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이후 단 한번도 베스트셀러를 놓친 적 없는 전설의 뷰티템에 대해

유명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트렌드의 파도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철학을 굳건히 실현해온 뷰티템 이야기.

(왼쪽 위부터) 시슬리의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어드밴스드 포뮬라 2025 리미티드 에디션 125ml 36만원.
샤넬 뷰티의 N°5 EDP 100ml 28만4천원. 라 메르의 크렘 드 라 메르 30ml 32만2천원.
에스티 로더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멀티-리커버리 콤플렉스 50ml 20만원.
라프레리의 스킨 캐비아 리퀴드 리프트 50ml 1백9만3천원대.
겔랑의 메테오리트 라이트 리빌링 펄 오브 파우더 #02 쿨 / 로제 20g 10만2천원대.
엘리자베스아덴의 어드밴스드 세라마이드 캡슐 데일리 유스 리스토어링 세럼 60캡슐 13만원.
SK-II의 피테라™ 에센스 230ml 27만9천원.

오래가는 브랜드의 진짜 비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뷰티 브랜드가 탄생한다. 동시에 론칭한 브랜드의 수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브랜드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도 부지기수. K-뷰티에선 더욱 흔한 일이다. 매달 수십 개, 매년 수백 개의 제품을 받아 테스트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최근 출시된 제품 중 기억에 남는 제품이 손에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이유 없는 키워드만 내세워서인데, 이를 타개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비슷한 제품 가운데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콘셉트 도출과 색다른 카테고리 포지셔닝을 넘어 브랜드의 토대가 될 철학을 갖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뷰티 브랜드에 있어 철학은 피부 표피 밑 진피층과 같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층이 건강해야만 오랜 시간 빛을 볼 수 있다. 매일 변화하는 트렌드와 신제품 포화 속에서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철학’ 때문이다. 브랜드의 철학은 일종의 약속이다. 브랜드가 믿는 아름다움의 방식이자 본인이 제품을 만든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답. 다시 말해 브랜드의 철학은 제품의 정체성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기능을 뛰어넘어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소비자에게 기억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좋은 제품에 그치지 않고 상징적인 제품으로 오랜 시간 기억되는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면 브랜드의 철학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변하지 않기에 빛나는 이름들

대표적 예가 바로 SK-II의 피테라™ 에센스다. 45년 동안 단 한 번의 리뉴얼 없이 사랑받은 이유를 SK-II 오혜지 매니저는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좋은 건 변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으로 변치 않는 성분과 효능을 담아 한결같은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1987년 탄생한 일명 ‘구슬 파우더’, 어떤 브랜드도 흉내 낼 수 없는 겔랑만의 정체성을 담은 메테오리트 파우더도 좋은 예다. 겔랑 교육팀 주화영 트레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브랜드 초기의 클래식한 디자인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패키지에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파우더의 기능과 품질은 변함없이 그대로라고.

브랜드가 자신을 믿는 법

“미라클 브로스™의 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모든 제품 속에 담겨 있어요. 단순한 성분을 넘어, 브랜드가 세대를 넘어 고객과 신뢰를 쌓아온 근간이 되었죠.” 라 메르 정채림 마케터는 시그너처 발효 과정과 바다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중을 실천하는 ‘블루 하트 캠페인’을 언급하며,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철학을 설명한다. 캐비아 사이언스와 기술력을 더한 라프레리의 스킨 캐비아 리퀴드 리프트도 마찬가지. 브랜드 철학과 핵심 성분 익스클루시브 쎌루라 콤플렉스™의 연관성에 대해 라프레리 박민화 과장은 “브랜드 철학과 신념을 고수하며, 희귀하고 강력한 성분을 바탕으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추구합니다”라고 답한다. 

한 병의 철학, 한 세대의 신뢰

화장품에 관심이 없어도 에스티 로더의 ‘갈색병’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약국에서 사용하던 갈색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패키지는 브랜드의 가장 큰 상징으로 기능하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인기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40여 년 동안 선구적 나이트 사이언스 연구를 통해 쌓은 탄탄한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열성 팬층을 형성해가는 중이다. 엘리자베스아덴 이유진 마케터는 “소비자의 근본적 니즈는 변하지 않는다”며 제품이 전하는 철학과 소비자와의 신뢰를 강조한다. 세라마이드 캡슐은 예민한 피부에도 사용하도록 기술을 더하고, 시대에 맞춘 ‘생분해 캡슐’로 진화를 시도해도 캡슐이 전하는 철학과 기본 테크놀로지는 일관되게 유지했기에 브랜드의 대표 제품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시간을 견디는 정체성의 힘

앞으로도 감히 샤넬 N°5에 필적할 향수는 없다고 자신한다. 대체 불가능한 스퀘어 보틀 실루엣, 호박색 액체, 장미와 알데하이드가 어우러진 관능적 향까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전통 조향업계의 기준을 뒤엎으며 샤넬만의 철학을 굳건히 이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싸다고 욕하는 사람도 사고 싶게 만들라’는 창업자 위베르 도르나노와 이자벨 도르나노 부부의 말을 따라 시슬리는 ‘최고의 화장품’을 만든다는 철학을 내세운다. 최상의 성분과 포뮬러 개발을 위한 연구에는 비용 제한이 없으니 좋은 제품이 더 좋아질 일만 남는다. 스타 상품 에뮐씨옹 에꼴로지끄에서 진정 성분을 강화한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어드밴스드 포뮬라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일 테니까.

어떤 브랜드가 살아남을까?

그렇다면 오직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만이 철학을 가질 수 있을까? 헤리티지는 철학이 오랫동안 배신당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헤리티지는 과거의 축적에서 오지만, 철학은 현재의 태도가 반영된다. 철학은 시간의 산물이 아닌 방향의 선언이다. 결국 오래가는 아이템은 단지 잘 만든 제품이 아니라 믿음을 지켜온 브랜드의 것이다.

    포토그래퍼
    정원영
    도움말
    박민화(라프레리 PR Executive 과장), 오혜지(SK-II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이유진(엘리자베스아덴 마케팅팀), 정채림(라 메르 마케팅팀), 주화영(겔랑 교육팀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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