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간계>에서 첫 호흡을 맞췄습니다.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방효린 처음 뵌 건 2년 전 열린 ‘무주산골영화제’에서였어요. 저는 영화 <지옥만세>로 선배님은 ‘넥스트 액터’ 특별전으로 영화제를 찾으셨죠. 소녀팬의 설레는 마음으로 인사드린 기억이 나요.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교보재처럼 선배님의 연기를 봤으니까요.
변요한 첫인상은 ‘눈이 되게 반짝반짝 빛난다’는 거였어요. 주변에서 <지옥만세>를 추천해서 봤는데,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그러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를 본 거예요.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 소문나려면 둘 중 하나잖아요? 정말 특별하게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웃음)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중간계>는 국내에서 상업영화 최초로 AI 기술이 대거 동원된 영화인데, 어떤 마음으로 출연했나요?
변요한 모든 최초의 시도는 리스크가 크잖아요. 그런데 우리 팀은 누구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AI 기술의 활용에 정확하게 도덕성을 갖고 원칙을 고수하며 만들었어요. 사람의 연기는 AI에게 맡기지 않는다. 크리처 창작에서만 AI를 사용한다. 이 두가지는 작품을 시작하며 확실히 약속한 부분이어서 저는 이 영화를 사람과 AI의 연기 대결이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했어요. 아마 AI도 자신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이겼는지 AI가 이겼는지는 관객이 평가해주면 좋겠습니다.(웃음)
방효린 저도 도전해야 AI 기술이 더 발전할 미래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품에 임했어요. 연기하면서도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실물 없이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선 숙제였을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공포는 어떤 모습인가요?
방효린 저승사자가 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변요한 저는 <중간계> 세계관 자체가 무서워요.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딘가라니.
죽음이라는 건 모두에게 공평한 숙명이잖아요. 죽음을 대하는 두 분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며 중간계로 들어가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방효린 연기하면서 인물의 삶과 죽음을 연기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게 죽음은 두렵다기보다는 이야기의 마무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잘 마무리하기 위해 삶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하루하루 더욱 잘 보내야겠다 싶어요.
변요한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을 앞서 보낸 경험이 있어서 제게는 사실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렇게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와 약속한 게 있거든요. 작품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는 몸조심하고 절대 죽지 말자고. 한편으로는 제가 만약 6개월 동안 촬영하는 캐릭터를 하면 그동안은 그 캐릭터로 살아 있는 것이니 작은 단위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셈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연기할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삶이 간절해져요.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나요?
변요한 전 원래 강박이 심했어요. 아침에 계획을 세웠으면 이 시간엔 이걸 해야만 하고 뭔가를 이뤄내야만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겼어요. 너무 열심히만 하기보다는 정확하게 숨 쉬고,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효율적인 사람이 됐달까. 제 몸과 마음에 대해 이제 좀 알게 된 것 같아요.
방효린 저는 항상 뭐든지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성격이라, 크게 변한 건 없어요.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고, 대사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외우지 않으면 잠이 안 와서 다 외우고 자요. 잘 떠오르지 않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다시 외우고요. 주어진 걸 열심히 하지 않는 걸 못 견뎌요. 하지만 중간계를 하면서는 선배님께서 워낙 재미있게 해주신 터라 해방감을 느끼면서 촬영했습니다.(웃음)
촬영을 통해 발견한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방효린 온통 보고 배우느라 바빴죠. 현장을 대하는 태도, 동료들과 스태프들을 대하는 마음, 감독님과의 소통…. 최근 폴 토마스 앤더슨의<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봤는데, 모든 장면이 좋더라고요. ‘내가 이래서 영화를 좋아했지’ 하는 마음이 되살아나고요. 그런데 어쩐지 이 영화를 보고 변요한 선배님이 생각났어요.
