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 가성비? 듀프 화장품을 바라보는 에디터의 용기있는 고백

현명한 소비, 거품을 뺀 가격, 아니면 차려놓은 식탁에 숟가락을 올린 뻔뻔함? 듀프 화장품의 가격표와 그 이면에 관한 개인적 소회. 

얼마 전 지인에게서 링크를 하나 받았다. “이거 진짜 좋아?” 클릭하니 4만원대 에스티 로더 갈색병 에센스가 나타난다. 설명의 첫 구절은 ‘갈색병도 따라올 수 없는, 레벨이 다른 탄력감’. 샤넬 레드 까멜리아, 랑콤 제니피끄, 샬롯틸버리 매직 크림 등의 듀프도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론칭한 글로벌 K-뷰티 플랫폼, 와이레스의 윙크 라인 제품이다. 북촌 한옥마을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올리고 ‘모방을 넘어선 진화’라는 슬로건을 공식화했다. “이렇게 당당한 걸 보면 써도 되지 않을까?”라며 고민하다 “개인적으로는 문제없을 듯”이라고 적고, “25년 차 뷰티 칼럼니스트로서는 글쎄”라고 덧붙였다.

듀프는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에서 유래한 말이다. 값비싼 명품이나 인기 제품을 모방해 만든 대체품을 통칭한다. 나는 뷰티 듀프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콘텐츠로서의 ‘저렴이’다. 소셜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은 불황의 시대에 예쁘게 살아남는 법으로 듀프를 제안한다. 미국의 대표 가성비 브랜드 엘프(e.l.f.), 재현 향수 맛집 자라, 국내에서는 손앤박 컬러밤 등이 수혜를 입었다. 대체품을 표방하지 않은 제품이라도 텍스처나 성분이 유사하다는 점이 부각되면 높은 조회수가 보장된다.

두 번째는 셀프 듀프다. 마몽드가 다이소 버전으로 론칭한 ‘미모 바이 마몽드’나 VT코스메틱이 3000원대로 출시한 다이소용 리들샷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용량을 소분하거나 약간의 성분 가감, 1600개가 넘는 유통망을 이용한 박리다매를 고려한 기획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와이레스의 ‘윙크 라인’처럼 모방한 타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듀프가 있다. 그들은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싸게 판다’고 강조한다. <포브스>도 주목하는 듀프 화장품 플랫폼, 브랜데파이(brandefyskin.com)의 창립자 메그 프라이드(Meg Pryde)는 “고가라고 해서 반드시 고품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제품을 값비싼 병에 담아 3배 비싸게 파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모방한 제품의 실명을 나란히 노출하며 자사 제품의 성분과 비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랜데파이의 ‘클리니컬 비타민 C E 페룰릭 디펜드 세럼’은 스킨수티컬즈의 ‘C E 페룰릭’ 대비 4분의 1 가격이면서도, 프로판다이올을 추가해 변주를 시도했다. ‘오리지널보다 더 나은’ 최고급 대체품이 그들의 소구 포인트인 것이다.

과거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듀프 사례가 있었다. 2011년 미샤는 SK–II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의 저렴 버전인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출시했다. 당시 미샤는 “더 이상 값비싼 수입 화장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도발적인 문구의 광고도 했다. 심지어 SK–II의 공병을 가져오면 미샤의 정품 에센스로 바꿔주는 이벤트까지 진행했다. 소비자는 이런 마케팅에 열광했고 업계는 상도덕을 논했다. SK–II가 미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3심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패배했다. 나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당시 재판부의 판결문을 아직도 스크랩해두고 있다. ‘공병 행사로 SK–II의 고객이 미샤를 구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인정된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의 증정 행사는 관행이고 가격이 3배 이상 차이 나는 두 제품의 소비층이 같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최종 구매 결정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라는 요지였다. 존엄하신 판사님의 판결은 정말 공정했을까?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듀프 제품이 명품과 진짜 똑같은가”일 거다.

