자처가 갑작스럽게 빠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브로드웨이 제작진이 새로운 투자처를 긴급히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대표님과 임원진을 설득해 투자를 진행했다. 셋업이 임박한 시점이라 투자 마감 일정도 촉박했고, 뉴욕과 서울의 시차 속에서 밤낮없이 은행과 회사를 오가며 뛰어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브로드웨이 버전의 <어쩌면 해피엔딩>을 관람하고, 어떤 기분이었나?
300석 규모였던 작품이 1000석 규모의 공간에서 펼쳐지니 또 새로웠다. 개인적으로는 기억을 지우는 신이 인상 깊었다. 작품이 가진 서정적인 분위기를 새로운 언어로 잘 살렸다.

작품을 보고 토니어워즈의 수상을 예상했나?
브로드웨이는 매체와 평론가의 입김이 꽤 세다. 업계 관계자와 배우, 기자에게 공개하는 오프닝 나이트 다음 날 마케팅 회의에 참석했는데,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유수 매체의 감상평이 ‘초대박’으로 쏟아졌다. 현장에서도 관계자에게 ‘최고의 공연’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울컥했다.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의 고생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실 프리뷰 기간까지 스코어가 좋지 않아 우려했는데, 오프닝 나이트 이후 예매율이 미친 듯이 올랐다. 그러다 외부 비평가 협회상(Outer Critics Circle Awards)을 수상하면서 토니어워즈 수상에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토니상에 아까워지는 과정에서 창작진은 굉장히 겸손하게 마인드컨트롤을 잘 하더라.

토니어워즈 현장은 어땠나?
일단 라디오 시티 뮤직홀이 굉장히 크더라. 관객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매아리처럼 울리고, 압도당할 정도의 규모였다. ‘또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현장을 즐겼다.

현지에서는 한국 뮤지컬을 어떻게 보나?
글로벌 투자를 알아보려고 관계자들과 미팅하던 중, 한국 뮤지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현지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아시아 시장에서는 한국만큼 창작 뮤지컬을 많이 제작하는 곳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소재와 주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며 우리보다 역사가 오래된 브로드웨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양한 주제가 나오기 시작한 한국에서는 이제 겪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무대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큰 시스템 안에서 실패를 경험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장점은 소재와 아이템이 새롭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다면 확장성을 가지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템의 확장 외에 시스템적으로는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할까?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시간을 현실적으로 계산해 장기적인 호흡으로 뚝심 있게 뒷받침해주는 지원 정책이 마련되길 희망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역시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현재 국가에서 진행하는 지원 산업이 꽤 있지만, 단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듀서를 비롯해 연출, 작곡가 등 여러 분야의 창작진에게도 연수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세계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어떤 길을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시장의 흐름을 피부로 느껴야 좀 더 수준 높은 작품을 구현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무대 디자인, 음향, 의상 등 기술 디자이너 부문의 상이 세분화되고 그들의 전문성에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지속가능한 동력을 채워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적절한 보상을 통해 일하는 보람과 성장의 기쁨을 느끼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본다.

K-뮤지컬이 가진 유일무이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관객의 겨우, 1회성 관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국내에는 회전문 관객이 많아 작품에 대한 해석, 정서적인 부분을 곱씹고 여운을 주는 요소가 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소재와 이야기의 깊이가 다르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에서 그런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뿌듯했다.

브로드웨이를 경험하며 프로듀서로서 확장된 경험이 있다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브로드웨이를 방문해서 <선셋 대로> <위대한 개츠비> <MJ> <백 투 더 퓨처> 등 작품 8편을 관람했다. 그중 <선셋 대로>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토니어워즈 여우주연상을 탄 푸시캣 돌스 출신의 니콜 셰르징거(Nicole Scherzinger)의 연기도 압권이었지만, 무대 연출과 구성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켰다. 배우들은 검은색 원피스, 트레이닝복 등 단출한 의상으로 무대에 등장하고, 2막은 분장실에서 시작된다. 분장실에서 극장 밖, 그리고 무대로 걸어 들어오는 장면을 카메라가 촬영하고 무대 위에 송출된다. 딜레이 없는 완벽한 합도 놀라웠지만, 이런 참신한 연출을 보며 표현 방식과 기술, 디자인 등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하게 됐다. 코로나 이후 브로드웨이 부활의 축에 왜 이 작품이 있었는지 완벽히 이해됐다.

