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뷰티 시장을 움직일 6가지 흐름과 키워드.

01 감각의 영역에서 정밀과학의 세계로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피부 진단의 혁명. 피부 겉면을 분석하던 기존의 카메라 기반 AI 진단을 넘어 피부 속 생체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었기 때문이다. 올 3월 출시를 앞둔 랑콤의 ‘셀 바이오프린트(Cell BioPrint)’가 바로 그것. 나노엔텍과 협업으로 만든 이 기기는 세계 최초의 랩온어칩(Lab-on-a-Chip) 기술을 적용해, 단 5분 만에 피부 속 단백질 분석을 마치고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한다. ‘셀 바이오프린트’의 핵심은 피부의 잠재적 노화 징후를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는 ‘선제적 스킨케어’ 시대가 열렸다는 데 있다. 기존의 AI 진단이 피부 겉면을 분석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피부 속까지 들여다보는 거다.
아모레퍼시픽의 ‘스킨사이트(Skinsight)’는 초박형 센서 패치를 통해 미세한 피부 움직임을 감지하고 주름 발생 위치까지 예측한다. 이는 초개인화 진단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에서 ‘2026 뷰티 테크 분야 혁신상’을 받았다. 또 연구와 생산의 지능화도 가속화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제품 개발 단계에서 피부 자극 반응을 판독하는 AI 모델을 독자 개발한 것. 이로 인해 전문가의 육안 평가보다 높은 정확도와 안전성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한 셈이다. 한국콜마도 ‘AI 팩토리’를 통해 자동화를 넘어 자율화 제조 현상을 실현했다. AI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공정을 최적화하는 이 시스템은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세분화된 소비자 니즈에 맞춘 다품종 소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뷰티, 특히 피부는 감각의 영역을 넘어 철저한 데이터 기반의 ‘정밀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의 미세한 생체 신호를 포착하는 정밀진단과 이를 오차 없이 제품으로 구현하는 자율 제조공정의 결합. 데이터로 완성되는 디지털 두뇌를 가진 뷰티의 시대가 도래했다.
02 데이터가 채울 수 없는 온기
기술과 AI가 뷰티산업 깊숙이 스며들수록, 소비자는 더욱 ‘인간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최근 몇몇 브랜드의 AI 모델 기용으로 뭇매를 맞은 사건은 대중이 ‘매끈한 가짜’보다 ‘불완전한 진짜’를 신뢰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브가 “AI로 실제 여성을 대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심은 기술과 인간의 조화, ‘피지털(Phygital)’에 달렸다. AI 두피 진단 이후 아티스트가 맞춤형 메이크업을 시연하는 시코르와 AI 데이터에 전문 스타일리스트의 감성을 더해 제안하는 일본 조조타운이 대표적인 예. 소비자는 AI의 정밀한 분석에 전문가의 따뜻한 조언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지갑을 연다. 기술은 도구일 뿐 브랜드의 얼굴이 될 수는 없다. 기술로 분석하고, 사람으로 완성할 것. 이것이 다가올 뷰티 시장의 성공 방정식이다.

03 고효율 성분의 스마트 스키니멀리즘
복잡한 뷰티 루틴에 저항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절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스마트 스키니멀리즘’은 효능이 확실한 소수의 제품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는 똑똑한 투자를 말한다. 소비자는 화려한 패키지나 모호한 마케팅 문구 대신 브랜드의 투명한 의도와 확실한 성분 정보를 원한다. 이에 많은 브랜드의 R&D 파트에서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효율 성분과 첨단 전달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다. 포뮬러는 간소화하고 효능은 극대화해 단 하나의 제품으로도 여러 피부 고민을 해결하는 ‘한 방’을 갖춰야 한다는 것. 대표 주자로는 ‘하이포클로로스애시드(HOCI)’가 있다. 인체 백혈구가 유해 세균을 제거할 때 생성하는 면역 물질을 모방한 성분으로, 트러블 진정과 습진 완화, 장벽 보호를 한 번에 해결한다. 극한 환경에서 미생물을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엑토인(Ectoin)’ 역시 주목할 성분. 수분과 결합해 강력한 보호막을 형성하고, 보습과 항염, 노화 방지까지 책임지는 ‘올인원’ 고효율 성분이다. 명확한 성분 공개와 압도적 기능성을 통해 번거롭고 복잡한 루틴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고 여러 제품을 덧바르는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04 뷰티가 웰니스를 만났을 때
‘바르는 뷰티’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화장품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 안에서부터 관리하는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름하여 ‘메타볼릭 뷰티(Metabolic Beauty)’의 시대. ‘장-피부 축(Gut-Skin Axis)’ 이론을 필두로 장내 미생물 균형이 피부 건강과 직결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먹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차세대 스킨케어의 필수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피부가 ‘제3의 뇌’로 기능하며 비타민 A, C, E 같은 영양소가 보충제를 넘어 피부 세포를 깨우는 필수 연료로 재조명받는다. 스트레스와 수면 관리도 피부 관리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며 멘탈 케어 카테고리까지 확장되는 중이다. 아름다움은 화장대 위가 아닌, 면역과 신진대사라는 몸의 시스템 속에서 완성된다. 뷰티가 곧 웰니스인 세상에서 브랜드는 제품뿐 아니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까지 제안해야 한다.

