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잘 쉬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상승하는 이유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진다면?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직접 체험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가장 본능적인 움직임을 배우다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만들어라.” 우연히 본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은 마치 내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시선이 주위에 팽배하던 탓에, 운동은 내게 늘 숙제 같은 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브레스워크(Breathwork)’, 숨쉬기 운동에 마음이 끌렸다. 정적인 수련과 거리가 멀고 요가나 명상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숨쉬기 운동에서는 숨만 쉬면 된다니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숨쉬기에도 전문가에게 배워야 하는 ‘기술’이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궁금했다. 브레스워크는 말차, 콜드플런지와 함께 요즘 가장 핫한 웰니스 트렌드니까. 해외 유명 피트니스 부티크에는 브레스워크 수업을 듣기 위한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다. 요가, 명상, 싱잉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의 인스타그램에서 브레스워크 워크숍을 종종 연다는 게시글을 보았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아 바로 연락해 체험 일정을 잡았다.
무의식의 문을 여는 열쇠
브레스워크는 요가나 명상과 달리 억눌린 감정과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는 수련법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의 운동 성과를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말 그대로 의식적인 호흡 조절을 통해 신체와 감정, 정신에 영향을 주는 원리다. 호흡은 크게 일상생활에서의 의도하지 않은 호흡과 들숨, 날숨의 횟수나 시간, 주기 등을 조절하는 의도된 호흡으로 나뉜다. 의도된 호흡은 우리 몸의 심장 박동수와 변이도에 영향을 주며, 부교감신경인 미주신경을 자극한다. 이는 화가 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깊은 호흡을 통해 안정을 되찾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설명을 들을수록 더 아리송했다. 결국 직접 경험해보는 방법이 최선인 듯싶었다.
“초보자 호흡법으로 총 다섯 단계에 걸친 ‘물레방아 호흡법’을 배울 거예요. 수업은 30분 정도 호흡한 뒤 10분의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로 마무리됩니다.” 브레스워크를 지도해준 천유미 퍼실리테이터(이하 강사)의 설명에 따라 배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과 배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공기가 폐에 가득 찬 게 느껴지면 입으로 한숨을 쉬듯 ‘하’ 소리와 함께 숨을 내뱉었다. 숨을 들이마셨을 때 배는 풍선처럼 부풀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대충 호흡하며 살아요. 숨이 콧속을 맴돌다 나가죠. 그래서 처음엔 깊은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어요. 호흡을 반복하다 마지막에는 폐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45초간 숨을 참을 거예요.” 마지막 5단계에서는 2분까지 숨을 참는다는 무시무시한 말과 함께 본격적인 ‘숨쉬기’ 수업이 시작됐다.
제대로 된 숨쉬기에 닿기까지
안대를 착용하고 매트 위에 누웠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호흡을 확인할 수 있도록 양손을 가슴과 배에 얹었다. 몸을 살짝 흔들어 긴장을 푼 뒤, 흐르는 음악과 강사의 가이드에 따라 숨쉬기를 반복했다. 코와 입으로는 열심히 숨을 쉬었지만, 머릿속은 사무실에 돌아가자마자 해야 할 일로 가득했다.
1단계의 숨 참기는 할 만했다. 딴생각하느라 시간이 금세 흘렀는지도 모른다. 2단계 중반에선 가슴이 약간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숨을 참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2단계까지는 버틸 만했다. 3단계로 접어드니 잡념이 사라졌다. 숨을 들이쉬고, 다시 뱉는 행위에만 집중하니 온 신경이 부풀어 오르는 배와 가슴에만 몰렸다. 이내 몸이 살짝 저리기 시작했다. 수업 시작 전에 강사가 말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며 생기는 증상’ 중 하나였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커질수록 더 깊이 몰입됐다.
4단계를 지나 5단계에 도달하니 등이 바닥에서 살짝 뜨는 느낌까지 들었다. 마지막 숨 참기는 성공하지 못했다. 2분은 너무 길었고 중간에 한 번 숨을 다시 들이마셔야 했지만, 좌절하거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물레방아 호흡법 수업이 끝나고 10분 정도 사바아사나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 10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살짝 멍했고 몽롱했지만,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느낌만 남았다.
들숨에 에너지, 날숨에 해방감
흔히 말하는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느낌일까? 더 좋은 게 있다면 브레스워크는 달리지 않고 눕거나 앉아서 하는 운동이라는 것, 운동이 끝난 후에도 보송한 상태라는 것. 물어보니 강사 역시 나와 비슷한 브레스워크 ‘첫 경험’을 했다. 1년 전 스웨덴에 살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고, 잠들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그는 친구를 따라 브레스워크를 체험한 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운동이 끝나면 텅 비는 머릿속과 가벼워지는 몸, 붕 뜨는 듯한 기분에 매료되어 스웨덴 헤일 센터(Hale Center) 인증 호흡 요법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직접 체험해보니 어떠세요?”라는 강사의 말에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대답하는 순간에도 몽롱한 정신과 눈앞에 희끗희끗한 것이 떠다녔고, 몸이 축 늘어진 채 붕 뜬 느낌이 지속되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다. ‘브레스워크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는 체험이 끝난 뒤 펑펑 울기도 한다는데, 내 경우엔 정반대였다.
감정을 호흡으로 치유하는 법
우선 브레스워크는 생각보다 어렵다. 호흡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호흡을 배우는 과정에서 잡념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을 호흡에 집중시키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재집중(Refocusing)’이라고 하는데, 재집중을 반복하며 산만함을 본인 스스로 인식하고 돌아오는 능력을 키우는 운동이 브레스워크의 본질이다. 명상과 요가가 마음을 비우는 것에 초점을 맞춘 수련이라면, 브레스워크는 억눌린 감정과 기억을 꺼내는 수련에 더 가깝다. 수련할수록 심박수와 혈압이 안정되고,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또 몸속 산소 포화도가 증가하면서 집중력과 기분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강사는 브레스워크가 피로 해소를 돕고 수면의 질도 높인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체험한 당일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완벽한 ‘꿀잠’을 잤다. “이 일을 시작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졌어요. 덕분에 불안감에 대한 내성도 생겼고요. 숨 쉬는 것만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니 일상이 편해졌죠. 저는 브레스워크가 어떤 심리상담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수업을 마치며 강사는 3일 정도 후 진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호흡의 깊이만큼 따라오는 마음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는 그 효과를 온전히 체감하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이틀 정도는 기분 좋았지만 3일째부터는 효과가 미미했다. 그럼에도 브레스워크가 집착을 내려놓는 훈련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깨달았다. 체험 한 번으로 세상만사를 통달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에 여유를 찾는 제대로 된 호흡을 배웠다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나에게 대단한 ‘무기’가 하나 생긴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힘든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이 호흡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으니까.
- 포토그래퍼
- 차혜경
- 모델
- 김성은
- 헤어&메이크업
- 정지은
- 도움말
- 천유미(브레스워크 퍼실리테이터),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