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의 근황을 유튜브 <요정재형>을 통해 공개했어요. 스케줄이 쉴 틈 없이 이어졌는데, 지금은 좀 어때요?
아주 바쁜 건 정리된 상태입니다. BGM 작업은 끝났고, OST 발매를 앞두고 있는데 마무리가 좀 남았어요.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에 BGM 250곡, OST 3곡을 모두 작업하신 거죠?
맞습니다, 모두! 그게 최소예요. 자투리로 들어간 것까지 치면, 그 양은 더 많죠.
작품의 음악 이야기 전,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처음 도전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하 <히어로>) 이후 어떻게 다시 이 작업에 닿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히어로> 이후 여러 작품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전부 고사했어요. 작업 과정에서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겪고 나니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김부장> 역시 시나리오가 정말 매력적이었고, 주인공의 나이대가 저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끌렸지만 물리적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어 고사했고요. 그럼에도 저를 포기하지 않은 조현탁 감독님과 주변인의 설득에 ‘음악감독으로서 커리어를 한 번 더 단단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네, 그렇게 됐네요.
전시·대중·클래식·영화 음악 등을 했지만 드라마 음악은 유독 다르죠?
어휴, 양이, 양이. <히어로>를 할 때는 드라마 음악의 물량에 대한 이해가 없어, 한 편 한 편 다 영화처럼 접근한 게 문제였어요.
덕분에 시청자로서는 드라마를 통해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낙수(류승룡 분)가 25년 다닌 회사에서 버림받을 때 부드럽고 경쾌한 음악이 깔린다든가 할 때요.
맞아요. 그 장면에서 ‘따리 딴 띠란 띠라 띠란띠라~’ 왈츠풍으로 작곡한 클라리넷 솔로가 나오죠. 저는 <김부장>의 이야기가 특정 세대와 성별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이야기기도 하고요. 갈등이나 상황보다 중요한 건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낙수의 감정이었죠. 그래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씁쓸한 감정을 낙수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전형적인 슬픔이 아닌 방식으로요. <히어로>에서 슬픔이 심연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의 슬픔은 역설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꺽꺽 우는 슬픔을 배가하기보다 오히려 경쾌하게 가자 싶었죠. 낙수의 슬픔에 ‘이놈의 인생!’이 아닌 ‘괜찮아’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BGM의 재료로 왈츠를 가장 크게 활용했어요.
왜 왈츠였나요?
우리가 짊어진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왈츠를 생각하면 3박자의 경쾌한 곡이 떠오르잖아요. 행진곡에서도 영감을 받아 내가 풀어낼 수 있는 현대적 왈츠를 풀어냈어요. 이 역설적 방식을 재료화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명연기 덕이라는 사실을 꼭 얘기하고 싶어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걸어가리라’라는 응원이었네요?
네, 우즈 씨가 부른 OST의 가사 중 ‘나 그대의 행진곡 되어 줄게요 함께’라는 구절이 있어요. 아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버지를 향한 곡인데 가사를 제가 썼어요. 이 시대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칭(Marching)’의 자세가 아닐까 싶거든요.
작품을 향한 이렇게 밀도 깊은 애정은 어떻게 점화되나요?
수백 명이 각자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 얼마나 숭고해요. 그 가치를 알기에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저 역시 한 명의 스태프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함께하기에 책임감도 더 크고요. 두 번째 작품이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저를 더 몰아붙이기도 했어요.
조심스럽지만, 다음 음악에 대한 계획은….
당분간 작업과는 거리가 필요해요. 너무 많은 작업을 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항상성이 떨어진 상태거든요. 머리도 엄청 빠졌어요. 음악이 새롭게 느껴지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한데 1년을 너무 가깝게 지냈어요. 익숙함에 능숙해지면 안 되거든요. 당분간 몸을 좀 회복하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까 해요.
그래도 좋은 음악은 계속 찾아 들으시죠?
음악을 또 좋아하기는 하니까. 정말 더는 음악을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싶었는데, 최근 짧게 다녀온 여행에서 계속 음악을 듣게 되기는 하더라고요.
