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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밖에 없다, 염혜란

2025.09.19허윤선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속 범모와 아라가 배우 이성민, 염혜란으로 살아난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치명적으로.

이성민이 입은 턱시도 셔츠는 키톤(Kiton). 벨벳 로브는 케인 피오니어(Kein Pionier). 팬츠는 코스(Cos). 아이웨어는 퍼블릭비컨(Public Beacon). 보타이와 커머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염혜란이 입은 레이 페이즐리 패턴 셋업과 블랙 스트랩 힐은 에트로(Etro).
블루 저지 언밸런스 드레스와 브라운 레더 프린지 글러브는 스포트막스(Sportmax). 블랙 레더 롱부츠는 펜디(Fendi).
염혜란이 입은 블랙 드레스는 페레가모(Ferragamo). 이성민이 입은 블랙 롱 레더 코트는 토니웩. 블랙 니트 톱과 실버 링은 코스. 패턴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성민이 입은 턱시도 셔츠는 키톤. 벨벳 로브는 케인 피오니어. 팬츠는 코스. 아이웨어는 퍼블릭비컨. 보타이, 커머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은 코스. 워치는 태그호이어. 염혜란이 입은 레이 페이즐리 패턴 셋업은 에트로.

<폭싹 속았수다> 공개 때도 화보를 제안했는데, 작품의 여운을 해칠 거 같다고 고사했죠. 아쉬웠는데, 이렇게 만나게 됐습니다.
요즘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여운이 깨지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걸 알지만, 그래도 아직 한창 보는 분들도 계실 텐데 다른 걸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이번은 어떤가요?
화보는 실제의 저보다 멋있잖아요. 이번엔 그래도 되는 역할인 것 같았어요. 화보의 힘을 빌리면 제 새로운 캐릭터에 더 쉽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웃음) 특히 제 캐릭터가 배우예요. 성민 선배님이랑 꼭 화보도 해보고 싶었고요. 영화를 찍을 때도 선배님이 너무 의지가 됐어요. <소년심판>을 하긴 했지만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선배님과 같은 시기에 대학로에 있어서인지 작품으로는 처음인데도 정말 의지됐죠. “선배님은 오늘 어땠어요? 저는 이랬어요” 막 얘기하고.

설명을 들으니 아라와 범모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보고 말씀 나누면 더 좋았을 텐데. 범모와 아라는 찐사랑이죠. 화려한 것도 화려한 거지만 아라는 저와는 다른 지점이 있는 역할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하면서는 계속 ‘아니, 나도 배우잖아’ ‘나도 이런 점이 있고, 나한테 아예 없는 면이 아니야’ 하면서 겉으로 발현되지 않은 제 모습 중 아라와 비슷한 지점을 계속 생각했어요.

어디서 실마리를 찾았나요?
본인을 굉장히 사랑하는 여자거든요. 본능에 충실하기도 하고요. 삶을 적극적으로 영위하는데, 조금 달라도 공통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 여자와의 접점을 계속 찾아가는 작업이었어요. 아라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도 스스로의 모습도, 굉장히 자신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자기애가 있어요.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거기에 주저앉지 않죠. 그런데 오디션에서는 계속 떨어져요.(웃음)

얼마나 스트레스가 크겠어요. 연기하고 싶은데 써주는 사람은 없으니.
저희 영화는 ‘만수(이병헌 분)’가 실업을 당하면서 생긴 일이죠. 저희 남편 ‘범모’도 그렇고요. 저도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이뤄지지는 않은 상태거든요. 모든 인물이 일과 관련해서 각기 다른 포지션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막 실직한 상태, 실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 그에 대한 태도가 각기 다르고 그 문제를 각자 풀고 있어요 각 인물에게 그 역할이 섬세하게 주어진 것 같아요.

‘실업’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문제입니다. 배우분들도 자주 말하죠. 프리랜서라 선택받지 못하면 실업이라고.
그렇죠. 그런 지점에서 저희 남편 범모랑 저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요. 배우들도 항상 잠재적 실업 상태죠. 고용이 불안한 상태. 그런데 만수네와 저희 부부는 포지션이 조금 달라요. 저희 집은 조금 살아요.(웃음)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거든요. 그중 제 역할은 안 벌어도 살 수 있는 사람에 속하는 실업자예요.

그런 촘촘한 역할 속에서 아라를 어떻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이 여자의 행동이 하나로 보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이 여자는 못된 여자인가? 이 여자는 나쁜 여자인가? 아니면 그럴 만한가? 결국 정당성인데 이 여자가 못된 여자로 보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보일까 봐 우려한 지점이 있어요. 이 여자의 행동을 납득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그 부분을 신경 썼어요.

