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은 있고 ‘피부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 사절, 고객 환영. 피부과 ‘치료’를 받기 어려워진 피부과의 민낯, 그 구조적 모순에 대하여.

피부과에서 ‘2등 시민’이 된 환자들
몇 달 전, 원인 모를 두드러기로 찾은 회사 주변 피부과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화려한 대리석 인테리어와 ‘이벤트 특가’ 포스터가 붙은 병원 입구에서, 접수 직원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시술 예약제라 일반 진료는 보지 않습니다.” 집 근처 병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진료 예약을 위해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피부질환 진료는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다 보니 돌고 돌아 결국 대형 종합병원에서 3시간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보고 약을 타왔다. 건물마다 ‘피부과’ 간판은 차고 넘치는데, 정작 아픈 피부를 보여줄 곳은 없는 아이러니. ‘피부과 전문의’ 간판을 달고도 ‘시술만 한다’며 환자를 돌려보내는 이 현상은 단순한 진료 거부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숫자가 증명하는 진료의 종말
솔직히 돈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컸다.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되는 비급여 시술을 해야 수익이 나니, 돈 안 되는 질환 치료는 기피하는 거라 넘겨짚었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티눈이나 사마귀 치료조차 의사들이 꺼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는 재료값조차 건지기 힘들 만큼, 치료 시간 대비 수익 구조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임대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을 포함한 서울 기준 피부과의 월 고정비는 약 2500만원에 달한다. 반면 건강보험 진료 1건당 수가는 1만5000원 수준이다. 월 2500만원을 메우려면, 1만5000원짜리 환자를 매달 1666명 넘게 진료해야 한다.
“월 진료 일수를 22일 기준으로 나누면 하루에 76명을 봐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어요. 원장의 급여를 제외한 수치이므로 최소 보험으로 병원을 유지하려면 100여 명을 진료해야 합니다.” 대한피부과의사회 이상주 회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하루 100명의 환자를 8시간 동안 진료하려면, 환자 1명당 배정되는 시간은 고작 4.8분에 불과하다. 의사는 병원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미용 시술’을 병행하거나 아예 미용 전문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재료비 인상도 발목을 잡는다. 사마귀 치료에 쓰이는 액화질소 가격은 코로나 이후 100% 이상 폭등했지만, 보험 수가는 매년 1~2% 오르는 데 그쳤다. 서울 등 대도시의 체감 원가 보전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엄살이 아닌 비명에 가깝다.
무늬만 ‘피부과’의 범람
척박한 환경 속에서 ‘비전문의’의 진입은 늘어났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작년 7월 기준 일반의가 개원한 의원 176곳 중 146곳(82.9%)이 피부과 진료를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비전문의 병원은 ‘미용은 굳이 전문의일 필요가 없다’거나 심지어 ‘미용은 비전문의가 더 트렌디하다’는 식의 마케팅을 하며, 전문의의 전문성을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이성주 회장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피부과를 단순히 ‘외모’를 가꾸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피부과가 다루는 영역은 단순히 피부 미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환을 포함하며,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진료과다.
예를 들어 습진이나 가려움증 같은 증상이 중증질환의 초기 증상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정밀검사를 통해 조기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며, 피부병변을 통해 전신 루푸스 등 중증질환을 진단해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피부과 의사의 역할이다. 미용 치료 역시 피부를 일시적으로 손상한 뒤 회복시키는 과정이므로, 피부 생리학적 지식이 없는 의사가 시술하면 부작용 대처나 안전성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대다수 환자는 간판만 보고는 전문의 병원과 일반 의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사태는 의료 업계가 ‘시장 논리’에 잠식당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통계는 정직하다. 2024년 신규 개원한 일반 의원의 83%가 피부과를 택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구조적 쏠림이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K-뷰티’와 ‘의료 관광’을 미래 먹거리라 치켜세우며 의료 산업화를 장려했다. 그 결과, 필수 의료는 고사 직전이고, 돈이 되는 비급여 미용 시장만 비대하게 팽창했다.