요즘 순수하게 듣고 즐기는 음악은 뭔가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들은 건 리아 우양 루슬리(Lia Ouyang Rusli)예요. 에바 빅터(Eva Victor) 감독의 영화 <쏘리, 베이비(Sorry, Baby)>의 음악을 작업했는데, 요즘은 이 친구에게 푹 빠졌어요. 칼리 우치스(Kali Uchis)의 앨범도 자주 들었고, 크루앙빈(Khruangbin)도 오래 듣고 있는 아티스트예요.
2025년 1월 1일에 이렇게 많은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리라 예상했나요?
조금은 예상했어요. 매체가 다양해지는 걸 느끼면서 저 역시 확장이 필요한 시기라생각했거든요. 2025년을 맞이할 때, 2024년에는 유튜브 채널을 단단히 하려고 그 생태계에서 주로 활동했으니 올해는 다른 매체와 상호작용하기를 바랐고요. 여러 활동을 통해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브랜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숨어 있기보다 대외적으로 나서면 유튜브 채널에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유튜브를 위한 일이었다니 놀랍네요. 처음 채널을 시작할 때도 이렇게 열심히 할 줄 알았어요?
몰랐죠. 의도를 갖고 원하는 색을 낼 수 있고, ‘요작진’과 될 때까지 만들어보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고요.
유튜브 초반과 지금까지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시작할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누구도 해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였어요. 편집은 정직하게, 무해해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 전략이 통했네요! 많은 이들이 <요정재형>의 무해함을 사랑하잖아요.
사실 그 지점이 유튜브를 하면서 놀란 부분이에요. 세상이 얼마나 힘들면 이 콘텐츠가 이렇게 무해하다고 얘기하고 좋아해줄까 싶더라고요. ‘혐오의 시대’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요즘 더 느끼는 것 같아요. 뉴스에도 우리가 서로 미워하는 것이나 사건의 극단적 부분이 조명되는 경우가 많고요. 제 세대는 이토록 혐오의 말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처음 살아보거든요. 그래서 나이 들수록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것 같아요. 어쩌면 이게 <김부장>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그걸 전해보자.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어요.
토크, 음악, 한 편의 수업 교재 같았던 작업기까지. 콘텐츠는 어디까지 확장할 계획인가요?
작업기는 드라마 음악 작업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낮은 걸 보고 만들게 된 거예요. <김부장> 쫑파티에서 한 배우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니‘어머, 감독님 저를 아세요?’라며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소리야, 내가 촬영·편집본을 몇 번을 보는데!’라고 했거든요. 저희는 작업하면서 계속 보니까요. 이 세계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직접 만들게 됐죠. 사실 조회수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과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얘기와 함께 많이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이건 특이한 케이스였지만, 앞으로 <요정재형>은 계속 변화할 거예요. 저와 ‘요작진’은 치열하게 얘기하며 끊임없이 개편해왔어요. 2026년에는 채널을 보다 단단하게 다지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계획도 준비 중이에요.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선을 지키는 게 정재형식 콘텐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선은 어떻게 찾나요?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불후의 명곡>을 8년 했어요. 그 밖에 여러 예능에서도 MC로 참여했고요.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마음고생이 심할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있어 지금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거예요. 제 친구 엄정화의 명언 중 ‘과거의 시간은 아무것도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 걔가 정확해요!
팁 좀 알려주세요. 동시대적 감각을 그토록 탁월하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팁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대화를 많이 해요. (강)민경이, 20대를 막 벗어난 우리 매니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요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최대한 들으려고 해요.
음악과 유튜브 모두 창작의 영역에서 정재형을 뜨겁게 하는 것 같네요. 제작자 입장에서 두 콘텐츠의 매력은 어떻게 다른가요?
유튜브에서는 동시대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요정재형>은 새롭고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걸 정재형의 취향으로 보여준다면, 음악은 완전히 전문 분야예요. 저라는 사람이 쌓아온 예술성이 필요한 분야죠.
공공의 영역에 있는 대중성과 지극히 사적인 예술성. 양극단을 좇을 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뭔가요?
두루두루 다 필요하죠.(웃음) 인생이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거든요. 음, 그래도 살면서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건 새로움, 끊임없이 덜어내려 하는 건 익숙함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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