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피부 불로장생’의 미래
실현 가능한 과학, 아니면 새로운 세기의 신화? 당신의 매일에 좌표를 띄운 불로장생 프로젝트, ‘롱제비티’에 대하여.

거대 금융 기업의 회장 강노식이 거리의 화가 민희도의 몸에 뇌를 이식하며 영생의 젊음을 탐하는 영화, <더 게임>. 이 기괴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불로장생이 욕심 많고 부도덕한 약탈,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약 20년이 흐른 지금, 롱제비티(Longevity)는 더 이상 공상의 영역이 아님을 체감한다.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나이를 거슬러 신체와 뇌를 리셋하려는 대표 바이오해커다. 그의 유튜브에 자주 등장하는 슬로건은 ‘Don’t Die’! “우리는 죽지 않을 첫 세대”라는 공언이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사실 이는 노화 생물학의 권위자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박사 데이비드 싱클레어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노화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존슨은 고압 산소실과 사우나를 드나들고 라이트 테라피를 받으며, 강력한 항산화 성분으로 알려진 메트포르민, 라파마이신 등 영양제 40여 개를 매일 챙겨 먹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8시 30분에 잠자리에 드는 루틴을 반복하거나, 한때는 오전 11시 이전에 2250kcal의 비건 식단을 먹는 것으로 하루의 식사를 마치는 실험도 했다. 급기야 2023년에는 10대 아들의 혈장을 자신에게 수혈까지 했을 정도다.
‘프로젝트 블루프린트(Project Blueprint)’라 불리는 이 롱제비티 프로토콜은 생체실험을 통해 수치로 검증되며 결과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경, 업데이트돼왔다. 그 결과 올해 48세인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심장 37세, 폐활량 18세, 피부 28세! 내부 장기 사정이야 크로스체크하기 어렵지만, 그의 외모가 중년이 아닌 것만은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그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필수 프로토콜로 강조하는 것 중에는 기초적인,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피부 관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습과 자외선 차단 같은 우리도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기본’ 말이다.
늙는다는 건 뭘까? 노화는 몸이 염증에 서서히 잠식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 쉬고, 먹고, 생각하고, 걷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활성산소가 발생하고, 스트레스와 건조, 자외선 같은 자극이 가해지면 피부는 염증 생산 공장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처리 능력을 넘어선 염증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급기야 뇌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 오죽하면 K-피부 석학, 서울대 정진호 명예교수가 ‘자외선 차단제는 뇌 보호제, 보습 크림은 뇌 영양제’라 칭했겠는가! 정신이 번쩍 드는 예가 하나 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피부과 마오치앙 맨 박사의 실험은 화장품이 몸 전체의 저속 노화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맨 박사 연구팀은 중국 북부 도시의 65세 이상 참가자 2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집단만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하루 두 번 장벽 크림을 바르게 했다. 장장 3년에 걸쳐 진행한 추적 연구 결과는 가히 충격적! 건조한 계절에 보습을 충분히 한 사람들은 염증성 화학물질의 수치도 낮고 뇌의 인지 기능 역시 그대로 유지됐지만, 건조함을 방치한 비교군의 인지 기능은 빠르게 저하했다. 이제 화장품이 좀 달리 보이나? 피부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지라 홀대하면 그만큼 많은 염증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간헐적으로 받는 고가의 페이스 리프팅 시술보다 매일 전신에 사용하는 저가 보디 로션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롱제비티 해법일지 모른다.
물론 화장품 과학자의 노력이 보습과 보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지금 그들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슬로에이징에 도전하는 중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경주에서 열린 APEC 한중 선물 교환식,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장품이 있었다. ‘영양 크림’이라 통역됐고, 시진핑 주석이 “여성용이냐?”고 되물은 크림의 정체는 더후의 환유고. 무려 80만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크림으로 일찌감치 LG생활건강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후문이 돈 제품이다.
LG생활건강 R&D센터 강내규 CTO는 환유고를 “최신 스킨 롱제비티 기술인 세노테라피, 즉 세포 노화 치료에서 영감 받아 탄생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리버스에이징의 핵심 성분은 산삼 진세노사이트! 30년 이상 자생하는 산삼의 생명력을 집약시켰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K-스킨 롱제비티 연구의 양대 산맥, 설화수 역시 삼에서 불로의 비밀을 찾는다. 윤조, 자음생, 진설 등 설화수 라인 대부분이 인삼을 주원료로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R&I 센터 최소웅 책임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장수 효능이 알려진 소재, 고려인삼의 효능은 현대적 바이오 연구의 관점에서 분석해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저속 노화 솔루션이라고 설명한다.
“한방에서 얘기하는 ‘불로장생(不老長生)’과 ‘연년익수(延年益壽)’라는 개념은 롱제비티 연구 트렌드와 상통합니다. 요즘은 특정 성분 하나를 내세우기보다 노화의 인자를 통합적으로 연구해 보다 근본적 원인을 공략하려 하니까요. 세포 단위의 회복과 재생을 추구하는 거죠.” 엑소좀 역시 노화된 피부의 기능 그 자체에 주목해 찾아낸 단서다.
JOD랩 김민경 소장은 엑소좀을 메신저에 비유한다. “세포가 분비하는 나노 단위의 소포체로 세포 간에 유전자, 단백질, RNA 등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피부가 노화해 세포 간 신호 전달력이 약해졌을 때 엑소좀을 활용하면 소통을 도와 피부 재생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피부 진단도 진일보하고 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랑콤이 최초 공개한 뷰티 테크, 셀 바이오프린트는 한마디로 레벨이 다르다. 한국의 스타트업 나노엔텍과 함께 개발한 어메이징한 피부 진단기에는 휴대용 ‘랩-온-어-칩’이 장착되어 마치 내 피부 단백질을 채취해 실험실에 보낸 듯 상세히 분석해준다. 단 5분이면 생물학적 나이, 잠재적 피부 문제, 내게 필요한 맞춤 제품 등을 분석, 추천받을 수 있다. 그동안 접해온 이미지 기반의 분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개인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 <비바테크 2025>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부스를 방문할 정도로 크게 주목받았다. 시제품은 데모 테스트를 마친 내년 봄이면 당신의 화장대에서도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롱제비티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에 방점이 있다. 어차피 늘어난 수명, 눈감는 그날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경우 바르게 사고하며 서바이벌하기 위해 일상을 저속 노화 모드로 전환하자. 시간을 살 돈이 없어도 괜찮다. 억만장자 바이오해커의 하루와 우리 일상의 교집합은 이미 많으니까. 잠자기 2시간 전부터는 블루라이트를 멀리하고, 미세플라스틱과 인스턴트식품을 경계하며, 피부를 소중히 하는 브라이언 존슨의 프로토콜은 주머니가 가벼워도, 누구나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롱제비티 라이프는 좋은 것을 더하기에 앞서, 나쁜 것을 덜어내는 것에서 출발하니 차근차근 쉬운 것부터 지켜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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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백지수
- 일러스트레이터
- JIŘÍ MACKŮ
- 도움말
- 강내규(LG생활건강 R&D센터 CTO), 최소웅(아모레퍼시픽 R&I 센터 책임연구원), 김민경(JOD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