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강하다. <붉은 단심>의 유정, 그리고 강한나가 그렇다. 

블랙 재킷, 블랙 슬립 원피스, 이어커프, 오른손에 낀 반지, 블랙 미니 체인백은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그린 실크 롱 드레스는 프라다(Prada). 진주 초커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브라운 니트와 워커는 토즈(Tod’s). 화이트 플리츠스커트는 렉토(Recto). 골드 큐빅 이어커프는 까롯(Karot). 골드 이어커프는 레이지던(Lazy Dawn).

어디 다녀왔어요?
프랑스 갔다 와서 시차 적응이 아직 좀 덜 됐어요. 정말 오랜만에 간 여행인데, 너무 좋더라고요.

<붉은 단심>이 끝난 홀가분함이 느껴지네요. 촬영을 위해 국토대장정을 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여행이 싫어지진 않았군요?
전국을 유랑했죠. 감독님이 로케에 진짜 진심이셨거든요. 내일 로케는 어딜까, 이번 주 로케는 어딜까 보면 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기본이 남도여서 로케지가 북도면 가깝다, 근거리다 했죠. 저희가 궁중을 배경으로 정치를 논하는 게 많으니, 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담자고 감독님이 초반부터 말씀하셨어요.

눈이 호강한다고 하죠. 시청자 입장에서는 좋았습니다.
도착해서 보면 ‘너무 예쁘다, 이거 때문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거죠. 여기까지 올 가치가 있었다고 찍으면서도 느꼈지만, 결과물을 보면 더 만족스러웠어요.

어디가 그렇게 예뻤어요?
광양 매화마을과 드라마에서 낙화놀이를 했던 함안 무진정요. 낙화놀이를 일 년에 한 번만 하는데, 그때 가보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남원 광한루는 이태(이준 분)와 자주 만나던 곳이라 촬영을 많이 했는데 낮 12시까지는 연못에 원앙이 엄청 놀아요. 그런데 밤에는 다 사라져요. 어디로 자러 갔는지 모르게요.

하하, 좋은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네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그래요.
촬영하다 보면 사진을 찍을 여력이 없어요. 그럼에도 나중에 시청자를 위해 비하인드를 담아두는 거예요. 보여드리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3회 찍을 때 사진 찍었나?’ ‘이때 찍자’는 계획까지 세웠어요. 파워 J죠.

<붉은 단심>의 마지막 회가 방영된 지 꽤 지났어요. 지금 기분은 어때요?
7개월동안 매달렸으니 헛헛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이번 작품은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아요. 추운 계절에 찍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요?

기존 드라마와는 여러모로 다른 면이 있는데, 이 이야기, 그리고 유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어요?
캐스팅은 이준 씨랑 장혁 선배님이 끝난 상태였어요. 이미 대본에서나 기획 단계에서 유정이 정말 남다른 인물이라는 건 눈치챘고요. 감독님을 만나보니 아니나 다를까 감독님이 담으려는 그런 이야기도 비범하더라고요.

작품 세계관 내에서 최고인 인물이죠.
다른 배우들도 유정이 정말 멋있고 매력 있는 역할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알면 알수록 똑똑하고 지혜로운데 상처가 있지만 그걸 복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품는, 그릇이 정말 넓은 따뜻한 친구더라고요. 저도 계속 유정을 닮으려는 마음을 지니고 촬영한 것 같아요. ‘이것도 품고 간다고?’ 하면서 스스로 유정에게 놀랐죠.

여성 캐릭터가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큰 무기 중 하나가 ‘사랑스러움’이지만, 유정은 웃는 장면도 거의 없죠.
궁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단단함을 계속 가져가려 했거든요. 그러게요. 늘 웃고 싶었지만요.(웃음)

카타르시스를 느낀 부분이 있어요?
7회에 제 정체를 시원하게 알리고 난 8회가 제일 좋았어요. 한국 드라마에선 키스신이 있어서 약속의 8회라는데, 실제 있기도 했어요.(웃음)

남편 이태 역의 이준 씨와 정적 박계원 역의 장혁과 일대일 연기가 유독 많았는데요.
이준 씨와는 서로 감정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요. 장혁 선배님과는 주로 두뇌 싸움을 해야 했어요. 이태와는 말로는 하지 못하는 감정 교류를 해야 했다면, 박계원과는 지략 싸움을 했죠.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같이 만든 장면도 있어요?
저는 박계원한테 악감정을 더 드러내도 될 것 같았어요. 장혁 선배님은 그런 식으로 하면 박계원은 이 친구가 약한 친구라고 생각할 거라고 하셨죠. 진심만 갖고 해야 진짜 무섭게 느껴질 거다, 이 여자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생각할 거라 하셨죠. 실제로 그렇게 표현하니까 훨씬 좋았고요. 저는 박계원 입장에서 유정을 본 적이 없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죠. 너무 좋았어요.

드라마에서는 ‘성군’, 누가 좋은 왕이 되는가를 중요하게 다루죠. 유정이 바로 그 성군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고요. 사람 강한나는 그런 자질을 지니고 있나요?
참 어려운 것 같은데 연기자로서는 그거 같아요. 끝까지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작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유정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거죠. 그게 성군이라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노력과 고민을 계속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노력파거든요.