05 ‘느껴야’ 산다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결정적 순간은 복잡한 효능 데이터를 읽을 때가 아니라 매혹적인 향기와 손끝에 닿는 텍스처에 매료되는 찰나다. 디지털 피로도가 극에 달한 현대인에게 스킨케어는 단순한 세안이나 보습 행위가 아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치유의 의식이다. 그래서일까? 소비자는 무의식적으로 감정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 패키지를 열 때 나는 경쾌한 소리(청각), 피부에 닿는 온열감이나 쿨링감(촉각), 은은하게 퍼지는 아로마(후각) 등은 뇌의 도파민을 자극해 ‘이 제품을 쓸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정서적 연결고리를 만든다.
특히 ‘헤어 케어’와 ‘홈 스파’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샴푸와 토닉의 목적은 세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멘톨 성분이 주는 짜릿한 쿨링감과 고급 향수 못지않은 향은 두피의 열을 내리는 동시에 스트레스로 달궈진 머리를 식혀주는 정서적 리프레시 도구가 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주에서 론칭한 웰니스 라인은 ‘티백 입욕제’라는 독창적 형태를 선보였다. 따뜻한 물에 티백을 우려내는 시각적 재미와 허브 향이 고급 호텔 스파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오프라인도 예외는 아니다. 매장은 브랜드를 온몸으로 느끼는 거대한 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그저 제품을 진열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게이미피케이(Gamification)’이 된 셈. 메디큐브는 뉴욕 팝업에서 뷰티 디바이스의 기능을 설명서 대신 게임으로 풀어냈다. 아모레성수의 바이탈뷰티 팝업은 제품 원료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제공하며 미각을 자극했고, 파파레서피는 고객이 직접 원료를 수확하는 ‘파밍존’을 운영하며 흙을 만지고 향을 맡는 원초적 체험을 누리게 했다. 이제 제품만 잘 만들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정교하게 설계해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감각의 힘으로 바꿔야 경쟁력일 높일 수 있다.
06 K-뷰티 대항해시대
전 세계를 사로잡은 K-뷰티 열풍이 올해도 그 기세를 이어간다. 한류 스타에 기대어 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1.0 시대, 디지털 마케팅을 통한 온라인 확산 중심의 2.0 시대와 달리, 초격차 기술과 다각화된 시장을 무기로 글로벌 뷰티의 새로운 표준을 정립한 3.0 시대에 도달했다. ‘가성비’와 ‘중국 의존’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고, 인디 브랜드를 필두로 뻗어가는 K-뷰티는 독보적 ODM 인프라를 등에 업은 채 트렌드를 제품화하는 속도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압도한다. 게다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채널을 넘어 미국의 세포라와 얼타, 유럽의 부츠 등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했다. 글로벌 소비자가 K-뷰티에 요구하는 건 확실한 효능과 진정성이다. 성분 하나하나를 따지는 ‘스킨텔렉추얼(Skintellectual)’ 소비자에 맞춰, K-뷰티는 감성적 스토리를 넘어 임상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하나의 ‘뷰티 테크’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종이 튜브, 생분해성 플라스틱, 리필 스테이션 등 혁신적 패키징 기술도 눈에 띈다. 한국콜마 같은 제조사에서 개발한 친환경 용기는 글로벌 브랜드가 먼저 찾는 기술로 각광받는다. 화해, 실리콘투 등의 플랫폼은 전 세계 소비자의 리뷰와 검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어떤 성분이 뜨고 있는지, 어떤 제형이 불만인지를 나노 단위로 파악하고 제품 개발에 즉각 반영한다. 데이터 시스템이야말로 실패율을 줄이고 타율을 높여 K-뷰티가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비법 중 하나. 더 이상 K-뷰티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 그리고 중동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26년의 K-뷰티 영토는 어느 때보다 넓고 견고하다. 소비를 넘어 뷰티가 제시하는 기준을 따르는 시대. 우리가 마주한 K-뷰티의 현주소다.
- 포토그래퍼
- KEVIN DRELON
- 모델
- INDIA TUERSLEY, AMI DUGGAN
- 스타일리스트
- SHALEV LAVAN
- 헤어
- LISA-MARIE POWELL
- 메이크업
- DARIAN DARLING
- 네일
- BRITNEY TOKY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