NHN링크도 투자를 넘어 본격적인 제작사로서 역량을 갖춰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티켓 예매 서비스에서 출발한 NHN링크는 공연업계의 선순환을 꿈꾼다. 제작사로부터 예매 수수료를 받아 그걸로 다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구조다.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제작’ 과정에서 창작진이 안정된 기반하에 자신의 작품을 끌어가길 바란다. 반짝이는 씨앗이 힘차게 꽃을 피우기까지 함께하고 싶다.

오는 10월, <어쩌면 해피엔딩>의 10주년 공연에 다시 제작자로 참여한다. 어떤 마음인가?
부담이 크다. 오기 전에도 관련 미팅을 하고 왔는데, 새로 합류한 스태프와 다시 만난 스태프 모두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틀과 외로움의 표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중이다. 관객에게 입체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선사하려 한다. 웃으면서 싸우고, 의지하고, 치열하게 논의하며 새롭지만 익숙한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


재킷은 니치투나잇(Niche2night).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 병 원

콘텐츠 제작사 ‘라이브’ 대표. <마리 퀴리> <팬레터> <아몬드> <마이 버킷 리스트> 등 국내 창작 뮤지컬을 개발했다.
폴란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그린 뮤지컬 <마리 퀴리>로 국내 창작 뮤지컬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에 성공했다.

7월 25일 <마리 퀴리>의 네 번째 시즌이 개막한다. 어떤 점이 달라졌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 후 오르는 첫 한국 무대다. 하나의 시즌을 넘어 브랜드로서 확고히 자리 잡을 중요한 전환점이라 생각해 해외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며 느낀 감정, 관객이 어느 지점에서 정서적으로 깊이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분석해 무대 곳곳에 반영했다. 수정된 안무와 의상, 일부 장면에서는 무대 디자인이 새로워졌다. 그에 따라 조명 역시 정교하게 조율하고 오케스트라 편성을 확대했다. 아무래도 가장 공을 들인 건 마리 퀴리 캐스팅 4명이었다.

네 배우의 캐스팅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
작품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는 김소향과 옥주현 배우는 한층 깊어진 내공으로 견고한 마리 퀴리를 그려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혜나와 김려원 배우는 새롭게 합류했다. 각자의 개성과 해석으로 신선하고 강렬한 마리 퀴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지난해 영국 웨스트엔드에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마리 퀴리>의 글로벌 가능성을 목격한 순간은 언제였나?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마리 퀴리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발코니 콘서트와 대담을 진행했다. 박물관 관장과 마리 퀴리의 후손이 “이 정도로 치밀한 고증으로 완성된 작품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이후 바르샤바 뮤직 가든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대상)인 ‘황금 물뿌리개상’을 받고, 마리 퀴리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진심 어린 반응을 들었을 때 울컥했다. 외국인으로서 한 나라의 위인을 다룬다는 것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작품성에 확신이 생겼다.

한국 오리지널 버전을 런던 무대로 옮기는 과정도 까다로웠을 듯하다. 한국 작품을 현지화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긴 여정이었다. 40분 버전의 쇼케이스부터 풀 버전 쇼케이스, 한·영 워크숍을 거쳐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다. 나 역시 리드 프로듀서로서 영국 현지 스태프와 배우, 제작을 이끄는 건 처음이기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무엇보다 영국 공연이 단순히 번역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음악감독 엠마 프레이저(Emma Fraser)가 한국 창작진과 교감한 뒤 영국 버전을 준비했다. 단순한 기술적 재현이 아닌, 한국 원작에 담긴 정서와 창작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기에 그 협업이 더 의미 있었다. 이런 과정 덕분에 영국 배우가 부르는 넘버와 해석에 감정선과 작품의 가치를 긴밀히 전달하고 융합될 수 있었다. 제작자로서 큰 성장이었다.

