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Z 커플들은 특별한 날에 어떤 선물을 주고 받을까?
요즘 연인이 커플 룩을 맞추는 법.

알싸하고 달콤한 맛이 감도는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올 무렵,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본 기억이 한 번쯤 있지 않나. 초콜릿과 꽃다발, 예약해둔 레스토랑 그리고 같거나 비슷하게 맞춘 옷과 액세서리까지. 연애는 여전히 사적 영역이지만 패션은 언제나 공적이어서, 둘의 관계가 정의되기도 전에 스타일이 먼저 거리를 나선다. 개인적으로 나는 커플 아이템을 일부러 맞추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나 데이트를 할 때면, 마치 연인과 맞춰 입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자친구의 옷이 좋기 때문이다. 퀄리티가 좋고, 실루엣이 담백하고, 무엇보다 내 옷장에 없는 편안함이 있다. 어느 날은 셔츠를 ‘잠깐’ 걸쳤다가, 또 니트를 빌렸다가, 이제는 편히 입는 반바지까지 야금야금 가져오게 된다. 그렇게 ‘잠깐’이 쌓이면 ‘영구’가 된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 정리를 하다가 알았다. 내가 산 게 아닌데 내 물건이 되어 있는 옷들이 박스 한 통을 채운 걸. 사랑은 종종 이런 식으로 물질화된다. 서로의 습관을 닮고, 말투를 따라 하다가, 결국엔 옷의 감촉까지 공유한다. 어느 날 빈티지 원피스를 선물하며 “이건 너 같아”라고 말하던 그의 상기된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은 좀 더 커졌고 그만큼 우리의 취향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사랑으로 증명하는 두 취향
연애에서 선물은 상대의 취향을 이해했다는 증거에 가깝다. 특히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의 압박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무작정 비싼 것을 고르기보다 ‘파트너에게 정말 맞는 것’을 오래 고민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가 소비를 줄이기보다는 그 기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밸런타인데이는 여전히 대표적인 소비 지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매업 단체인 전미소매업연맹(NRF)에 따르면,지난해 밸런타인데이 관련 지출액은 역대 최고치인 275억 달러로 추정되었고, 그중 주얼리만 65억 달러에 달했다. 글로벌 패션 하우스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맡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이 흐름을 두고, 변한 건 선물의 종류보다 그것을 고르는 방식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요즘은 ‘커플 아이템’이라는 말을 일부러 피합니다. 대신 사람들이 이 시즌에 어떤 분위기로 살고 싶은지, 어떤 소재에 끌리는지부터 먼저 보죠. 그래서 트윈 룩을 강조하기보다는 소재의 결이나 컬러 베리에이션, 무드보드를 중심으로 컬렉션을 보여줍니다. 리넨이나 실크처럼 촉감이 분명한 소재, 같은 계열 안에서 미묘하게 다른 톤의 색을 나란히 놓는 식이에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각자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경험을 더 중요시 여긴다는 쪽에 가깝다. 같은 아이템 2개를 나란히 제안하기보다, 서로 다른 선택이 함께 놓였을 때 자연스럽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그는, 기억에 남는 선물로 다이아몬드 링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고른 프러포즈 선물을 꼽는다. “직업적으로 손을 많이 쓰다 보니 반지는 잘 안 껴요. 그래서 줄곧 갖고 싶다고 생각해온 네크리스를 받았죠. 전통적인 프러포즈용 반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서 골라준 선물이라 더 마음에 들었어요.” 결국 선물은 서로를 얼마나 세심하게 떠올렸는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요즘의 관계는 그렇게, 점점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다.
커플 룩이 관계의 성적표가 될 때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스웨그 갭(Swag Gap)’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커플 사이 미적 불균형, 즉 멋의 빈부격차를 가리키는 이 표현은, 한쪽만 과하게 신경 쓰고 다른 쪽은 무심할 때 생기는 괴리를 가볍게 짚어낸다. 이런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옷차림을 서로 상의하고, 누군가의 옷을 빌려 입는 작은 행동 하나가 예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옷은 종종 감정을 대신한다. <환승연애 4>를 연출한 김인하 PD는 현장에서도 이 변화를 느꼈다고 전한다. “생각보다 출연자들이 옷차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데이트를 앞둘 때면 ‘내일 어떤 옷을 입을지 상의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와요. 꼭 커플 룩이 아니더라도, 톤이나 무드를 맞추려는 시도는 분명히 보입니다.” 제작진이 별도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출연자들 스스로 옷차림을 하나의 신호처럼 다루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만남의 깊이에 따라 스타일링이 달라진다고.
“첫 데이트에서는 본인 취향보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쪽을 먼저 묻고 조율하려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서로 어떤 옷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까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쪽으로 바뀝니다. 그날 어떤 옷을 고르는지는 기분이나 상황과도 연결돼요. 살짝 가라앉은 날에는 편한 쪽을 택하고, 이야기를 오래 나눌 것 같을 때는 보다 신경 쓰죠.” 이렇게 보면 옷은 더 이상 꾸미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현재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표식에 가깝다. 그래서 커플 룩은 똑같이 맞춰 입는 데서 얼마나 비슷한 결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 된다. 김인하 PD는 이렇게 덧붙인다. “어떤 ‘옷’은 그냥 ‘옷’이 아니라, 특정 사람을 품고 있잖아요. 둘만 알기에 더 특별해지는 비밀 같은 거요.”
맞추기보다 조율하는 관계
‘스웨그 갭’이 없는 커플 룩을 요즘 문화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사실 언제나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영화 <귀여운 연인>에서 완벽한 데이트를 위해 스타일을 선물하는 리처드 기어처럼, 사랑은 오래전부터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진심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낭만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조금씩 밀어내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결국 커플 패션의 오래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나로 남으면서, 너와 함께할 수 있는가?’ 모델 이민지는 어딘지 묘하게 어울리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실제로 그는 젠더리스 콘셉트가 깔린 편집 매장이나 브랜드 쇼룸에서 연인과 쇼핑을 즐긴다. “해외 활동이 잦아 쉴 때 함께 쇼핑하는 게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차림새도 비슷한 분위기로 정리되더라고요. 상대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취향이 조금씩 스며드는 느낌이에요. 연애가 저를 바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불편하지는 않아요.” 이 연애에는 나름의 선도 있다.
이민지 커플은 기념일을 비교적 분명하게 챙기는 편. “특별한 날은 가능한 한 다 챙기려고 해요. 생일이나 디데이 같은 건 그냥 지나치지 않죠. 그날만큼은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선물을 고를 때도 그 사람을 꾸미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를 먼저 떠올려요. 그래서 이번에는 승진한 기념으로, 지금 생활에 도움이 될 물건을 생각하고 있어요. 애플 워치나 단정한 월렛 같은 것들요.”
2026년의 커플 아이템은 더 이상 완벽한 매칭이나 TPO의 정답이 아니라, 일상의 합주에 가깝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의 ‘2026 상반기 트렌드 리포트’는 다음 시즌 소비가 초개인화와 개인 맞춤형, 기능 중심으로 더욱 세분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커플들의 소비 역시 ‘우리에게 맞는 것’으로 이동 중이다. 이 흐름을 요즘 소비 트렌드의 키워드인 ‘미코노미(Me-conom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함께 있을 때 어색하지 않은 장면. 그래서 요즘의 커플 아이템은 더 이상 복제의 결과가 아니라, 나란히 놓인 선택의 합처럼 보인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커플들은 또 뭔가를 맞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전에 한 번쯤 ‘함께 있을 때 더 멋있어지는지, 또 편안한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의 하루를 상상하면서.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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