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유행이 변해도 ‘식이섬유’ 식단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

각종 식단이 유행처럼 번질 때, 식이섬유는 묵묵히 우리 몸을 챙기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던 식이섬유의 반란.

‘식이섬유 섭취량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식습관’. MZ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웰니스 트렌드로 떠오른 ‘파이버맥싱(Fibermaxxing)’을 마주했을 때, 한 가지 기억이 스쳤다. “식이섬유를 많이 드셔야 해요.” 배앓이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한결같던 의사 선생님의 처방 말이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내내 알쏭달쏭했다. 나는 나물이나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지독한 한식파에 샐러드도 즐겨 먹는데, 왜? 끼니 채소나 잡곡을 의식적으로 많이 챙겨 먹어도 마찬가지였기에 식이섬유 하나면 장 트러블이 단번에 해결될 것처럼 말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신뢰를 잃고 있었다. 개선되지 않는 나의 장 건강을 되찾기 위해 식이섬유를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식이섬유 바로 알기

‘파이버맥싱’은 말 그대로 식이섬유를 의도적으로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 트렌드다. 장 건강 증진과 체중 감량 등을 위한 이 고섬유 식단은 틱톡에서 157만 번 넘게 언급될 정도로 인기를 끌며, 저속 노화 식단을 이을 새로운 푸드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서울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이철민은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건강한 식습관은 수명 연장과 질병 예방에 영향을 미쳐요. 뻔한 얘기 같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좋은 식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외식이나 배달이 잦아진 요즘, 식이섬유가 풍부한 야채와 전곡류, 콩 등을 충분히 섭취하는 식단을 선택해야 합니다.”

식이섬유는 영양학적 측면에서 우리 몸에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섬유질은 크게 불용성과 수용성으로 나뉜다. 곡류나 견과류, 채소의 질긴 부분 등에 많은 불용성 섬유질은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소화기관에서 분해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셀룰로스, 헤미셀룰로스, 리그닌, 키틴 같은 성분이 대표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장내에서 음식의 소화를 조절하고 수분을 흡수해 대변의 부피와 굳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라고 한 선생님의 말씀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실제 불용성 섬유질은 변비와 치질, 만성 설사 등의 치료에 권유된다. 불용성 섬유질을 적당히 섭취하면 변의 양을 늘리고, 질감을 부드럽게 해 규칙적인 배변 활동에 효과가 있다. 식이섬유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과일의 과육이나 해조류에 풍부한 수용성 섬유질은 폴리덱스트로스, 펙틴, 구아검, 카라기난, 알긴산 등이며, 소화기관 안에서 물과 결합해 끈적이는 젤 형태로 변한다. 이때 체내 점도를 조절하는 담즙을 분비해 간의 운동이 활발해진다. 식이섬유가 협심증과 심근경색, 뇌경색, 제2형 당뇨병의 발병률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이유다.

이 외에 고섬유질 식단은 심장병, 유방암, 대장암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가 있고, 면역력 조절, 혈당 관리, 스트레스, 우울증 관리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줄로만 알았던 식이섬유의 여러 장점을 깊이 있게 살피고 재평가할 때다. 

똑똑하게 많이 먹기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하루 식이섬유 섭취량을 25~30g으로 권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여성의 90% 이상, 남성의 97% 이상이 권장량을 채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주로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는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조금은 더 많은 양의 식이섬유를 섭취하지만, 가공식품 섭취가 늘어난 요즘은 권장량을 채우기는 역부족이다.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식이섬유가 고르게 함유됐는지를 확인할 새 없이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기 급급하다.

그러면 식이섬유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많이 먹는 게 좋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식이섬유를 적응 기간 없이 한 번에 많이 섭취하면 자칫 배에 가스가 차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섬유질 섭취는 하루에 5g씩 서서히 늘리고 충분한 수분 섭취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파이버맥싱을 모든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과민성대장증후군(IBS) 같은 장질환자들은 섬유질이 늘어난 식단을 견디지 못해요. 이때는 섬유질을 애써 늘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철민 교수의 조언이다. 또 섬유질이 과도하면 철분과 칼슘, 아연 같은 미네랄 흡수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어서 다른 영양소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뭐든 과유불급이다.

극단적 식단의 중재자

파이버맥싱은 채식이나 카니보어 식단처럼 어느 하나에 치우친 극단적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저속 노화 식단처럼 식습관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에 가깝다. “채식은 모든 영양소를 동물이 아닌 식물을 통해 섭취하는 방식으로, 흡수되지 않는 탄수화물인 섬유소만을 언급하는 파이버맥싱과는 관점이 다릅니다. 채식 위주의 식습관이 심혈관 질환과 제2형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골다공증 발생을 증가시키거나 비타민 B12의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해요.”

실제로 파이버맥싱은 식이섬유의 섭취량을 신경 쓸 뿐, 특정 영양소나 식품군의 섭취를 제한하지 않는다. 건강한 식습관은 가공육과 포화지방, 설탕, 소금, 술의 섭취를 줄이고, 과일과 야채, 콩과 견과류, 전곡류 등 다양한 영양분을 지닌 식재료를 충분히 균형 있게 섭취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포토그래퍼
    정원영
    도움말
    이철민(서울대학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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