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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K쌀롱 26> 30년 만에 재개봉하는 ‘첨밀밀’을 꼭 봐야 하는 이유

2026.03.23김가혜

지금 우리가 그리워하는 멜로의 시작은 30년 전 홍콩 영화 <첨밀밀>이었다. 

인스타그램@lottecinema_official

<첨밀밀>은 처음이라?

‘첨밀밀'(1997)

“달콤해요. 그대 웃음은 달콤해요. 마치 봄바람에 피어나는 꽃송이 같아요.”

아침부터 등려군의 ‘첨밀밀’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따라 할 줄 아는 가사는 “티엔미~미”뿐이지만 그 시절 설렘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한마디다.  

국내에서 1997년에 개봉한 <첨밀밀>을 어제 다시 봤다. 아니다, 사실 처음 봤다. 그 시절에 극장에서 보거나 비디오를 빌려 본 적이 없지만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은 느낌. 첫 가사처럼 달콤한 등려군의 노래도, 두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온 등려군의 뉴스를 보면서 재회하는 장면도 너무나 선명한데, 생각해 보니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었다. 그 시절 내가 본 것은 감우성, 채림 주연의 드라마 <사랑해 당신을>(1999)이었다. 기억 나니? 두리안의 ‘아임 스틸 러빙 유’~?   

<탈주>, <삼진그룹 토익반>에 이어 최근 공개된 <파반느>를 만든 이종필 감독은 첫 멜로 연출로 꿈을 이뤘다며 10대 시절에 본 <첨밀밀>을 언급했다. “<첨밀밀>을 보고 극장에서 일어나지 못 했어요.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생각했죠.”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시작된다. 기차가 도착한 줄도 모르고 입 벌린 채 자고 있는, 누가 봐도 시골에서 방금 막 상경한 소군(여명). <만약에 우리>의 원작 영화 <먼 훗날 우리>가 떠올랐다. 고향을 떠나 성공을 꿈꾸는 청춘들의 대도시 생고생이 펼쳐지겠지. 톈진 출신인 소군이 홍콩에서 믿는 구석은 고모 ‘로지’인데, 태국 여성들을 데려다 성매매를 하는 포주다. 매일 곱게 단장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수십 년 전 하룻밤을 보낸 배우 윌리엄 홀든. 그 말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없지만, 소군은 고모의 현재형 첫사랑을 남들처럼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홍콩 드림에 부푼 소군이 정장까지 입고 가서 면접을 본 첫 직장은 정육점. 우리가 기억하는 <첨밀밀> 속 여명은 항상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사실 뒷자리에는 (대가리까지 달려 있는) 생닭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처음으로 간 맥도날드 매장에서 광동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소군의 주문을 도와준 사람은 이요(장만옥). 빨간 벨로크 캡에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장만옥의 모습은 그야말로 레전드. 패스트푸드점 알바에 대한 로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네가 내 첫사랑이니까?!

‘첨밀밀'(1997)

친절한 맥도날드 여신처럼 보였지만 어리버리한 소군을 엉터리 영어 학원에 알선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이요. 안면몰수 하고 악착같이 일하는 이유는 한 가지, 성공하기 위해서다. 첫사랑의 추억을 소환하는 영화에서 순진한 남주와 대비되는 야망캐 여주. <먼 훗날 우리>에서 베이징에 집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게 꿈이던 팡샤오샤오(주동우), <건축학개론>에서 ‘압(구정)서(초)방(배)’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 강남의 반지하로 이사하던 제주 출신 서연(수지)이 겹쳐 보인다.

전문 용어로 ‘눈탱이’를 맞고도 이요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가가는 소군은 말한다. “저 차 있어요, 태워 줄까요?” 20여 년이 흘러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CF 감독 상수(손석구)도 써먹은 대사다. 다른 점이라면 소군은 두발 자전거를 직접 운전했고, 상수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바래다줬다는 것이다. 

‘첨밀밀'(1997)

야망캐 여주는 당연하게 시련을 맞는다. 맥도날드에 학원 청소에 꽃집까지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며 목돈을 모아 야심 차게 사업을 벌이지만 쫄딱 망한다. 홍콩 사람 5분의 1이 본토 출신이라며 등려군의 테이프를 팔지만, 이요가 그러했듯 출신지를 숨기고 싶어하는 본토 사람들은 외면한다. 비까지 맞아 한껏 처량해진 이요가 추울까 봐 자신의 옷을 입히는 소군. 좁은 방에 딱 붙어 서서 단추를 채워주다가 그만 ‘동무’의 선을 넘어버린다. 척박한 대도시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따뜻해지는 순간.

‘첨밀밀'(1997)

두 사람만 보면 세상 로맨틱하지만 소군에게는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는 약혼자가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식이를 이제 와서 보면 그저 철 없는 분노 조절 장애 재벌 2세인 것처럼, 40대가 되어 본 소군은 순애보의 얼굴을 한 ‘사빠죄아’에 가깝다.

헤어진 전 여친 희진(정려원)을 미국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삼식이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영화 중간 뒷목을 잡게 되는 순간이 있다. 궂은 일 마다 않고 일하다 보니 약혼자를 홍콩에 데려와서 사는 꿈에 가까워진 어느 날. 소군은 좀 전까지 한 침대에서 다정하게 안고 있던 이요를 데리고 “약혼자 선물을 골라달라”며 귀금속 판매점에 간다. 이요가 껴 본 순금 팔찌를 두 개 구입해 그 중 하나를 선물하는 이 남자. 순수악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금값 시세를 참작해 귀엽다고 해야 할까?

보는 사람을 찡하게 하는 의외의 순애보는 용 문신으로 덮인 등에 이요가 좋아하는 미키 마우스를 새겨서 나타난 ‘표형’이다. <무간도>의 자비 없는 중간 보스이자 <도둑들>에도 특별 출연했던 증지위의 다시 없을 로맨틱한 연기. 사채 빚을 갚아주고, 사업가의 꿈도 펼치게 해주었지만 이요가 도망자 신세가 된 그를 따라 건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임 스틸 러빙 유, 첨밀밀  

‘첨밀밀'(1997)

그 시절 홍콩 배우들은 아시아의 스타였지만, ‘4대 천왕’ 중에서도 여명을 향한 내적 친밀감은 남달랐다. <첨밀밀>을 패러디해 “낭만주의 쿠키” 쿠크다스 광고도 찍었는데, 킬포는 하단에 뜨는 주의 문구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장면을 재연한 것으로 자전거에는 13세 이상 2인이 탑승할 수 없습니다.” 박신양과 김남주 주연의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 OST ‘사랑한 후에’는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도 다 따라 부를 만큼 히트. 등려군의 ‘첨밀밀’로 시작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소라의 프러포즈>에 출연한 여명을 보여주고 있다.

3월 말에 재개봉 하는 <첨밀밀>이 벌써 30여 년 전 작품이다. 인연이라면 이역만리 뉴욕 한복판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멜로가 체질인 사람들의 바이블. 봄이 그렇게도 좋냐며 꽃놀이에 나선 청춘들에게 저주를 퍼붓다가도 ‘티엔미~미’를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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