남다른 에너지를 가진 것 같은 아라. 그 동력은 뭐였을까요?
아라는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어떠한 추진력을 갖고 있어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털고 일어나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남편이 너무 싫은 거죠. 저러고만 있는 꼴이.(웃음)

이성민 씨와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어요?
너무 행복했죠. 선배님은 어떻게 연기하실까 기대됐어요. 현장에서도 감탄하면서 봤어요. 선배님도 우리의 연기가 박찬욱식 언어로 어떻게 형상화할지에 대해 고민한 것처럼 그 지점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다들 연기 베테랑이잖아요. 준비하고 고민하고 가는데, 선배님은 더 자유롭고 풍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매번 놀랐죠.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 하는 것도 큰 즐거움 아닌가요?
너무나요. 같은 무대 연기로 출발해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어요. 뭐든 시도해볼 수 있고, 뭐든 받아주시고, 같이 하면서 되는 느낌이 있었죠. 또 박찬욱 감독님이라는 이름의 존재가 너무 커서 쫄고 있을 때, 다 못하고 온 것 같아 아쉽기도 할 때, 선배님이 나도 그렇다면서 공감해주셨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많이 위로받았죠. 그러면서 새롭게 다른 것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것 같아요.

하하, 박찬욱 감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네요.
그 존재감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안 그럴 수 있을까요?(웃음) 현장에 굉장히 많이 갔어요. 촬영하지 않을 때도 양해를 구하고 가서 감독님 어떻게 하시는지 자주 봤거든요. 그렇게 과정을 함께하니까 더욱더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막 존경심도 생기고요. 다른 많은 작품도 깨달음을 줬지만 이 작품 이후 제가 정말 많이 배웠고 변화한 지점이 있었어요. 워낙 꼼꼼하셔서 저도 연기할 때 하나라도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확하게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배우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두 분의 연기가 궁금한 동시에 대사도 기대됩니다.
감독님은 우리말을 굉장히 사랑하시고 그 묘미를 아는 분이에요. 베니스에서도 한편으로는 ‘저건 한국 관객들은 진짜 좋아할 대사인데’ 이런 게 있었어요.(웃음)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만 아는 그런 거. 그걸 한국 관객은 다 느낄 거거든요. 그래서 한국어를 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선택받은 일인지지를 느꼈어요.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진심으로.

작품의 영문 제목이 <No Other Choice>입니다. 감독도 배우를 선택하고, 배우도 작품을 선택해요. 이번 작품은 어떤 선택이었나요?
두려움 때문에 선택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굉장히 주저했죠. 자신이 없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지문에 아라가 너무 아리따운 여성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과연?’ 싶은 지점이 있었는데, 공통점을 찾다 보니 아직 발현되지 않은 제 모습을 사랑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면서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지. 이런 모습을 내가 가지고 있지. 그런 면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라니, 최고인데요.
맞아요. ‘아, 이런 섹시함도 가지고 있지’ ‘이런 면도 가지고 있지’, 그리고 배우로서 다른 모습을 가질 때, 나의 욕심이라든지, 욕망이라든지 같은 것들을 계속 들춰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옷에 비유하는데, 자주 입던 옷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한때 이런 옷도 좋아했지. 그리고 드레스도 평소에는 잘 입지 않지만, 드레스 입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지. 이 작업이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박찬욱 감독도 신났을 겁니다. 배우 염혜란의 그런 모습을 제일 먼저 꺼내 쓰는 거니까요.
신나셨을까요? 두렵지는 않으려나.(웃음)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봤을 때는 두려움은 없는 분이에요. 새로운 걸 늘 실험하고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시는 것 같아요.

확신에 차서 선택하셨을 겁니다. 그것도 선택이니까요.
감독님은 확신하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확신하셨지? 그래서 감독님의 그런 점이 되게 멋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보지 않은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자신감이고 도전인데, 새로운 도전을 엄청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요.

배우도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죠. 어떤 태도를 갖게 됐나요?
매번 선택하지만 일정 부분은 제 몫이고 나머지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마음이 있죠. 사실 촬영이 끝나면 제 역할은 다 끝난 거 같아요. 그다음은 운명에 맡겨야죠.

다르게 말한다면, 어떤 작품을 거절하나요?
최근에는 작품은 좋지만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고민하다 거절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어요. 배우라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잖아요. 저도 그런 모습을 찾아야 배우로서의 역량도 확장되는 부분이 있고요. 가장 또 우려되는 부분, 역할이 고정화되면 아쉽잖아요. 반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때는 부담스럽진 않을까? 이런 부분에서도 항상 걱정과 두려움이 있죠.

극 중에서 아라의 선택과 결말이 마음에 드나요?
충분히요.베니스에서 모더레이터하신 부집행위원장이 남자들은 ‘No Other Choice’인데, 여자들은 ‘Many Other Choices’를 갖고 있다는 멋진 말씀을 하셨어요. 박찬욱 감독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항상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두 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 보실 때는 저 여자들의 선택은 뭘까, 저 여자들의 선택이 가져올 파장은 뭘까. 여성 캐릭터에 집중해서 보셔도 재미있을 거예요.

이 영화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은 뭔가요?
가장 놀란 게 감독님이 배우와 스태프와 소통하는 방식이에요. 긴밀하게 소통하고 존중하는 게 놀라웠어요.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된 종합예술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음악도, 아라의 공간도, 뭐 하나 빠짐없이 놓칠 수가 없어요.

오늘 화보 촬영은 어떨 것 같아요?
오늘요? 저 단독 신보다 둘이서 계속 찍으면 좋겠어요. 의지하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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