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트렌드는 경계 없는 자유로움, 노매딕 스피릿
경계 없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노매딕 스피릿.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이 스타일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인의 철학을 상징한다.

노매딕 스피릿(Nomadic Spirit)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하나의 철학이다. 유목민처럼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현대인의 욕망이 패션으로 표현된 것. 그 시작은 19세기 말 서구 사회에 불어닥친 이국적 취향의 열풍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유럽 패션에 동양과 아프리카의 독특한 자수와 문양, 태슬 장식 등이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1960~70년대에 일어났다. 히피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던 그 시절, 기성세대에 반발하며 자연으로 회귀하려던 젊은이들이 선택한 옷은 몸을 조이지 않는 헐렁한 블라우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자수와 술 장식이었다.
패션계에서 이런 움직임을 하이패션으로 승화한 이는 이브 생 로랑이다. 1976년 그가 발표한 ‘오페라 발레 뤼스(Operas – Ballets Russes)’ 컬렉션은 러시아 발레단과 레옹 박스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컬렉션은 노매딕 감성을 럭셔리 패션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스타일은 ‘보헤미안 시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케이트 모스와 시에나 밀러 같은 스타들이 음악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자유분방한 차림새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워너비 스타일이 되었다. 특히 코첼라 같은 대형 음악 축제가 생겨나면서 이런 스타일은 더욱 널리 퍼졌다.
2025 F/W 시즌 런웨이에서 노매딕 스피릿은 한층 정교하고 구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보헤미안 시크의 대표 주자인 끌로에는 1970년대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웨이드 케이프와 아르데코풍 자수 블라우스를 선보였고, 샤넬은 브랜드의 상징인 트위드를 맥시스커트와 결합해 도시적 실용성을 강조했다. 또 발렌시아가는 한발 더 나아가 전통적 유목민 감성에 미래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요소를 결합한 ‘어반 노매드(Urban Nomad)’라는 신개념을 제시했다. 이런 흐름은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두드러진다. 젠데이아나 지지 하디드 같은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셀러브리티들이 블라우스에 와이드 팬츠를 매치하거나, 빈티지 데님 팬츠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다채로운 노매딕 룩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노매딕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연출하려면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헐렁한 블라우스와 맥시스커트를 함께 입을 때는 반드시 허리선을 강조해야 한다. 벨트나 길이가 짧은 아우터로 실루엣에 변화를 주면 훨씬 멋지다. 색상은 베이지, 브라운, 아이보리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뉴트럴 톤이 기본. 같은 계열의 다양한 소재와 질감을 섞어 입으면 풍부한 레이어링 효과를 낼 수 있다. 액세서리는 긴 펜던트 목걸이나 프린지 백처럼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을 한두 가지만 활용하자. 신발은 플랫 슈즈나 웨스턴 부츠가 잘 어울리며, 도회적인 느낌을 원할 때는 심플한 스틸레토 힐과 매치해도 좋다.
결국 노매딕 스피릿은 단순히 ‘과거 스타일의 재현’이 아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현대인의 정서를 옷으로 표현한 것이다. 올해 런웨이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선보인 노매딕 스타일은 이런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맥시스커트나 풍성한 블라우스 같은 상징적 아이템을 활용해 과거의 낭만을 현재로 소환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노매딕 스피릿으로 향하는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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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 디자이너
- 이청미
- 사진 출처
- COURTESY OF GORUN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