그런 단단함으로 그러죠. ‘견제’를 통해서 왕을 성군으로 만들겠다고.
유정은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것도 사랑이라고요. 저도 대본을 봤을 때 ‘견제’라는 단어가 나와서 놀라기는 했어요. 그 또한 유정이 가진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어쨌든 둘 중 누구도 죽지 않고 궁 안에서 살아남았잖아요. 둘이 힘을 합쳐서 잘 살지 않을까.(웃음)

 

화이트 톱과 네이비 카디건은 미우미우(Miu Miu). 베이지 팬츠는 스포트막스(Sportmax). 슈즈는 로에베(Loewe).

데님 재킷은 막스마라(Max Mara). 화이트 톱과 플라워 프린트 팬츠는 로에베. 이어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이비 셔츠, 블랙 니트, 블랙 버뮤다 팬츠, 블랙 워커는 모두 토즈.

유독 강한 역할을 많이 해왔죠. 자기 의견이 없는 역할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왜 그럴까요?
맞아요.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귀피를 흘리는 여자>가 데뷔 후 유일하게 약한 역할이에요.(웃음) 감독님이나 다른 분이 저한테서 그런 모습을 봤거나 제가 그런 인물에 더 끌리는 걸 수도 있어요.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가는 힘을 가진 인물을 보고 매력을 느끼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당신이 생각하는 강함이나 약함은 뭐예요?
제가 생각하는 강인함은 유정에 가깝거든요.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전 긍정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유정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힘. 그게 저한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 사람이 정서적으로 휩쓸려서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그게 진짜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저나 작품 얘기하는 게 그렇게 좋아요? 엄청 신나 보여요.
작품 할 때는 따로 얘기할 기회가 없잖아요. 작품이 이랬고 나는 어땠고 말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웃음)

아직도 아멜리 노통브 책 보면 한나 씨를 생각하거든요. 계속 읽어요?
최근엔 못 봤어요. 이제 슬슬 책을 읽어야 해요.

노통브는 매년 작품을 발표하는 걸로 유명한데, 어때요? 1년에 한 작품씩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죠. 왜냐하면 요즘 한 작품 하면 7~8개월 걸려요. 그러고서 석 달 정도 쉬니까요.

그 사이 라디오도 2년을 했어요. 그 첫 주를 매일 들었어요.
첫 주를 들으셨어요? 아이고…. 너무 긴장돼요. 미쳐, 미쳐. 한 8개월 떨었어요.

청취자라 아는데, 한 달 만에 적응하던데요?
‘이제 좀 편하다’ 했을 때가 7~8개월이에요. 그때부터 내가 편해졌구나 했어요.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경험이 또 어떻게 남았어요?
매일 소통하면서 제가 살던 방식과 다른 많은 분들을 만나니까 바라보는 시각도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게 있었어요. 멀티태스킹이 워낙 안 됐는데, 좀 되고요.

인터뷰도 당하시다가 하게 됐죠.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좋은 질문일까? 하고 말하기 몇 초 전에 고민되더라고요. 또 질문하려면 미리 다 찾아봐야 하잖아요.

강한나, 이젠 어떤 배우가 된 거 같아요?
무슨 역을 맡겨놔도 잘해낸다?(웃음) 그래서 한번 보고 싶다, 작품을. 다른 것보다도 그런 게 좋지 않나 해요.

뭘 더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음… 뭔가 더 일상적인 거요.

일상에는 한나 씨 같은 미인이 없는 걸요.
하하! <귀피를 흘리는 여자>에선 제가 일상적이에요. 일상생활 안에서, 그 안에 사랑이 있어도 좋고 우정이 있는 얘기. 편의점 앞에서 친구들과 맥주 마시는 장면 같은 것도 저는 찍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나저나 압구정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요즘 압구정이 다시 대세가 됐더라고요.
안 그래도 차 타고 숍 가는 길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어?’ 해요. 진짜 좋아 보이더라고요. 저는 사실 중고등학생 때라 그냥 맥도날드 가고. ‘싼타페’ 가서 김치볶음밥 먹고요. ‘모네’ 이런 데 가서 치즈돈가스와 체리콕을 먹는 게 다였어요. 친구들과 스타샷 찍고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학교 다닐 때가 재미있기는 했는데 지금이 좋은 것 같아요. 조금 늦게 데뷔했지만, 더 늦게 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어요. 20대만의 생활과 재미가 있잖아요.

장점도 확실히 있는 거죠?
삶의 균형을 잘 잡는다고 해야 할까요? 이미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가 형성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니까 일은 일이고, 내 삶은 삶이라는 게 분리가 되어요. 일할 때만 연기자 강한나가 되는 거고, 아닐 때는 제 삶을 사니까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강한나의 워라밸에서는 뭐가 제일 중요해요?
저는 쉴 때는 충분히 쉬어야 하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잠자고 영화 보고요. 일 안 할 때는 정말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 같거든요. 아예 일 생각을 안 하고요. 모아둔 돈 쓰면서 지내요.

알고 보면 저축왕인가요?
펑펑 쓰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어요.(웃음) 사실 오늘이 당분간 연예인 강한나로서는 마지막 일정이에요. 저 내일부터 긴 휴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