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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패션 아이템, ‘가죽’ 이야기

2025.10.13최정윤

아름다움을 켜켜이 쌓아온 가죽 소재로 지속 가능한 내일의 패션을 이야기한다. 

폴렌느의 자투리 가죽.
토즈 2025 F/W 컬렉션에서 웅장한 가죽 퍼포먼스를 펼친 아티스트 카를라 브루니.
생 로랑 레더 재킷을 입은 모델 빙크스 월턴.

생존을 위해 의복의 재료로 사용된 가죽은 질기고 단단한 특성 덕분에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왔다. 손으로 직접 다듬어야 했던 질 좋은 가죽의 무게감이 곧 내구성의 보증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가죽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거듭 진화하고 있다. 가볍고 유연하면서도 튼튼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지속 가능한 소재로 새롭게 정의된다.

‘시간의 재료’를 넘어 ‘설계된 감각’으로

여전히 타임리스 아이템으로 꼽히는 가죽 라이더 재킷. 2000년대 후반, 나의 대학생 시절은 섬세한 보헤미안 룩과 믹스앤매치하는 재미로 이 묵직한 아우터가 대대적인 유행의 물살을 탈 때였다. 새 제품에서 나는 시큼한 쇠 냄새는 몇 번의 외출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몸을 감싸기보다는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듯 불편했음에도 당시에는 그조차 멋으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의 가죽은 다르다. 매우 얇으면서도 잘 마모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형태를 유지한다.

이런 가죽의 진가는 2025 F/W 시즌 펼쳐진 장인과 디자이너 협업 컬렉션에서 돋보였다. 특히 에르메스, 디올, 버버리, 코치, 맥퀸 등에서 대표되는 정제된 디자인의 리틀 레더 재킷이 대거 등장했다. 이 재킷에는 가죽의 접힘 없이 얇게 깎아내어 두께를 조절하는 정밀 스카이빙(Skiving) 기술과 가죽 원단 뒷면에 짜임새 있는 니트 원단을 부착해 신축성을 갖추도록 하는 니트 백킹(Knit Backing) 기술이 적용된 것. 톰 포드와 페라가모는 풀 레더 셋업으로 진정한 ‘파워 드레싱’ 룩에 마침표를 찍었다. 역시 TPU 보강재를 덧대고 진공 성형을 거쳐 안정적인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움직임이 자유롭다.

한편 맥퀸은 가장 질긴 가죽과 가장 섬세한 레이스를 하나의 원단에서 구현한다. 레이저 커팅과 얇아진 가죽 덕분에 두 소재가 매끄럽게 이어졌고, 이를 통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여성성의 양면을 날카롭게 표현했다. 변화한 색감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특유의 번들거림을 과시하지 않고 담담하고 고요한 빛깔이 친절히 맞이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르메르의 맥시 코트, 펜디의 미니멀 드레스는 온기를 머금은 매트한 질감으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 나아가 시간의 흔적까지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는데, 마치 수십 년의 시간을 품은 듯 디스트로이드 레더 룩을 선보인 디젤은 왁싱과 브러싱, 오일링 등의 공정을 통해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파티나를 가죽에 새긴다. 예전의 가죽이 사용자가 직접 길들여야 하는 재료였다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낡아갈지도 디자이너가 의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다림과 불편함이 멋이던 때를 지나 새로운 방식으로 가죽을 소비하는, 그 태도 역시 함께 진화하고 있다. 

가죽, 그 지속 가능한 서사

지난 2월, 토즈의 2025 F/W 컬렉션을 보기 위해 밀라노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자리를 찾기 위해 베뉴에 들어선 순간 입구에는 끝없이 길게 펼쳐진 가죽 패치워크 드레스를 입은 카를라 브루니가 여신상처럼 거대한 바늘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근엄한 퍼포먼스는 이스라엘의 아티스트 넬리 아가시가 구상한 것으로 ‘장인의 지식’을 테마로 한 패션쇼를 관객과 함께 탐구하려는 열망이 느껴졌다. 옷은 버려질 뻔한 자투리 가죽 조각을 꿰매고 붙여 다시 숨을 불어넣은 것. 지금도 뇌리 속에 단단히 각인된 이 예술 공연은 장인정신과 자원의 재해석에 대한 선언이자 지속 가능한 가죽의 미래를 아우르는 미학적 표현으로 거론된다.

