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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DICATED TO THE DIVA / 백지영

가수 백지영은 연예인 정신건강 자조 공동체를 설립하고, 자신을 꼭 닮은 딸을 키우며, 노래하길 멈추지 않는다.

베스트 톱은 토즈(Tod’s).

크루넥 스웨터와 팬츠는 로로피아나(Loro Piana). 펌프스는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재킷과 팬츠, 스커트는 모두 잉크(Eenk). 이어링은 페로즈(Perose).

코트와 벨트는 막스마라(Max Mara). 펌프스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페로즈.

재킷, 팬츠, 웨이스트 밴드, 이어링은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니트 톱과 스커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뮬은 페라가모. 링은 반조애(Vanzoe).

최근 희극인 이성미,  송은이와  배우 신애라 등 10여 명이 모여 연예인 정신건강 자조 공동체 ‘GEM(Gatekeepers for Entertainers’ Mental Health)’을 발족했어요. 정신의학 전문의들에게 트라우마와 우울증,  자살 신호 포착법 등을 차례로 배웠고 공동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고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연예인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많아서 (이)성미 언니와 장례식장에서 자꾸 만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성미 언니와 뜻이 맞아서 채정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을 만났어요.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죠. 지금은 2기를 모집했고, 80여 명이 모였어요. 특히 연습생은 미성년 아이들이 많다 보니 그들을 정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데뷔하지 못했거나 데뷔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활동이 중지된 친구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백지영, 송은이, 이성미, 신애라라는 조합이 든든합니다. 
성미 언니가 대단한 건, 이 모임에 필요하겠다 싶은 분들에게 다 전화를 돌려서 섭외를 해낸다는 거예요. 이 모임의 보스예요.(웃음) 은이 언니는 오래 친하게 지낸 사이라 제가 부탁을 했고, 애라 언니는 성미 언니의 부탁을 받고 오셨는데 이젠 저희의 정신적 지주가 됐어요. 

긴 연예 활동을 하며 마음을 챙기는 일의 중요성을 체감했을 테죠. ‘과거 내가 힘들었던 때 누군가 옆에서 손길을 내밀어주었더라면’과 같은 마음이었나요? 
정확해요. 그 당시에 제가 필요로 하던 것을 지금 후배들에게 주고 싶어요. 저는 대중 앞에 선 사람이고 제 인생의 굴곡은 다들 알기 때문에,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후배들에게도 상담을 청하며 전화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러니 잊고 살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데 감사함도 느꼈어요. 제가 과거의 어려움을 잊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고비마다 어떻게 터널을 빠져나왔나요?
그저 들어주는 귀가 필요하고, 내 안에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게 가족이었죠. 누군가에게는 친구나 반려견일 수도 있을 거고요. 누구나 생채기 입고 약해진 부분이 있는데, 채 아물기도 전에 불특정 다수에게 자꾸 약한 점을 꼬집히면 그 상처의 깊이는 본인 아니면 잘 모르기 쉬워요. 누군가에게서 안 좋은 사인이 보일 때가 진짜 시작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징후가 드러나기 전부터 옆에서 들어주는 귀와 잡아주는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품이 넓은 사람인가 봐요. 이렇게 모르는 후배도 대뜸 연락해서 상담을 하고요. 
저희 처음 봤는데, 모르는 사람 같지는 않죠?(웃음) 누군가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가수 백지영은 ‘부담’ ‘Sad Salsa’ ‘Dash’ 등 라틴 댄스 장르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그 후엔 ‘사랑 안 해’ ‘총 맞은 것처럼’ ‘잊지 말아요’ 등 발라드의 여왕으로 거듭났고요.
우연히 데뷔해 무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라틴 댄스 장르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하며 가수로서의 체력과 맷집이 단단히 쌓였어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불태워보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경험인 것 같아요. 힘들지만 밑거름이 됐죠. 어떤 게 좋고 나쁜 건지 분별력도 생겼고요. 발라드를 하게 됐을 때 저는 다시 돌아왔다는 기분이었어요. 애초에 하고 싶은 건 발라드 가수였거든요. 그리고 큰 사랑을 받게 됐죠. 모든 것이 우연을 가장해 필연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가수가 되었다고요?
스무 살 무렵, 아빠가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니까 억지로 대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어떤 꿈도 희망도 없이 그냥 재미있게 잘 놀고 있었죠. 스스로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한 곡 더 부르라는 이야기를 듣는 정도?(웃음) 그러다 업계에 계신 분이 특강을 오셨다가 지나가는 저를 보고 오디션 볼 생각이 있느냐며 명함을 주셨어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는데 됐어요. 

