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한국에서 각 나라의 미식을 뽐내고 있는 오픈런 외국인 셰프 4

2025.07.11김정현

각자의 분야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외국인 셰프에게 고향의 맛을 물었다. 각 나라 셰프가 전하는 각국의 미식 정보로 특별한 고메 여행 코스가 완성됐다.

신선한 페스토와 트로피 파스타를 버무린 스테파노표 트로피 파스타. 잣을 올려 고소함을 더했다.
매일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는 보르고 한남의 주방 속 스테파노 셰프의 모습.

스테파노 디 살보
STEFANO DI SALVO

보르고 한남을 운영하는 스테파노 디 살보는 ‘고향의 맛’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페스토 소스를 떠올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소스가 탄생한 이탈리아 북부 제노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페스토 트로피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주셨어요.” 잘린 나뭇가지처럼 얇고 뒤틀린 모양의 트로피 파스타에 신선한 페스토를 곁들이면 입 안에 퍼지는 향긋함이 압도적이다. 품질 좋은 바질이 생산되는 제노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가 이 파스타를 만들 때 지키는 원칙은 꽤 엄격하다. “진정한 페스토는 제노아에서 자라 DOP(원산지) 인증을 받은 바질을 사용해야 해요. 페스토는 섬세한 소스라서 신선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요. 파스타가 익으면 물을 버리고, 따듯한 온도의 파스타 위에 페스토 소스를 더해 가열하지 않고 섞어요. 절대 가열해서는 안 돼요!” 그는 제노아식 전통 파스타에는 삶은 감자와 그린빈을 더한다고 덧붙였다.

제노아는 항구도시라서 신선한 해산물과 로컬 허브, 올리브오일, 신선한 파스타와 채소가 늘 풍부했다. 심플하지만 풍성한 풍미가 특징인 제노아 음식은 보르고 한남의 음식과도 닮았다. “이탈리아 정통의 맛을 지키되, 이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애써요.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게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로 만든 스페셜 메뉴도 서너 가지씩 준비해놓고요. 가장 중요한 건 재료와 조리의 모든 과정이 제 손을 거친다는 거예요.” 보르고 한남이 꾸준히 미쉐린 가이드에 오르는 이유다.

스테파노 디 살보는 15세부터는 이탈리아의 다양한 지역에서 일하며 특별한 미식 경험을 쌓았다. 그에게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을 묻자 ‘토스카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해 미식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에밀리아로마냐까지의 미식 지도가 완벽해요. 작년에 저도 그 코스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셰프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데나에서는 발사믹 식초와 탈리아탈레 라구 파스타를 꼭 즐겨야 해요. 모르타델라(Mortadella)의 도시 볼로냐, 최고의 프로슈토를 생산하는 파르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로 유명한 레지오 에밀리아까지. 풍성한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코스예요.” 모데나에서는 마시모 보투라 셰프가 운영하는 호텔 카사 마리아 루이자(Casa Maria Luigia)에 묵으면 우연히 보투라 셰프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볼로냐에서는 이탈리아 슬로푸드협회에서 엄선한 최고의 식재료를 모아놓은 이탈리(Eataly)를 빼놓을 수 없다고도 당부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 테마파크인 이탈리는 미식가에게는 황홀한 시간을 선사한다. 특히 피렌체에서는 오랜 시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개성 있는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소스탄차(Trattoria Sostanza), 치브레오 리스토란테(Cibreo Ristorante), 젤라토 가게 페르케노(Perche no), 수백 명이 줄을 서는 포카치아 맛집 알 안티코 비나이오(All’ Antico Vinaio) 등 최소 3박 이상 필요한 맛집이 가득하다. 토스카나에서는 와인을 놓칠 수 없다. “이탈리아의 가장 유명한 와인인 수퍼투스칸의 중심지가 바로 여기예요. 오르넬라이아(Ornellaia) 와이너리를 추천하며, 그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올리브오일도 챙기세요.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의 맛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념품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날 때면 촘촘한 미식 여행으로 영감을 채우는 그의 노력 덕에 보르고 한남의 요리는 지루할 틈 없이 진화하고 있다.


밀가루와 달걀 대신 연근 전분을 반죽으로 재해석한 타마유라의 오코노미야키. 테판에서 완벽하게 구운 한우 스테이크.
테판 요리에 한창인 츠바키모토 에리 셰프의 모습.
온도 조절이 핵심인 테판 스테이크 요리.