한때 사치의 상징이던 퍼 소재가 동물복지 논란 속에서 자취를 감출 위기에 놓였지만, ‘페이크 퍼’라는 대안 덕분에 더 다채롭게 진화한 것처럼 가죽 역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가죽은 그 흐름에서 약간 다른 궤적을 그린다. ‘비건 레더’가 대체재로 떠올랐지만, 되레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진짜 가죽이 가진 견고함과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파티나를 구현하지 못했고, 생산과정에서 수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짧은 수명으로 인해 쉽게 버려졌다. 결과적으로 가죽의 최대 장점인 ‘오래 입는’ 가치는 상실됐다.

이제 사람들은 진짜 가죽의 본질로 시선을 돌려 공급망과 생산과정을 더 책임감 있게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 생애에 걸쳐 건강하고 안전하게 사육될 수 있도록 동물복지에 최대한 힘쓰는 동시에 합법적인 농장에서 길러졌음을 입증하는 원산지 증명서를 제공해 투명성을 확보했다. 또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자투리 가죽을 재활용하고, 바이오 기반의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등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더 올바르고 합리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디자이너들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듯 ‘자투리 가죽’과 ‘데드스톡’을 유머와 상상력으로 무장시켜 런웨이에 올렸다. 먼저 파리의 마린 세르는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한 영화 <트윈 픽스>를 연상시키는 레드 룸 무대 위에서 버려질 뻔한 바이커 팬츠를 활용해 아드레날린과 속도감의 잔상을 품은 캣슈트와 쿠튀르 드레스를 선보였고, 글렌 마틴스도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데뷔 쇼에서 빈티지 가죽 재킷에서 뜯겨져 나온 가죽 조각을 겹겹이 쌓아 고대의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이어 런던의 초포바 로위나는 재고로 쌓여 있던 가죽 벨트를 연결한 펑키한 플리츠스커트를, 코펜하겐의 데드우드는 호텔 수영장 테라스에 설치된 런웨이에서 거센 바닷바람에 해체된 듯한 업사이클 레더 룩을, 베를린의 팜와인 아이스크림은 가나 여성의 삶과 전통에서 영감 받아 버려진 가죽을 나무껍질로 염색하고 햇빛에 건조시켜 강렬한 색감과 질감의 스타일을 등장시켰다. 마지막으로 도쿄의 유에치 치는 자투리 가죽을 레이저 컷 레이스와 마크라메 기법으로 재탄생시켜 고양이 귀 헤드피스와 미니 케이프, 비딩과 자수가 얹힌 장식 스커트 등으로 위트 있게 변모시켰다. 

샤넬 백이 만들어지는 공방의 모습.
미우미우의 ‘포켓’ 백 컬렉션 캠페인.
폴렌느의 ‘누메로 눼프 미니 윌로’ 리미티드 에디션.
카를로스 페냐피엘과 르메르가 협업한 ‘카를로스’ 백.
코치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코치토피아의 ‘딩키’ 백.

예술을 입고 패션을 빚다

가죽은 더 이상 옷이나 가방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시장이나 도심의 팝업 공간으로 확장되며, ‘입고 버리는’ 소비재에서 ‘보고, 만지고, 소장하는’ 예술적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르메르는 지난 9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1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온 공예가 카를로스 페냐피엘의 전시 <웨어러블 스컬프처(Wearable Sculpture)>를 진행했다.
작가는 물에 적신 목조 구조에 가죽을 성형하는 방식을 통해 자유로우면서도 강인하고, 섬세함이 깃든 ‘입는 조각’을 만들어낸다. 흉상, 조개, 캐스터넷을 형상화하는 등 독특한 시각이 담겨 마침내 의복을 벗어난 가죽은 예술과 패션의 벽을 허물고 시각적 협업을 이룬다. 이처럼 가죽은 다음 세대에 남겨질 예술적 자산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손맛 가득한 가죽공예 작품을 선보이는 브랜드 중 보테가 베네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올해는 로고 대신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트레치아토’의 5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였다. 가늘고 좁은 가죽끈 페투체(Fettucce)를 45도 기울기로 정교히 엮어낸 인트레치아토는 캠페인과 팝업·인스톨레이션을 통해 장인의 손길과 직조의 언어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중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역의 아틀리에에서 남은 가죽 조각을 엮어 완성한 ‘브릭-아-브락(Bric-a-Brac)’ 시리즈는 인트레치아토의 진화와 표현력을 증명한다.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창의성과 혁신을 활용하는 메종의 비전은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 형태로 어우러져 고유의 개성과 촉각적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처럼 재료를 아끼고 오래 쓰는 감수성은 로에베의 ‘서플러스 프로젝트(The Surplus Project)’로 이어진다. 이전 컬렉션에서 사용하고 남은 고품질 가죽 소재를 활용해 아이코닉한 백 컬렉션을 꾸준히 재해석하며 ‘결함과 잔여물’에서 발견되는 미학을 탐구한다. 더 나아가 폴렌느는 자투리 가죽을 재활용해 상업적 제품과 예술적 공간 경험을 동시에 제안한다.

