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는 한참 거리가 멀 것 같은 패션 업계도 지금 벌어진 내 이웃의 참혹한 일에 도움을 건네고 있다. 저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패션이 평화를 지지하는 법은 이렇다. 

설마 하던 일은 마침내 벌어졌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개인의 욕심으로 시작한 전쟁은 결국 벌어졌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과 나라를 지키고 싶은 결연한 마음으로 지옥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불행 중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역사 속 여느 전쟁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비인간적인 전쟁의 현재를 알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알리고 또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들이 아픈 마음에 동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한순간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2022 가을/겨울 시즌 패션 위크가 한창일 때. 그날의 폭탄 소리는 화려한 패션 업계의 주요 캘린더를 애도의 물결로 이끌었다. <보그 우크라이나>는 기약 없이 발행을 멈췄고, 에디터들은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패션 이슈 대신 지혈하는 법, 우크라이나의 군대를 돕는 법 등을 게재했다. 편집장 비올레타 페도로바는 전 세계의 패션 업계에 러시아를 상대로 보이콧을 요청, 패션 업계는 여기에 즉시 응답했다. 

가장 빠른 응답은 런웨이였다. 먼저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즉시 음악이 없는 침묵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음악이 없는 런웨이는 작은 숨소리와 모델들의 걸음 소리, 사진가의 셔터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관록의 노장은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신호를 침묵으로 표현했다. 또 조지아 내전을 겪은 경험이 있는 뎀나 즈바잘리아는 발렌시아가의 런웨이를 통해 평화와 승리를 위한 지지를 보냈다. 그는 이번 쇼를 ‘두려움이 없는’, ‘저항’, ‘사랑과 평화의 승리’에 대한 헌사라고 정의했으며, 인공 눈보라 속에서 비틀거리듯 걷는 모델들의 모습으로 우크라이나인의 고난을 표현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런가 하면 이자벨 마랑은 쇼 마지막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형상화한 파란색과 노란색 옷을 입고 피날레에 등장했고, 스텔라 매카트니는 존 레논의 노래로 평화의 메시지를 대신했다. 

전쟁 초기 럭셔리 분야를 러시아 제재 대상으로 두냐 마냐로 전전긍긍하던 미국과 유럽연합도 상황이 악화되자 수출 전면 금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푸틴의 전쟁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을 뒤로한 채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없도록 한다는 게 이들의 방침이었다. 여기에 파리 패션협회와 이탈리아 국립패션협회를 비롯한 LVMH, 커링, 에르메스, 샤넬, 리치몬드, 프라다 등 굴지의 패션 하우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한 기부에 동참하는 동시에 러시아 내 매장을 철수하고 판매 중지를 선언하며 모든 상업 활동을 중단했다. 러시아 명품 쇼핑의 메카 굼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쇼핑 센터는 명품 패션 브랜드 매장이 서서히 비어가는 썰렁한 모습으로 변했고, 이제 더 이상 러시아 내에서 럭셔리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할 곳은 없다.
패션 브랜드가 평화를 지지하는 데 소셜미디어는 더없이 큰 힘을 발휘했다. 알렌산더 맥퀸, MSGM, 비비안 웨스트우드, JW앤더슨, 메종 키츠네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포스팅하며 전쟁이 끝나길 기원했고, 이 게시물에 유엔 난민기구에 기부할 수 있는 링크를 삽입, 많은 사람이 기부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브랜드만 나선 것은 아니었다. 프라다, 생 로랑 등 주요 하우스의 뮤즈로 활약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톱 모델 미카 아르가나라즈는 가장 먼저 2022 가을/겨울 시즌 패션 위크의 수익 일부를 우크라이나 단체에 기부할 것을 밝히며,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더 많은 모델이 동참하기를 요청했다. 미카 아르가나라즈의 친구이자 팔레스타인 출신인 모델 지지 하디드는 이에 화답하며 전쟁 중에도 패션 위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이자 친구인 우크라이나 모델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패션 위크 수익금을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기부할 것을 예고했고, 동생 벨라 하디드 또한 동참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눈과 마음이 인간의 모든 불의에 열려 있어야 하고, 모두가 정치, 인종, 종교를 넘어 형제 자매로 지켜보고 지지할 것”이라고 각각 7000만, 5000만 팔로워들에게 약속했다.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전쟁의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 실제로 3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며 그 뜻을 응원했다.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모든 사람은 형제니까”라고 말한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 페늘롱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고통스러운 전쟁의 공포 속에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이 비극적 상황에 마음을 모아 머나먼 나라의 형제들이 겪고 있는 악몽 같은 시간이 빠르게 끝나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에디터는 평소 애정하는 <보그 우크라이나>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리고, 참여하고, 독려하고자 한다. 내 이웃의 아픔을 알리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패션 브랜드의 어느 선행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