극찬인데요?(웃음)
변요한 하하. 저는 효린 씨의 연기에 대한 열정, 에너지 자체가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애마>라는 작품을 보면서 방효린이라는 배우가 저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선배와도 팽팽히 맞서야 하고, 쉽지 않은 작품이잖아요. 작품의 장면 장면을 보면 신인 배우로서 그가 어떤 마음과 강한 의지로 서 있는지 보였거든요. 살아 있듯 생생한 느낌이었어요.
여성 배우의 이야기를 담은 <애마>는 앞으로도 효린 씨의 배우 생활에 어떻게 남을 것 같아요?
방효린 주애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에 남아 있어요. “맷집으로 버티고 악으로도 깡으로도 버티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언젠가 K.O.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냥 매일 하루씩 싸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는 생각을 하면 막상 두려울 건 없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배우 생활을 해나가려 합니다.
변요한 씨는 판타지 <중간계>, 서스펜스 범죄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사극 <한산 리덕스> 등 종횡무진 강렬한 장르 연기를 보여주고 있죠. 장르물에 대한 애정이 있나요?
변요한 알콩달콩한 것도 좋지만, 굵직한 선을 가진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분노면 분노, 용기면 용기, 초라함이면 초라함. 그렇게 감정을 하나씩 알고 나면 나중엔 열 개, 스무 개를 알 수 있죠. 장르적인 작품을 저는 더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제가 더 선명해질 것 같아요.
선후배로서 서로에게 말해주고 싶거나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변요한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느 날은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고 어느 날은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 반복이 우리의 삶이고, 그 고통마저도 즐기는 좋은 예술가가 되길 바라요. 효린 씨는 그렇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요.
방효린 전 선배님께 궁금한 게 있는데, 작품과 작품 사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저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그 시간을 다 쓰거든요.
변요한 아직 쉬는 법을 모르는 나이일 수 있어요. 저도 그땐 그랬거든요.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쉴 때는 일상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연기에도 도움을 주죠. 연기는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진심으로 행동하고, 사랑하고, 많은 걸 해봤을 때 대본에 나와 있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돼요. 그러니 평소에 많은 사람도 만나고 재미있게 놀아도 보고 솔직하게 얘기도 해보고 옳고 그름과 호불호에 대한 가치관도 세웠으면 해요.
인간으로서 생활의 근육을 쌓고 가치관도 정립해야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로 들리네요.
변요한 그렇죠. 배우는 악기니까요.
효린 씨에게 답이 됐나요?
방효린 너무요.
변요한 지금 엄청 진지해진 것 같은데, 나 원래 이렇게 진지한 사람은 아니야.(웃음)
두 분은 각각 인간 변요한과 방효린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방효린 저는 스스로를 잘 알아요. 거기서 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변요한 여기서 처음 얘기하는 건데요. 제게 슬로건은 늘 있었어요. 저는 겁대가리 상실한 놈이 되고 싶은, 겁 많은 사람이에요. 대중적인 상업 예술을 하지만 텍스트 안에 갇혀서 달리는 사람이 아닌 텍스트를 뚫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합니다. 이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요한 씨는 언뜻 봐도 겁 없는 분처럼 보이는데, 아닌가요?
변요한 겁 없어 보이지만 실은 겁이 많죠.(웃음) 많은 경험과 고통을 통해 다져진 자기 객관화 속에서 그냥 맹세하는 거예요. 겁 없이 해보자.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로요. 틀렸을 땐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하찮은 존재죠. 좀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앞으로의 제가 더 기대돼요.
효린 씨는 실제로 만나니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지고요.
방효린 맞아요.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과 남들이 보는 제 모습이 별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통해서 두 분은 서로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나요?
방효린 네. 그리고 힘을 얻었어요.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을 되뇌면서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변요한 장차 엄청난 배우가 될 방효린이라는 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죠. 시간이 지나 이 인터뷰를 다시 봤을 때 여러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뜻깊은 기억으로 남을 듯한 예감입니다.
- 포토그래퍼
- 고원태
- 스타일리스트
- 박초롱(변요한), 김세하(방효린)
- 헤어
- 윤소현(변요한), 조미연(방효린)
- 메이크업
- 정안(변요한), 정수연(방효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