무엇보다 환상적이고 안락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니 기회가 된다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아름다운 석재 건물, 폴렌느 부티크를 방문해볼 것. 매장에 들어선 순간 맞이하는 참나무 목재 테이블은 가구 세공 장인 로빈 푸파르의 솜씨로 이 역시 컬렉션에서 사용하고 남은 가죽으로 마감했다. 또 광물 느낌이 나도록 재탄생시킨 신소재 레더 스톤(Leather Stone®)으로 만든 카운터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후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 가죽을 정교하게 엮어 만든 거대한 원형 소파에서 편안하게 또 다른 ‘착한 가죽’ 제품을 만날 시간이 주어진다. 시들지 않는 가죽 꽃 오브제부터 고객이 직접 자투리 가죽을 골라 서랍 속에 넣으면 로봇 팔이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드는 백 참 등 혁신적 업사이클 가죽 아이템이 가득하다.

이번 시즌 새롭게 공개한 ‘누메로 눼프 미니 윌로 리미티드 에디션’도 아카이브에서 나온 자투리 가죽으로 176개의 프린지 버클을 만들어 손바느질로 가방에 부착했다고 하니 구경해볼 만하다. 우브리케의 숙련된 가죽 장인들이 정교한 손길로 완성한 이 제품은 개당 10시간이 소요되며 폭신하면서도 부드러운 실루엣을 제공한다. ‘한 장의 가죽에서 남는 모서리’까지 감각적으로 재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순환 생태계를 아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장소가 되겠다. 

구조적 변화와 미래 준비

오늘날 양질의 추적 가능한 원자재가 부족해지면서, 가죽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품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패션 브랜드들도 기업 차원에서 체계적 구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코치의 모기업인 태피스트리(Tapestry)는 가죽 폐기물을 재활용해 버스와 비행기 좌석용 가죽을 생산하는 기업 젠 피닉스(Gen Phoenix)와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관계는 2023년 3월, 태피스트리가 젠 피닉스의 1800만 달러 규모의 펀딩 라운드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코치는 젠 피닉스의 재활용 가죽 섬유로 제작된 비코팅 안감으로 합리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패션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했고, 이는 서브 브랜드 코치토피아(Coachtopia)를 론칭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친환경 패션이 고루하기만 할 거란 대중의 편견을 과감히 깨부수고, 알록달록 컬러 팔레트에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이는 유행에 민감한 젠지의 취향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기에 공장에서 버려지는 가죽 조각과 매립장으로 갈 폐기물을 재사용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가히 매력적으로 어필됐다. 또 코치토피아 제품에는 디지털 패스포트가 부착돼 소재 조달 과정, 투명한 생산과정, 수리와 복원 이력까지 모두 추적할 수 있다. 
이 인기에 힘입어 젠 피닉스의 재생 가죽을 활용한 클래식 핸드백 라인 론칭을 앞둔 코치는 이제 (리)러브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한 중고 가죽 제품을 젠 피닉스의 공급망에 기부함으로써 대대적인 순환 시스템을 완성할 예정이다.

최근 샤넬은 가죽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등 순환 경제를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자 독립 법인 플랫폼 ‘네볼드(Nevold)’를 출범했다. 이미 수년 동안 탄소발자국 감축과 사회적 영향 확대를 주요 과제로 삼아온 샤넬의 긍정적 행보가 기대된다. ‘영원히 낡지 않는다(Never Old)’의 의미를 담은 ‘네볼드’는 엔지니어 출신이자 파투의 부활을 이끈 주역 소피 브로카르가 총괄 경영하며 기업과 스타트업, 학계가 함께 협력하는 B2B 허브로 운영된다. 이들의 목표는 제품 수명 주기 전체를 재고하고, 재활용 전문가 같은 새로운 직업과 직무를 창출하며, 재활용 섬유를 사용하면서도 럭셔리 산업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미래 소재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샤넬의 주도로 설립되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네볼드에는 라뜰리에 데 마티에르(L’Atelier des Matieres), 필라튀르 뒤 파르크(Filatures du Parc), 오센틱 머티리얼(Authentic Material) 등 세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패션 하우스들이 경영과 제작 구조 자체를 지속 가능성에 맞게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가죽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 있는 소재지만, 이제는 “어떻게 책임감 있게 쓰고, 어떻게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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