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신은 이제 양보다는 질이다. 각각의 개성과 취향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5곳의 빈티지 숍 이야기.

OTICOTI
부산에서 탄생해 서울에 갓 상륙한 오티코티. 대표 우상동은 1990년대 중후반 일본 스트리트 스타일이 아메리칸 캐주얼을 5% 비틀어 복각한 순간을 포착한다.
ADD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29길 39
빈티지를 사랑하게 된 시초를 기억하나?
부산 출신이라 ‘구제’와 ‘빈티지’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좋은 옷을 찾기 위해 발품 파는 행위가 영화나 책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부산 전포동에서 운영하다가 서울로 이전한 지 6개월 정도 됐다.
음악이 취향을 만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릴 적 힙합을 좋아했다. 가사 해석 커뮤니티와 잡지에서 뻗어나온 레퍼런스가 옷 취향으로 이어졌다. 미국 힙합 매거진 <더블 XL> 속 릴 웨인이 입고 있던 베이프가 기억난다. 동경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무드를 입게 된다.
오티코티의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메리칸 캐주얼과 일본 우라하라 스타일 사이의 미묘한 맛’. 1990년대 중후반 일본 스트리트 신이 아메리칸 캐주얼을 복각하고 응용하던 지점이 오티코티의 뼈대다. 과거의 제품에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이나 스트리트 스타일 아이템을 섞어 부조화 속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트러커 재킷 같은 아이템을 그대로 가져오되, 소소한 변주를 더한 방식이 좋다. 당시를 살던 이들도 ‘우리 스타일’이라 말할 수 있고, 지금 보는 사람도 멋있다고 느낄 균형점을 찾는다.
4주년 기념 굿즈로 발매한 ‘콘돔’ 스웨트 아이템이 눈길을 끈다.
미국 빈티지의 클리셰에 일본식 트위스트를 더할 때 ‘섹슈얼’ 무드도 곁들이고자 한다. ‘우라하라’ 스타일을 좋아하는 만큼 금단을 시각화하는 일본 특유의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고자 했다. 콘돔 박스를 제작해 포장했는데 결과는 예쁘게 실패했다. 판매 목적이라면 사람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취향껏 바잉했을 텐데, 아까워서 못 파는 제품도 있나?
들여온 건 기본적으로 판다. ‘걸작’이라는 건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구하기 힘든 제품이라도 값을 몇 배 붙이면 팔린다는 생태계 특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팔지 못하는 제품은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오티코티의 취향과 미감을 지키려고 한다.

TATIL
북촌의 고요한 골목 사이, 한옥을 개조한 타틸이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와 빼닮은 김도희가 전개하는 여유로운 공간은 하이엔드 편집 숍 못지않은 미감을 자랑한다.
ADD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24
‘타틸’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나?
가게를 계약하고 나서부터 휴식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튀르키예어로 ‘휴가’를 뜻하는 단어, ‘타틸’이라고 지었다. 이름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곳이다.
빈티지에 끌린 이유가 궁금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에는 항상 잡지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일본 패션지를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중학생 때 일본 워크웨어 브랜드 ‘타임클로딩’의 대표인 케이 헤미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부터 일본 빈티지를 사랑하게 됐다.
한옥과 어우러지는 깨끗한 공간이 편집 숍을 방불케 한다.
한옥 안에서 브랜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많은 곳을 물색하다가, 트래픽이 적고 조용한 북촌이 타틸의 무드와 잘 맞았다. 시트지로 둘러싸여 있던 창문을 청소하고 통창으로 바꿔 햇살이 스며드는 공간을 완성했을 때 이곳이 내 세계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업하기 전까지 ‘코스(Cos)’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근무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제품 셀렉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로 예쁜 것만 고르고, 상태가 안 좋거나 핏이 애매한 상품은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도 취급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빈티지를 좋아하지만, 더럽고 낡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모두 손수 관리한다.
타틸만의 큐레이션은 어떤가?
숍에 들어서면 왼편에는 아메리칸 캐주얼과 웨스턴 무드, 바이크 문화의 일본 브랜드 위주로 꾸렸다. 반대편에는 1990~2000년대 일본 도쿄의 긴자와 오모테산도 스타일의 구조적이고 페미닌한 스타일로 가득하다. 인테리어도 우드 톤과 화이트, 두 가지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상반되는 무드가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타틸의 색깔인 셈.
타틸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매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타틸은 북촌에서도 한적한 안쪽 골목에 위치해 목적지로 정하고 오지 않으면 우연히 방문하기는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이곳의 감도를 알아채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관계가 타틸을 사람 냄새 나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NO BOUNDARIEZ
빈티지 문화와 장현석의 예술적 감각이 맞닿아 있는 노바운더리즈. 옷이 작품이 되고, 전시가 패션이 되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경계를 허문 복합공간이다.
ADD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42길 28-4 2층
노바운더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첫 시작은 전시였다. ‘경계가 없다’는 뜻 그대로, 장르와 스타일을 불문한 빈티지 아이템을 취급함은 물론 1년에 한 번씩 빈티지 전시를 진행한다.
전시를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
일본 빈티지 숍이 전시 형식으로 옷을 디스플레이하는 방식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빈티지를 해석하는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2023년 진행한 헬무트 랭 전시 프로젝트가 인상적이다. 어떤 전시였나?
운이 좋게 헬무트 랭의 데드스톡 350피스를 한 번에 구입하게 되었다. 이걸로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서, 25팀의 작가와 디자이너, 조각가 등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보내 각각의 작품으로 재해석하게 했다. 하나의 옷이 예술가의 안목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순간을 전시로 보여준 것이었다.
쇼룸 인테리어가 남다르다. 흔한 ‘빈티지 숍’ 같지 않은데.
공간 디자이너와 함께 공간을 꾸밀 때 ‘수집한 빈티지 가구 외에는 전부 만들자’ ‘금속만 사용하자’ ‘조립식으로 만들자’는 규칙을 정했다. 행어와 선반은 모두 모듈형으로 제작하고, 프리소 크라머, 베르너 팬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리오 보타의 쇼군 램프 등 차곡차곡 모아온 빈티지 가구를 더해 완성했다.
좋아하는 브랜드나 디자이너, 시즌이 있다면?
이름의 뜻처럼 취향을 정해두지 않는 편이다. 이제 뚜렷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단계는 넘어섰고, 디자이너가 고심해서 ‘잘’ 만든 옷은 다 좋다는 것이 결론이다. 옷은 단순한 판매용 물건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담긴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시 형식을 빌려 옷의 세계를 넓히고 싶은 것도 있고. 옷마다 쓰임과 때, 주인이 있다고 믿는다.