어떤 지점에서 성장했음을 느끼나?
현지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그간 ‘라이브’의 작품은 중국, 일본, 대만 등 오리지널 투어, 공동 제작을 통해 성장했는데 아시아의 경우, 공유하는 공동의 정서가 있어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시장의 규모, 문화의 차이가 큰 웨스트엔드에서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려한 대로 환경이 전혀 달랐다. 단순히 언어의 차이를 넘어 공연을 바라보는 관점, 제작 시스템,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더라. 이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서 ‘작품을 해외에 진출시키는 방법’을 넘어 전혀 다른 제작 환경 속에서 팀을 이끌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스태프와 신뢰를 쌓으며 작품을 완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작업 과정에서 현지 스태프와 협업하며 신선했던 방식도 있었나?
연습 초반, 과학자가 연습실을 방문해 배우와 스태프를 대상으로 Q&A 세션을 진행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도 과학자의 자문을 받았고, 연출이 카이스트 출신인 덕분에 내부적으로 스태프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를 넓히며 크리에이티브의 깊이를 더하는 게 인상 깊었다. 협업이 단순히 역할을 나누는 것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공동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웨스트엔드의 여정 속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였나?
매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그해 웨스트엔드를 이끈 작품의 넘버를 공연하는 축제 <웨스트엔드 라이브>가 열린다. 유럽에서 가장 큰 뮤지컬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무대에 <마리 퀴리>가 공식 초청을 받았다. 행사 당일, 10만 명에 이르는 관객 앞에서 <마리 퀴리>의 넘버를 부르는 배우를 봤을 때 뭉클했다.

‘라이브’의 작품 대부분은 국내 창작물이다. 라이선스가 아닌 창작 뮤지컬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를 졸업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제작보다 글을 쓰고 창작하는 과정을 먼저 접해서인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라이선스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만들고, 무대에 올리고, 그 작품의 성장을 함께하며 해외 관객과 만나는 과정이 더 보람차게 느껴진다. 회사를 만들 무렵부터 이런 창작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리지널 스토리를 완전히 새롭게 창작한 작품도 있고,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처럼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뮤지컬화한 경우도 있는데, 공통적으로는 ‘한국에서 만든 창작 뮤지컬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일관된 방향을 좇는다.

그 포부가 국내 창작 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서 드러난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단순한 공모전이 아닌 실제 무대로까지 연결되는 창작 생태계 통로를 구축하고자 시작하게 됐다. 어느덧 9회까지 이어오며, <팬레터> <마리 퀴리> <아몬드>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품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작품의 성과를 보며 한국 창작 뮤지컬이 가진 가능성의 출발점이 창작자의 상상력과 그것을 구현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관객이라는 걸 나날이 체감한다.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한국 창작 작품의 가능성은 어떤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작품이 많다. 음악, 드라마, 영화를 통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뮤지컬 역시 분명히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글로벌 관객과 정서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 K-컬처의 다음 주자가 뮤지컬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더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보나?
언어부터 제작 시스템, 예술을 대하는 태도,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웨스트엔드에서 일본 공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그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본 배우와 오케스트라, 창작진이 일본어로 공연하는데, 2000석이 넘는 극장이 가득 찼고 관객은 자막을 통해 공연을 깊이 공감하며 즐기더라. 귀엽고 매력적인 굿즈, 도시락 상품까지 다채로운 체험으로 공연 경험이 확장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로컬라이징이 반드시 모든 작품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연이 올라가는 국가의 법적·윤리적 기준과 제작 수준에 맞춰 접근하되, 작품 자체는 오리지널의 힘을 온전히 보여주는 방식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작품이 가진 창작의 진정성으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무대 언어와 정서적 보편성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한국 뮤지컬에서 2025년은 중요한 시기인 듯하다. 올해 라이브의 계획은 무엇인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 홍수 속에서 사랑받는 작품은 보편적인 정서를 얼마나 세련되고 특별하게 풀어내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 역시 고정된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사람과삶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담겨 있었다. 올해는 국내 공연의 완성도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과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노년의 삶과 시를 기반으로 풀어낸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오는 11월 일본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선보인다. 시니어 시대에도 새로운 삶을 주체적으로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더 큰 세계 무대로의 진출도 기대하는 작품이다. 아시아에서 큰 사랑을 받은 <팬레터>는 중국에서 또 한 번의 공연을 앞두고 있고, <마이 버킷 리스트>는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유소년 야구를 주제로 한 <야구왕, 마린스!> 역시 대만으로 첫 진출을 시도한다. <랭보> 또한 런던 쇼케이스로 한 단계 도약을 앞두고 있다.

    포토그래퍼
    차혜경
    스타일리스트
    안리엔
    헤어&메이크업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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