화장품 ODM 컴퍼니 J.O.D 랩의 김민경 소장은 “모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답한다. 전성분이 모두 공개되는 시대에 숙련된 연구원이 글로벌 원료사에서 같은 성분을 수급해 작업하면 유사품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향수는 더 쉽다. 향을 분석하는 기체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기계를 사용하면 어떤 향료가 몇 퍼센트 들어 있는지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재현 향수로 인기를 끌고 있는 ‘912’ 역시 이런 방법으로 니치 향수 43종을 1만원대 오드퍼퓸으로 조향해준다. 소비자의 후기는 가성비를 넘어선 감성비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김민경 소장은 오리지널을 창조할 때도 카피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객사에 미리 언질을 줘요. 비밀 유지 계약서를 쓰고 독점 처방을 약속하지만, 만약 이 제품이 히트한다면 유사 제품이 곧 출시될 거라고요.” 어렵게 개발한 레시피가 순식간에 카피당해도 어쩔 수 없다. 고객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제형과 향이 실은 오리지널과 완벽히 똑같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을 뿐이다. “천연 원료는 원산지나 수확 시기에 따라 효능과 향이 달라요. 제품을 담는 용기 역시 차이를 가져오죠.”

과거에는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카피’ 제품이 이제는 ‘듀프’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소비되는 요즘, ‘짭’과는 다르니 괜찮다고 합리화하기에는 생각해볼 문제가 남아 있다. 듀프 브랜드들은 제품 가격이 성분과 패키지, 유통과정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거품 없는 가격을 내세운다. 하지만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에는 단순히 성분과 유통 비용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한 고뇌, 동명의 성분 중 가장 높은 등급의 것을 사용하겠다는 결단, 자신만의 원료를 키우기 위해 경작에 뛰어드는 열정, 효과적인 성분을 찾아내 조합하고 그것이 안정화될 수 있는 제형을 설계하는 시간과 인력, 높은 퀄리티 컨트롤 기준, 그리고 탄생된 제품을 각인시키기 위한 마케팅 활동까지, 이 모든 과정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생략된 오리지널의 답안지는 듀프의 좋은 참고서가 된다.

나는 오랫동안 뷰티업계에서 일하며 수많은 듀프 ‘해프닝’을 지켜봐왔다. 디자인 등록까지 마친 인디 브랜드의 브러시를 타 브랜드가 모방해 파운데이션 사은품으로 줘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와신상담하며 30초 거품팩을 출시했더니 몇 달 만에 20초 거품팩이 절반 가격에 유통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올리브영의 PB 브랜드 마스크팩이 ‘리브이셀’의 제품을 모방했다는 판결을 받아 제조, 판매, 수출 금지 처분을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팔리지 않으니 해결된 것 아니냐고? 리브이셀은 반값 카피 제품 때문에 수출길이 막혔고, 작년 1분기 128억원이던 매출이 같은 기간 16억원대로 급감하는 등의 손해를 입었다. 브랜드가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은 미래의 매출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그것이 판매됐을 때 기대되는 수익을 미리 당겨쓰고, 후에 그만큼 팔지 못하면 적자가 나는 원리다. 그렇기에 대기업이 중소 브랜드를 모방하는 듀프 행위는 오리지널 브랜드의 미래를 위협하고, 존립 자체를 흔들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전설에는 이유가 있다(Legendary. For a reason)!’ 올해 초 전개된 샬롯틸버리의 글로벌 캠페인을 기억하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듀프의 타깃이 된 샬롯틸버리는 “나의 감성까지 모방할 수는 없다”며 ‘Dupe Failed(복제 실패)’ 콘텐츠를 시리즈로 업로드했다. 이런 간절한 외침이 소비자에게 닿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소비는 현실적 문제니까. 하지만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이것만은 기억하기를 바란다. ‘듀프는 모방할 원조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개발까지 몇 년이 걸린 제품을 몇 개월 만에 카피하고, 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적립해온 브랜딩에 숟가락을 올릴 때는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보여주길 바란다. 원조를 베끼면서 동시에 폄훼하는 행위는 제 얼굴에 침 뱉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백지수
    포토그래퍼
    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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