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W 4대 패션위크에서 포착한 지속 가능성의 신호들.

아카이브로 완성한 디젤의 무대
거의 50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며 쌓인 디젤의 문화는 이번 런웨이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펼쳐졌다. 브랜드는 1978년 이후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 기념품 약 5만 점을 공개하며 쇼 공간 자체를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6000여 개의 카테고리에서 수집한 오브제와 소품이 강렬한 조명 아래 층층이 배치되며, 디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파티와 서브컬처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재사용과 변형을 거친 풍경은 창의적인 업사이클링에 대한 브랜드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그 메시지는 리사이클 소재를 적극 활용한 이번 시즌의 데님과 레디투웨어, 백 컬렉션 전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해체와 재구성의 미학
2010년 시작된 시몬 크래커는 버려진 의류와 데드스톡 소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 패션 프로젝트다. 디자이너 시모네 보테와 필리포 비라기 듀오는 폐의류와 모피, 가죽 등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세상에 하나뿐인 개성을 창조한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전통적인 봉제 대신 매듭과 연결 방식으로 옷을 퍼즐처럼 조립하는 구조가 눈에 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완성된 이 의복은 조각난 옷이 다시 하나의 형태로 맞춰지는, 업사이클링 특유의 거칠고 유머러스한 미학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편 보테가 베네타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폐유리로 만든 유리섬유 소재를 런웨이에 올렸다. 층층이 은은한 빛을 내며 묵직하게 흔들리는 레이어를 보고 있으면, 그것이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파리에서 열린 스텔라 매카트니의 쇼에서는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런웨이 공간에 등장한 10마리의 말은 동물을 패션의 소재가 아닌 함께 살아갈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브랜드의 메시지였다. 이는 오랫동안 동물보호와 비건 소재를 강조해온 매카트니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같은 기간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를 받았다. 패션산업에서 지속 가능성과 동물보호의 가치를 꾸준히 제기해온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뜻깊은 순간이었다.

다시 쓰는 데님
데님은 과연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2026 F/W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해법이 제시됐다. 코치는 자투리 가죽과 원단 스크랩을 활용한 패치워크와 업사이클링 데님, 포수 미트를 재활용한 가방 등 과감한 순환 디자인을 런웨이에 올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는 이번 런웨이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실험실’이라고 정의하며, 데님을 포함한 아메리칸 클래식을 순환 패션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했다. 한편 캘빈 클라인은 ‘리캘빈(Re-Calvin)’ 테이크백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반납한 의류를 자원으로 되돌리는 순환 시스템을 강화한다. 오래 입은 것부터 손상이 있는 것까지, 상태에 따라 리셀, 리유즈, 리사이클, 업사이클 등의 방식으로 다시 활용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데님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재 실험의 새로운 흐름
소재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실험은 이번 시즌에도 계속된다. 콜리나 스트라다는 오가닉 코튼과 데드스톡 플리스, 텐셀과 헴프를 섞은 바이오 소재 등 자연 유래 텍스타일을 활용해 컬렉션 전반에 소재의 순환 가능성을 드러냈다. 한편, 디자이너 캐롤라인 짐발리스트는 금속 장식 대신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바이오 소재를 의복의 구조 요소로 활용하며 패션과 생태의 경계를 탐구했다. 두 사례는 지속 가능성이 단순한 소재 선택을 넘어 패션의 형태와 제작 방식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