츠바키모토 에리
TSUBAKIMOTO ERI

츠바키모토 에리는 JW 메리어트 서울의 모던 재패니스 레스토랑 타마유라의 오픈 멤버로 테판(철판)을 책임지고 있다. 오사카 출신인 그에게 테판은 익숙한 조리 도구다. “오사카에는 한 집에 한 대씩 테판과 타코야키 틀이 있어요. 오코노미야키를 비롯해 야키소바, 햄버거스테이크, 토스트 등 웬만한 요리는 다 테판에 해서 먹었어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가족 모두 테판 앞에 둘러앉아 있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테판 요리 중 가장 좋아한 건 오코노미야키다. 거리상으로 한국과 멀지 않지만, 그는 워낙 다양했던 오사카 채소의 맛이 종종 그립다고 말했다. “지금쯤 오사카에서는 ‘미즈나스(물가지)’가 제철일 거예요. 껍질이 얇고 달콤한 맛이 나서 물에 깨끗이 씻어 한 입 베어 물면 순식간에 행복해져요. 풋 향이 진한 소라마메라는 콩도 참 좋아했고요. 오사카와 인접한 교토에서는 교토부가 인증한 프리미엄 채소를 ‘교야사이’라고 브랜드화할 정도로, 이 지역의 채소는 다채로워요.” 풍부한 식재료를 갖춘 오사카의 기억은 그가 테판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그는 코스로 구성되는 고급 테판 전문점 우카이테이에서 연수받으며, 가정식에 가까운 오사카식 테판과 결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타마유라 테판에서는 소금을 이용한 찜 요리, 스키야키 등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테판에서 펼칠 수 있는 기발한 조리 연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요. 고객에게 전에 본 적 없는 테판 요리를 보여드리고 싶거든요”라며 앞으로의 목표를 설명했다. 테판 외에 요즘 셰프 에리의 흥미를 끈 것은 동해와 와카사만에 인접한 후쿠이현 미식이다. “한동안 소바에 빠졌는데, 에치젠 오로시 소바가 최고였어요. 후쿠이현이 메밀 재배에 완벽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메밀 면 자체가 맛있거든요. 차가운 소바에 간 무, 가쓰오부시, 다진 파를 올리고 육수에 찍어 먹는 게 특징이에요. 보기에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소바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꾼 음식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신선한 재료가 생명이라 계절에 따라 방문할 것을 추천했다. “겨울에는 에치젠 게로 만든 샤부샤부가 별미고, 맛 좋은 쌀을 수확하는 시기에는 정석대로 지은 밥을 드세요. 쌀이 맛있는 지역이라 훌륭한 사케도 많아요”라며 느긋한 마음과 힐링이 필요할 때 몸과 마음을 두둑히 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각종 해산물과 버터 소스로 완성한 해산물 허브 크레이프.
소피텔 서울의 음식을 총괄하는 셰프 미카엘 로빈.

미카엘 로빈
MICHAEL ROBIN

“프랑스 전체를 통틀어도 크레이프 식당이 가장 많은 지역은 브르타뉴일 거예요. 크레이프는 브르타뉴 그 자체죠!”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의 크레이프가 유독 맛있는 건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출신의 총괄 셰프 미카엘 로빈 덕이다. 그는 어린 시절 화요일마다 집에서 크레이프를 구워 먹었다. “프랑스의 기념일 중 ‘마르디 그라(Mardi Gras)’라는 축제가 있어요. ‘마르디’는 화요일, ‘그라’는 지방이라는 의미죠. 말하자면 ‘기름진 화요일’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은 매주 화요일 크레이프를 먹었어요. 부모님과 저희 세 남매 모두 크레이프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가끔 친구들까지 와서 함께 즐겼죠. 한 사람당 너덧 장은 먹었으니 엄마가 힘드셨을 거예요.” 그는 다음 날, 차가워진 크레이프에 설탕을 뿌려 먹는 게 또 다른 별미라고 했다.

크레이프는 하나의 요리로서 주로 해산물과 함께했다. “집에서 1km도 안 되는 거리에 바다가 있었던 그때는 공짜 해산물이 널리고 널렸죠. 저녁 메뉴는 그날 잡은 해산물에 따라 달라졌어요. 하루이틀 먹을 양의 해산물을 주워 가면 엄마가 토마토소스, 크림 등을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해주셨어요. 계절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해산물도 달라서 겨울과 여름, 엄마의 조리법도 달라졌어요.” 그가 고향의 맛으로 소개한 해산물 허브 크레이프는 그의 어린 시절 전부를 대변하는 음식이다.