오디션에 단번에 합격시킨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박정현의 ‘오랜만에’요. 1년 반 정도 연습하고 데뷔했어요. 

가수에 대한 의지가 선명하지 않던 당신을 잡아주는 말이 있었나요?
당시 회사 분들이 제 음색이 좋다고 하셨어요. 막상 시작하자 노래가 즐거워졌고, 열심히 연습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당신이 부른 ‘무시로’를 여전히 종종 듣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 깊은 데 닿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가요?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 보람 있습니다.(웃음) 저는 노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고 자식처럼 여겨야 하죠. 내가 부르는 이 노래가 어떤 사람에게 닿아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 순간을 귀히 여겨요. 

스스로 생각하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가장 큰 강점은 뭔가요?
아무리 깎고 다듬어도 안 되는 사람의 기본 체형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게 음색 같아요. 발레 선수는 발레하는 몸이 있고 권투 선수는 권투하는 몸이 있죠. 가수에게도 노래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저는 그 주어진 것을 잘 관리하려고 해요. 노래도 사실은 근력이에요. 꾸준히 하지 않으면 노래 체력이라는 게 붙지 않아요. 

주어진 것은 귀하죠. 
타고난 게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특히 노래는 타고나는 부분이 꽤 크다고 생각해요.

<1등들> 등 심사위원으로서 후배들의 가창력을 심사하는 건 어떤가요?
<슈퍼스타K> 때부터 오디션 포맷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많은 곳에서 심사위원 요청을 받았는데, 사실 한두 회 거듭할수록 마음이 힘들었어요. 방송을 통해 안타깝게 소모되는 친구도 보였거든요. 이미 영근 친구들도, 아직 더 영글어야 하는 친구들도 나오기 마련인데, 후자의 친구들은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방송 안에서 이미 판결이 끝난 느낌이죠.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한동안 거절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몇 안 되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정말 진심으로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보이스 코리아>부터 다시 임하기 시작했어요. 탈락한 친구를 저희 회사로 데려오기도 하고요. 

50세, 어떤 나이라는 생각이 드나요? 
서른이 됐을 때도 마흔이 됐을 때도 별거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50세가 되니까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쉰이 지천명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의 뜻을 알 나이라니, 그건 전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샤워하고 나오면 거울에 부딪히는 몸의 변화가 보이는 나이인데, 그 세월의 흐름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제 딸도 크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보컬리스트로서는 어떤 나이인가요? 
이제 노래가 뭔 지 좀 알 나이. 한동안 노래하는 게 조금 지루할 때가 있었어요. 음악과 저 사이의 권태기였죠. 이제 그 시기를 지나와서 이제야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그러는 시기예요. 한편으로는 주변 선배님들 이야기 들어보면 목 관리를 더 잘하고 조심해야 하는 때죠. 제가 지닌 자부심 중 하나는, 여태까지 모든 곡을 ‘원키’로 부르고 있다는 건데요. 아직은 그런 순간이 제게 닥치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키를 내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높은 키로 빈틈없이 부르는 노래만이 좋은 노래는 아니잖아요.
그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부르는 노래는 또 다른 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상황이 닥치면 충격을 받겠지만, 탄력 있게 흡수할 준비를 잘해두려고 해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노래할 건가요?
친구인 김이나 작사가가 조용필 선생님 공연을 다녀와서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그분의 존재, 음악, 무대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더래요. 그 얘기를 들으며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인생과 함께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내 인생의 스토리도 더 잘 가꿔나가야겠다 싶어졌죠. 

노래에는 부르는 사람의 삶도 보이기 마련인가요?
다 보여요. 제가 ‘애가’를 잘 부르는 건, 그전의 제 히스토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잘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선 제 고난의 시간에 감사하죠.

지금은 무엇을 믿나요?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이든. 
세상은 살 만하더라. 끝이 안 보일 때도 있지만, 그 끝 너머에도 살 만한 세상이 있더라. 지나고 나면 웃을 수 있다고 옛 어른들이 얘기한 말씀이 맞아요. 우리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오늘 밤만 넘기면 살 만해요. 그러니 이 밤을 잘 넘겨봐요. 아침은 분명, 조금은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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