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은중과 상연>을 한창 찍고 있었고, 그 때문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말했죠. 그사이 <히든페이스>까지 두 작품이 공개됐어요.
맞아요! 지금도 촬영 중이지만요.
매일 촬영 중이고 오늘 딱 하루 휴일이라면서요.
화보는 즐기는 작업이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지금 쉬는 거예요!(웃음)
지금 12월호를 촬영하는데, 이제는 달과 해의 경계가 별로 없죠?
달의 경계도 별로 없고, 날짜나 요일의 경계도 거의 없고 작품의 경계만 남은 거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가치관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니 그걸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배우 일을 하다 보니 잊고 지낼 때가 많아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게 되었어요.
올해 영화로도, <은중과 상연>으로도 사랑받았죠. 요즘 드라마 대부분이 짧은데, 15회까지 이어졌어요. 모처럼 긴 흐름으로 연기하는 건 어땠나요?
요새는 12부작, 8부작, 6부작도 많으니까요. 시간의 흐름대로 촬영하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20대, 30대, 40대를 표현할 때마다 약간의 텀이 있었어요. 한 1~2주씩 다시 준비할 시간을 줬어요. 그래서 하나, 하나, 하나. 영화 세 편을 찍는 기분이 들었어요.
공개 후 두 달 정도 흘렀는데, 다시 들춰보니 어때요?
제겐 아주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웃음) 이 얘기를 항상 하게 돼요. 확실한 건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제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어요. 긍정적인 의미로요.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더 좋아진 것 같고, 좋은 영향을 듬뿍 받았죠. 귀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할까요? ‘진심으로 성장했구나’를 느껴요. 제가 이제 막 큰 타이틀과 역할을 맡기 시작했을 때 만난 작품인데, 중요한 시기에 저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준 작품이에요.
‘귀인’이라는 표현이 좋네요. 귀한 사람들.
정말 귀인들. 고은 선배님이랑 조영민 감독님, 송혜진 작가님, 함께한 모든 배우분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많은 것 같아요. 그건 정말 제가 타고났어요.
그 귀인들에게도 지현 씨의 마음을 전했나요?
자주 전해요. 말로도, 선물로도. 고은(김고은) 언니가 저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불러요. 고은 언니가 너무 어려워요. 다른 사람은 필요한 게 보이는데, 언니는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너무 완벽해 보여요. “일단 다 준비했어. 언니가 골라줘.” 이렇게 되는 거죠.(웃음) 언니는 항상 그래요. “뭘 또 이런 걸 갖고 왔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면 생각을 하고 세심하게 관찰을 해야 하죠.
그런 사소한 센스는 좀 있어요. 막상 사려고 하면 놓치는데, 남이 주면 “어? 이거 좋다”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걸 쓱쓱 챙겨주는 걸 좋아해요.
거꾸로 지현 씨는 뭘 받고 싶어요? 지금 놓치고 있는 건 뭔가요?
뭐든 가능한가요? ‘시간’요. 요새 진짜 열심히 살거든요. 매일매일이 너무 재밌어요. 잠자는 게 아까워서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집 안에만 있고, 촬영 아니면 집 밖에 안 나갔거든요. 요새 많이 바뀌었어요. 촬영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틈을 내서 뭔가 더 하려고 해요. 원래의 저였으면 이런 장소에 올 때도 후드티에 기모 바지 입고 왔을 것 같은데.
하하, 지난번 촬영 때 그렇게 왔어요. 그런데 오늘은 너무 예쁘게 입고 와서 아까 제가 화보 촬영할 옷을 벌써 입고 왔느냐고 했죠.
그러니까요! 요새는 아니에요. 화보 촬영이 끝나면 저녁에 뭘 할지 좀 설레요. 워낙 즉흥적이라 누굴 만날지 뭘 할지 모르겠지만,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입고 왔어요
보통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휴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하고 싶은 게 많아서’라는 건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거죠.
맞아요. 보고 싶은 콘텐츠도 수두룩하고. 요즘 ‘맑눈광’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어요.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삶의 소소한 변화. 근데 그게 저를 변화하게 만드는 거죠.
<은중과 상연>을 보면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돼요. 이런 작품은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변화할 수 있어요.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환생하듯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작품을 하면서 삶이 정말 감사하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진적으로 생겨났어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오늘 하루 더 열심히,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싶어요.
작품 안에서 죽을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여주’가 죽으면 사람들이 슬퍼하거든요.
근데 슬픔의 감정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은 다 죽으니까요. 이런 말 하면 또 그런가.(웃음) 제가 요새 그런 걸 느꼈어요. 가끔은 제가 뱉는 말이,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데, 남들이 봤을 때는 현실 감각 없는 몽상가라고 느껴지겠구나. 자기 객관화가 조금 되는 것도 같고요.
