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ALLURE

사진 작가가 포착한 소중한 생명체 이야기

2026.04.12ALLURE, 이마루(프리랜스 에디터)

눈을 마주치기 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감각이 있다. 반려동물 외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세 명이 포착한 순간.

문선희 작가가 국립서천생태원에서 마주한 고라니. 야생성이 강한 고라니는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진가 문선희가 10여 년 동안 고라니 100여 마리의 정면 초상을 담은 ‘라니’ 연작. 고라니의 시선으로 몸을 낮추면 보이는 고유의 얼굴들. 그중 50개의 초상은 사진 에세이 <이름보다 오래된>으로 출간되었다.

살처분 대상과 유해 동물이라는 낙인을 기록하다 _문선희

문선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는 작업을 이어간다. 교직 생활을 하던 중 30세부터 글쓰기와 사진 촬영에 전념한 그의 작업 방식을 요약하면 서정적인 시선과 수행적인 태도다. 2010년대 전국을 휩쓴 조류독감과 구제역으로 수많은 가축이 살처분된 후 매몰지 100여 곳을 방문해 찍은 <묻다> 연작은 2015년 당시 공개와 함께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조건적인 살처분만이 답인지, 그 처리를 직접 ‘수행’해야 했던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묻는 이 작업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이 현실을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유해종’이라는 낙인 때문에 포획·사냥당하거나, 삶의 터전에서 밀려 나와 로드킬로 매년 20만여 마리가 목숨을 잃는 고라니의 얼굴을 10년간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국립생태원을 오가며 담기도 했다. 고라니 초상 앞을 거닐던 관람객이 각각의 얼굴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 눈빛을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 그 얼굴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젖어드는 것을 볼 때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에는 과거 ‘전서구’로 활약한 것에 착안해 비행하는 비둘기를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배열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선사한 연작 ‘친애하는 구구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같은 형식을 반복하는 연작으로 구성된 문선희의 작업은 작가가 무엇을 응시하는지, 어떤 태도와 자세로 그것을 바라보는지를 투명하게 드러내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퇴역마, 그리고 승마용으로 학대받은 말을 데려와 돌보는 마레숲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선 말들. 제주 출신으로 고향에 돌아와 생추어리를 꾸린 마레숲 김남훈 대표는 말과 소를 방목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생추어리에 렌즈를 들이밀수록 동물뿐 아니라 이 공간을 운영하고, 돕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된다.
웅담 채취 목적으로 길러진 반달가슴곰을 구조한 화천 곰 보금자리에서. 30년 만에 좁은 철창을 벗어나 물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던 유식이는 2023년 세상을 떠났다.
새끼를 밴 루나와 루티가 출산을 앞두고 곶자왈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산책 중 우연히 마주친 말 2마리. 둘의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담던 찰나는 신선영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이지양 작가가 종로구 구기동 주택 단지에서 포착한 멧돼지와 들개의 모습.
이처럼 야생과 도시의 경계에 놓인 동물들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반갑기도, 귀엽기도,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동물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이 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가축으로서 죽지 않고 나이 들기, 생추어리 _신선영

신선영은 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한다. 보도사진 촬영을 위해 살처분되는 동물, 소싸움 경기장, 퇴역 경주마 도축 현장 등을 취재하면서 동물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2023년부터 1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소와 돼지, 말, 곰을 위한 네 곳의 각기 다른 생추어리를 기록한 책 <동물의 자리>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퇴역마와 승마용으로 학대받은 말을 데려와 돌보는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마레숲에서 말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때는 틈틈이 평온함과 황홀함을 느끼기도 했다. 동물의 모습을 담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그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마레숲을 찾아온 제주 야생마에게도 음식과 물을 내어주는 김남훈 대표 같은 활동가와 후원자뿐 아니라 생추어리 공간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생추어리의 정반대에 있는 축산 농장 농장주의 풍부한 경험 또한 도움이 된다는 아이러니함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일’이라는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

신선영에게 바람이 있다면 이번에 만난 동물들이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다시 또 그들의 얼굴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아닌 어떤 동물들은 나이 들어갈 기회조차 일찌감치 박탈당하므로. “이 책의 이미지들이 농장 동물들이 어렸을 때 영영 잃어버린 것을 떠올려보도록 독자를 이끌기를 바란다.” 미국 전역의 생추어리를 방문해 나이 든 닭, 소, 돼지의 초상을 담은 사진가 이사 레슈코의 책 <사로잡는 얼굴들>에서 만난 문장이, 셔터를 누르는 신선영의 손끝과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도시에는 반려동물 아닌 동물도 살고 있다 _이지양

이지양은 사진과 영상 작업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만들어내는 시각 이미지의 힘을 믿고,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존재나 장면을 조금 다른 거리에서 마주하게 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가드레일 위로 자라난 덩굴, 도시의 가로수 등 2010년부터 기록해온 비인간 생명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외형과 용도에 따라 생명을 규정하고 소비하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중국에 머물던 시절, 집에 나타난 쥐를 보고 당시 집주인이 농담처럼 “It’s not my pet!”이라고 외친 한마디는 왜 어떤 생명은 가까이 두고 돌보고, 어떤 존재는 쉽게 제거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의 초석이 됐다. ‘It is not my pet’ 시리즈는 대상을 스튜디오라는 매끈한 환경 속으로 옮겨와 그 존재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작업이다. 비둘기와 끈끈이덫에 걸려 생명을 잃은 쥐의 사체, 벌집을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로 불러들이고, 차창을 덮은 새똥에 렌즈를 집중하는 식이다.

최태규 수의사와 펴낸 책 <도시의 동물들>은 동네에서 마주한 멧돼지와 들개 같은 도심의 야생동물은 물론, 하천에 찾아온 새, 횟집 수족관의 넙치와 우럭, 심지어 러브버그까지. 이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를 매개로 우리의 자각이 필요한 20여 가지 의제를 던진다. 자신의 작업과 일상 속 동물과의 만남을 통해, 그 존재가 가진 삶의 방식이나 모습을 잠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기길,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라는 문장처럼, 낯선 감각을 통해 우리 또한 서로를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포토그래퍼
    문선희, 신선영, 이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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