‘합법적 진료 거부’로 갈 곳 잃은 환자
“사정이 어쨌든 진료 거부 아닌가?” 나를 비롯한 환자의 분통 터지는 질문에는 유감이지만, 법적으로는 애매하다. 피부과에서 미용 시술만 하고 질환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으나, 구체적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어서다. 일단 보건복지부 유권해석 및 의료법(제15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으나,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가능하다. 의료기관의 전문성이나 시설·장비 등으로는 적절한 진료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다. 아이러니하지만 피부과 진료를 한다는 의사여도 ‘저는 미용만 해서 피부병은 잘 모릅니다’라고 자신의 비전문성을 인정해버리면,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면죄부가 성립되는 셈.
이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병원은 돈이 되지 않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노하우가 없는 경우도 많고. 하지만 이를 마냥 의사의 도덕적 해이로만 몰아세울 수 있을까? 정부는 낮은 수가를 방치하고, 환자는 저렴한 시술만 찾으며, 제도는 전문의와 비전문의를 구분해주지 않는다. 이 기형적인 삼각지대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단속은 어렵고 제도는 굼뜨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건강보험 급여를 단 한 푼도 청구하지 않은 피부과 의원이 52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3년 내내 피부질환 환자를 단 한 명도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이들 중 60% 이상이 서울 강남구에 몰려 있었다. 간판은 병원이지만, 실상은 ‘미용 숍’이나 다름없는 곳이 ‘의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신고가 들어오면 점검하지만, 주기적인 단속은 하고 있지 않다”며 행정력의 한계를 토로한다. 취재를 위해 보건복지부에 도움말을 문의했지만, 자문은 받지 못했다. 대신 국민신문고를 통해 공식 질의하라는 대답만 안내받았다. 이에 절차에 따라 질의를 접수했으나 현재 담당 부서 지정 및 확인 절차 지연으로 답변 기한마저 연장된 상태다. 최근 들어서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미용·성형 목적의 병행 진료 금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행정 공백’ 상태에 가깝다. 이미 시장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에 나온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혼란 속에서 똑똑한 피부과 찾기
그렇다면 이 어지러운 시장에서 우리 동네의 ‘진짜 피부과’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한피부과의사회는 다음의 3단계 확인법을 제안한다. 첫째, 간판의 빨간색 마크를 확인할 것. 병원 간판에 ‘피부과 전문의’라고 적힌 빨간색 사각형 로고를 찾으면 된다. 피부과 진료를 보는 병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곳과 일반의 또는 다른 전공 전문의가 진료하는 곳이다. 전자는 간판에 ‘피부과 의원’이라고 쓸 수 있지만, 후자는 병원 이름 옆에 ‘진료 과목 피부과’라고만 써야 한다.
둘째, 검색 필터를 활용하자. 포털 지도 검색 시 병원명 옆이나 하단 정보에 있는 ‘전문의’ 버튼을 누르면, 피부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병원만 필터링할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한피부과의사회 홈페이지(akd.or.kr)에서 ‘우리동네 피부과 전문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거다. 단, 강남이나 도심 속 번화가는 전문의라 하더라도 경영상의 이유로 미용 시술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헛걸음하지 않으려면 번거롭지만 방문 전 전화로 확인하길 추천한다.
‘피부과’를 되찾기 위한 길
모든 의사가 매출에만 신경 쓰는 건 아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환자를 돌보는 ‘진짜 의사’도 많다. 정부가 손 놓고, 의사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혼탁한 시장에서 내 지갑과 피부를 지키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성주 회장은 “정부도 고민이 크겠지만 우선 의료수가가 현실화되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질환 치료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고 소규모 개원가의 고정비 부담을 덜어줄 세제 혜택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아토피와 두드러기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 응급실을 전전해야 할지 모른다.
피부는 우리 몸의 가장 큰 장기다. 단순히 예뻐지기 위한 ‘껍데기’가 아닌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신체 기관이다. 그러니 정부는 질환 진료에 매진하는 의사가 병원 문을 닫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의사는 미용 시장의 유혹 속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본연의 사명감을 지켜내야 한다. 여기에 환자는 현명하게 병원을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정말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진짜 피부과’가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다.
- 일러스트레이터
- 신연철
- 도움말
- 이상주(대한피부과의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