몽상가가 어때서요. 계속 꿈꿀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요?
저는 좋아요. 하지만 남들 눈에는 현실 감각이 별로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특히 이 작품은 많은 여성이 몰입하는 작품이에요. 그 얘기를 자주 하죠. 모두에게는 ‘은중’도 있고, ‘상연’도 있다고.
두 캐릭터 다 조금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은중이처럼 마냥 착하고, 감내하는 인물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상연이처럼 마냥 그렇게 솔직하고, 상처받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인물이 과연 있을까? 인간은 그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때는 은중이 같고, 다른 때는 상연이 같은 모습이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나오지 않을까요? 저희 드라마는 그걸 두 캐릭터로 나눠서 표현한 거죠. 항상 내면의 갈등을 겪잖아요. 선과 악의 갈등이 있듯이. 해야 해, 안 해야 해, 하지 마, 해도 돼 같은 갈등이 있듯이. 그걸 두 인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어요.
스스로를 돌아본 적도 있나요?
나도 누군가에게 은중이었던 적이 있고 상연이었던 적이 있지 않나. “너는 은중에 가까워, 상연에 가까워?”라고 했을 때, 저는 은중도 아니고 상연도 아니고 둘 다 공존하는 것 같았거든요. 때마다 상연의 모습이, 은중의 모습이 나올 때가 있다고.
이 작품은 ‘질투’라는 감정도 깊게 들여다보죠. 이기고 진다는 표현을 쓸만큼 서로를 정말 부러워해요.
부러움과 시기, 질투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부러움이 되고 원동력이 돼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시기가 되는 것 같아요. 상연이 입장에서는 공부로는 이기고 지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상연이 입장에서 이기고 지는 기준은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이 작품은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하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작품이 많지 않아요. 지금 인터뷰를 하듯, 오디언스도 서로 얘기를 나눠요. 상연에 대한 여러 반응도 지켜봤나요?
그런 점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청자분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상연의 상황을 납득할 수 있도록 연민을 느끼게 하려고 표현한 것도 있었어요. 그래야지만 상연이라는 캐릭터가 이해되니까요. 상연이를 이해하시는 분들도, 비난하시는 분들도 저는 이해돼요. 받아들이는 건 보시는 분들의 몫이니까. 거기까지가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돌아간다면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있어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감독님이 오케이하시면 그 신의 대사를 다 보내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적으로 믿어버리는 것 같아요.
조영민 감독과 두 번째 만남인데, 결국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하 <브람스>)에서 여기까지 왔네요. <브람스> 배우분들의 영역도 커졌고요.
배우들이 운 좋게 감독님을 만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정말 좋으세요.
개인적으로는 <은중과 상연>에 제 책 <그림과 문장들>이 클로즈업되어 나와서 재미있었습니다. 14회 프리든 팸플릿 옆에 있던 책이에요.
어머, 정말요? 혹시 제가 둔 건 아닌가?(웃음) 그런데 모든 건 다 계산해서 나온 거예요. 그만큼 감독님부터 팀 모두 디테일까지 꼼꼼한 현장이었거든요. 뭐든지 이유가 있었고 그냥 두고, 그냥 나온 건 없었어요.
쉴 새 없이 촬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작품 선택이 좀 쉬워졌나요?
더 어려워졌어요. 예전에는 저를 선택해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했다면, 이제는 제가 어떤 작품을 할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다 하고 싶은 거예요.(웃음) 좋은 글과 좋은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 다 하고 싶어요. 몸이 10개면 좋겠어요. 근데 그중의 하나를 해야 하니 그게 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 <내일도 출근>을 찍고 있군요? 드디어 ‘로코’를!
드디어! 서인국 선배님이랑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어요. 선배님이 너무 잘 살리세요.
예전부터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했죠. 지현 씨, 재미있잖아요.
<와일드 씽>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그것도 내년에는 공개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과감하게 코미디 연기를 한 작품이라 기대돼요. <와일드 씽>에서의 코미디는 약간 망가지는 거였다면, <내일도 출근>은 더 사랑스러운 코미디예요. ‘칼출근 칼퇴근’ 요정이던 제가 직장 상사인 서인국 선배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 재미있게 찍고 있어요.
이제 좀 작품 안에서 사랑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어요?
맞습니다. 남의 남자 뺏고, 내 남자 버리고. 이런 걸 많이 했어요. <내일도 출근>에서 드디어, 제 남자를 찾았습니다.(웃음)
지난번에 지현 씨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라고 했는데, 동일해요?
그게 또 ‘시간’이지 않나.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자유, 그걸 위한 시간. 비슷한 맥락인데 책임을 동반한 자유인 것 같아요. 요새는 좀 더 책임감을 느껴요. 자유롭기만 하다면 연기를 할 수가 없잖아요.(웃음)
- 포토그래퍼
- 고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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