농장을 하는 삼촌, 요리를 사랑한 부모님 덕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요리가 일상의 일부인 문화에서 성장했다. 일요일이면 20명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점심을 즐겼다. “여름에는 파스타 샐러드가 단골 메뉴였어요. 프랑스에서는 여름에 예쁜 멜론이 나거든요. 멜론과 토마토를 잘라 넣고,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만 뿌려요. 간단한데 정말 맛있죠. 겨울이 되면 포토푀(Pot au Feu) 같은 따뜻한 요리를 먹었어요. 포토푀가 남으면 고기에 으깬 감자를 더해 셰퍼드 파이(Shepherd’s Pie)를 만들고, 육수는 엔젤 헤어 파스타에 활용해 이삼 일을 먹었죠.” 어린 시절의 풍부한 경험은 그를 프랑스 미식계에서 권위 있는 영예 중 하나인 ‘프랑스 마스터 셰프(Maitres Cuisiniers de France)’ 훈장을 받은 셰프로 성장시켰다.

그는 여전히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났고, 접시 위에 자신의 진정성을 담는 것에 진심이다. “제 음식을 통해 이미 프랑스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을 추억하고, 아직 프랑스에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프랑스 음식이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을 주고 싶어요. 미식은 일종의 경험이에요. 좋은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많지만, 제가 셰프로서 중점을 두는 건 ‘접시 안의 여행’이에요. 그래서 맛에 초점을 맛추고 간과 재료에 더 신경 쓰죠.” 그는 프랑스 식문화를 가장 긴밀하게 경험하는 여행법으로 마켓 쿠킹 클래스를 추천했다. 가능하면 셰프가 운영하는 클래스에 참여하기를 권했다. 현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하고, 함께 맛보는 건 일종의 문화 수업과 같기 때문이다. 리옹, 마르세유 등 여러 도시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니 고메 여행을 즐긴다면 기억해둘 것.


흰꽃게 알을 넣어 해산물 특유의 감칠맛과 풍미를 더한 유유안의 제비집 요리. 섬세한 조리 과정을 거친 북경 오리 요리.
포시즌스 유유안을 책임지는 토 콱 웨이 셰프.
심플한 광둥요리가 완성되는 포시즌스 유유안의 주방.

토 콱 웨이
TO KWOK WAI

2025 미쉐린은 ‘세련되고 안락한 중식당’이라는 평가 아래 포시즌스 서울 유유안에 미쉐린의 별을 줬다. 중국 각지의 개성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유유안은 광둥요리에 특화됐다. 이곳의 주방을 이끄는 셰프 토 콱 웨이 역시 홍콩에서 나고 자라 어린 시절부터 광둥요리를 즐겼다. “광둥요리는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맛과 영양의 조화를 섬세하게 고려해야 해요.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간 응축된 정교한 기술과 집중력을 요하죠”라며 30년간 경험한 광둥식 요리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미식을 하나의 문화로서 그 전통과 철학을 지키는 일에 대해 강조했다. 광둥 출신 셰프로서 정통 광둥요리를 한국에 소개하는 건 셰프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유유안을 지휘하며 요리는 물론 플레이팅과 서비스, 분위기 전반을 깊이 있게 고민했다. 광둥요리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자부심은 그가 소개하는 고향의 맛에서도 물씬 드러났다.

제비집 맑은탕은 진귀한 광둥 보양식이다. 재료 자체를 구하기 어렵고 부드럽고 섬세한 식감과 면역력 강화, 피부 미용 등의 효능으로 사랑받는다. 보양식을 고른 이유를 묻자 “제게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의 온기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기억의 매개체죠. 언젠가 먹었던 이 한 그릇에 담긴 온기가 제게는 깊고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값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던 풍경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과 밥을 먹던 기억이 셰프로서 나아갈 방향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음식 추억은 제가 셰프로서 어떤 요리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중요한 원천이에요.”

거대한 땅만큼 다종다양한 미식으로 유명한 중식에서 셰프의 ‘최애’를 묻자 그는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특정 지역과 음식점을 꼽을 수 없지만 중국에 가면 북경 오리만큼은 꼭 먹어보라고 신신당부했다. “북경 오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맛과 격식, 전통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다이닝 경험의 일종이에요. 숙성, 건조, 구이 등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조리 과정은 중식의 정교함을 잘 보여주죠.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게 완성한 오리를 얇은 밀전병에 저며 채소, 소스와 싸 먹는 일련의 과정, 오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구성, 정제된 플레이팅은 중국 요리의 정수를 느낄 수 있고요.” 중국 미식 문화의 품격과 정통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으로서 북경 오리만 한 메뉴가 없다.

    포토그래퍼
    오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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