EGGKISU
엑기스는 평일엔 예약제로, 주말엔 한정된 시간만 문을 여는 작은 방이다. ‘티셔츠 수집가’ 신창환이 모은 티셔츠는 음악과 영화, 아트워크가 남긴 이야기의 증거물로 존재한다.
ADD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 1길 46
엑기스를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티셔츠 수집이 먼저였고, 그 취향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가 ‘엑기스’다. 3년 전부터 예약제로 손님을 받았다. 본업과 병행하기 때문에 운영 방식도 평일 예약제+주말 제한 오픈으로 정리되었다. 한정된 시간만 운영하기에 집중도가 높아지고, 손님과의 밀도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왜 하필 티셔츠인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인 데다 음악과 영화, 예술의 맥락을 가장 또렷하게 품는 옷이라서다. 그리고 한국의 여름이 갈수록 길어지면서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전략보다는 애정이 먼저였다.
정품과 가품의 판별법은?
프린팅 질, 라벨, 봉제 방식을 1차 관문으로 삼는다. 의심이 해소되면 2차로 아티스트 투어의 연도 같은 맥락을 확인한다. 오랜 기간 같은 분야를 파다 보면 육안과 촉감, 공정의 언어가 유효한 증거가 된다. 가끔 유통 경로보다 티셔츠 자체가 말해주는 단서가 더 강력하다.
가장 애착 가는 티셔츠는?
밴드 ‘라디오헤드’의 1993년 투어 티셔츠. 내 출생 연도와 겹친다는 개인적 연결고리, 훼손 없는 최고의 상태, 아트워크의 밸런스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현재 시세는 300만~400만원대로 형성되어 있지만 되도록이면 팔지 않고 소장하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중한 아이템이다.
빈티지 티셔츠를 관리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요즘 티셔츠와 같이 관리해도 된다고 말한다. 빈티지의 특성상 에이징에서 나오는 멋이 있기 때문. 다만 희소성과 가격을 고려해 세탁 주기를 늘리는 편을 권한다. 냄새가 날 때쯤 한 번 정도? 일본에서 들여오는 전용 세제도 추천하고 있다.


MAS COMANY
“넓고 얕아지는 순간, 모자가 많은 빈티지 숍밖에 안 된다.” 한 우물의 힘을 믿는 이승영과 이동관의 모자 이야기.
ADD 서울 마포구 독막로 12안길 25
모자 숍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빈티지의 매력은 희소성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모자는 같은 제품을 써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어 개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마스컴퍼니’ 이름의 탄생 비화가 궁금하다.
‘엄마와 아들’처럼 가까운 관계, 그리고 ‘모자’라는 아이템, 두 가지 뜻을 다 담을 수 있는 중의적 의미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맘 앤 선(Mom and Son)’의 앞 글자를 따고 하나의 회사로 성장하고 싶은 염원을 담아 ‘Company’를 붙였다.
모자만 취급할 때의 장단점은?
규모가 작아서 사업을 시작할 때 부담이 없었다. 사업 초기에는 작은 공간에서 패킹까지 직접 해결했다. 그리고 시즌 영향이 적다는 점. 의류는 재고에 대한 부담이 크기 마련인데, 모자는 트렌드 변화에 비교적 덜 민감하다. 그리고 빈티지 특성상 어떤 시즌의 아이템이라도 ‘뒤처졌다’는 느낌이 없다. 단점은 보여줄 수 있는 폭이 한정적인 것? 하지만 한정성이 오히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줬다.
바잉과 셀렉에도 기준이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직감’이다. 브랜드와 시즌, 명성 같은 건 차치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한다. 라벨 없는 모자가 명품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도 있다. 그리고 많게는 3000피스까지 가져올 때가 있는데, 모두 직접 써보고 착용감과 컨디션을 체크한 후 판매 기준에 적합한 제품만 고른다.
마스컴퍼니의 향후 계획은?
내부 기획과 외부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게토레이’의 러닝 이벤트 굿즈를 제작했고, 자체적으로 기획한 러닝 세션 이벤트도 진행했다. 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만든 모자를 맞춰 쓰고 한바탕 뛰는 거다. 결론적으로는 브랜드의 세계관을 풍성하게 하고 싶다. 빈티지 아이템과 자체 제작 상품까지 함께 선보이면서 취향과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 과거의 영화와 음료, 뮤지션 굿즈 같은 제품이 지금 회자되는 것처럼, 마스컴퍼니도 몇 년 후 아카이빙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
- 포토그래퍼
- 오은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