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 책임자(CSO), 그린 칼라, 그린 잡에 대해
이전과 다른 삶의 기준에 따라 세상에 없던 교육과 직업이 탄생한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움직임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직업의 세계.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 의식을 소비 습관에 반영하는 흐름은 사업 생태계 전반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산업을 불문하고 브랜드는 자신들이 환경을 생각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앞다퉈 선전했지만, 기후 감수성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에 소비자의 시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럴듯하게 포장한 그린워싱은 발각되고, 브랜드는 역풍을 맞는다. 지구 환경과 생존 문제를 보다 면밀하고 주도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시장 역시 진지하고 전문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그린 칼라
이제 글로벌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성 책임자(Chief Sustainability Officer, CSO)’라는 직함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기업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속 가능성 규제 준수 관리부터 전략 수립과 ESG 전략 실행까지 총괄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기반의 지속 가능 경영 리쿠르팅 기업 ‘와인렙 그룹(Weinreb Group)’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상장사 중 ‘CSO’ 직함을 가진 리더의 수는 2025년 기준 215명으로, 2011년 대비 7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또 S&P500 기업의 98% 이상이 매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그저 그런 대책이 아닌 철저한 분석과 통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이 실행되기 위해서 실무자의 역할 역시 촘촘하게 진화하고 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넘어 ‘그린칼라’라는 새로운 직종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린칼라의 핵심은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인 ‘탄소발자국’ 관리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기술자부터 조직 내 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탄소 회계사와 탄소배출권 관리자가 전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과 생산 공정의 변화도 눈부시다. 특히 2024년 유럽연합(EU)의 에코디자인 규정(ESPR)이 채택됨에 따라 기획 단계부터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적용하는 에코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들은 소재 선택부터 포장, 폐기까지 제품의 모든 과정에 관여해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산 환경을 구축한다. 또 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국가에서는 폐기물 관리자와 환경감시원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추세다.
이제 기후 위기는 브랜드를 넘어 우리의 생존을 위한 직업 역시 새롭게 바꾸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 상황에서 전력 수요 관리 전문가는 나날이 그 역할이 중요해지는 직함이다. 이들은 에너지 사용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해 전력 소비를 예측하고 제어하는 기술을 운용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원에 대한 생산과 전환, 수송, 저장 및 이용 효율 향상, 수요의 절감 및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 등을 도모하기 위해 소비자의 에너지 사용 패턴을 변화시키는 제반 활동에 관여한다. 친환경 원칙을
건물 설계와 건설에 적용하는 그린 빌딩 건축가 역시 친환경 생태계를 바꾸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부지 선정부터 건설, 운영, 유지보수, 철거 등 건물의 생애를 모두 고려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꼼꼼하게 체크한다. 대기질 엔지니어 역시 대기오염 수준을 평가하고 공기의 질을 개선하는 환경공학자다. 기술, 규제, 자문을 통해 오염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줄이고 공기의 호흡 적합성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대체식품 연구원은 인류의 생존 영역에서 전문 분야로서 각광받는다. 푸드테크의 핵심인 식물성 기반 단백질과 배양육, 곤충 단백질 등을 연구하며 식탁 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집중한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세포배양육 기술은 이들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미래 식량의 핵심 과제다. 더 나아가 세계 각지에서는 폭염으로부터 시민을 구하기 위해 최고 폭염 책임자(Chief Heat Officer, CHO)라는 직책도 신설되고 있다. 이들은 도시 내 무료 식수대와 더위 피난소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을 만들거나, 공공주택 에어컨 설치 및 가로수 그늘 조성 사업 등을 펼친다. 이들에게 폭염 대응은 단순한 행정을 넘어 시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제도적 사명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동력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그린칼라의 역할에 발맞춰 교육기관 역시 신규 학과와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2022년, 지속 가능성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 가능성 전담 단과 대학(Stanford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을 설립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지식 함양과 해결책, 영향 창출을 목표로 기후와 에너지, 지구과학, 정책, 기술 등을 배울 수 있는 전공으로 구성됐다. 컬럼비아 대학교 역시 기후 리스크, 금융, 사회를 아우르는 ‘기후과학’ 중심의 대학원 프로그램을 설계해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MIT는 지속 가능성을 기술적 부분에서 긴밀하게 접근하는 학교 중 하나다. 대표적인 전공은 기후 시스템 과학 및 공학(Climate System Science and Engineering)으로, 기후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관련 기술을 공부한다.
국내에서는 카이스트가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선도할 융합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을 설립했다. 과학기술과 정책, 금융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교육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며 탄소중립의 해법을 모색한다. 이처럼 ‘친환경’이라는 모호한 경계가 선명한 기준과 전략적 기술로 진화하면서 산업 생태계는 한 단계 더 진보하고 있다. 더 이상 기업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교묘한 수식어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고 한다. 시작은 조금 늦었을지라도, 지속 가능한 시대에 조금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 일러스트레이터
- GRACE J.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