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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K쌀롱③ 1990년대 그 시절 등골 브레이커 청바지들

2025.09.08김가혜

티모시 샬라메 청바지티모시 샬라메 청바지

청바지 백포켓 하나로 기가 죽고 살던 90년대의 추억.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티모시 샬라메.

오빠 1

오빠는 ‘등골 브레이커’였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대한민국 부모들의 등골을 빼먹기 20여 년 전, IMF 같은 건 상상하지 못했던 90년대 중반까지 고등학생 주제에 리바이스 청바지만 입었다. ‘갈매기 스티치’가 들어간 백포켓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오빠. “젊음의 새 옷을 갈아 입”은 ‘뱅뱅’파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뒤태를 과시했다.

그걸 입는다고 브래드 피트(1991년 리바이스 광고 출연)나 ‘추영우 아버지’ 추승일(국내 리바이스 광고 출연)이 되는 것도 아닌데, 히어로 수트처럼 ‘파워’를 얻는 느낌이었다. ‘미국 최초의 진(JEANS)’을 어필하던 리바이스가 X세대 붐을 타고 “난 나야” 광고를 송출하자 증세는 더 심해졌다. “양복? 아빠처럼 양복 입으라고? 싫어 나는. 죽어도 난 양복 안 입을 거야. 난 나야!” 95학번 대학생이 되자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브랜드로 휘감았다. 오빠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언니의 쫄티 왼쪽 가슴에 작게 박혀 있던 ‘GV2’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90년대 브랜드 붐은 내 또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학교엔 (자장면을 족히 다섯 그릇은 사 먹을!) 만원 넘는 브랜드 양말로 자존감을 높이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이키 스우시와 ’292513=STORM’, ‘MICHIKO LONDON’ 등을 삼선 슬리퍼에 화이트로 그려 넣는 친구들도 있었다.

전국 각지 중고등학교를 돌았던 MBC 청소년 예능 프로그램 <1318 힘을 내>(1996-1997)가 우리 중학교에 왔을 땐 고가 브랜드 소비를 지향하자는 캠페인 영상을 틀었을 정도였다. 당시 초대 가수였던 김원준에게 MC 서경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김원준 씨 지금 입은 옷은 비싼 브랜드 아니죠?” 재킷 칼라에 브랜드 배지가 떡 하니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오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2.

브랜드 청바지 없이 잘 버티던 내가 자극을 받은 건 중 2 수학여행. ‘악의 없이’ 내가 입고 있던 7부 청바지 브랜드를 확인한 관광버스 ‘맨 뒷줄’ 친구들 때문이었다. 그 애들은 바지가 예뻐서 어느 브랜드인지 궁금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미 수치심을 느껴 버린 나는 그 날 이후 오빠의 옷장을 뒤졌다. 빼빼 마른 오빠의 바지는 내게도 잘 맞았다.

특히 좋아했던 브랜드는 서태지 오빠 때문에 알게 된 ‘스톰’이었다. 브랜드 로고가 하필 지퍼 부분에 붙어 있어 외출하는 길에 붙들려 여성의 바른 몸가짐(!)에 대해 2시간 넘게 혼난 적도 있지만, 스톰 청바지는 오빠의 리바이스처럼 내게 파워를 주었다. 카탈로그 속 김성재와 소지섭과 송승헌과 김하늘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것이 옷일세(292513)!’

사귄다고 해봐야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먹고 노래방 가는 게 전부였던 그 시절 남자친구는 나보다 연상인 고등학생이었는데, 옷을 정말 잘 입었다. 쫄티에 청바지, 젤로 세운 촉촉한 헤어. 그의 청바지 컬렉션엔 당대 유행하는 브랜드가 다 있었다. HOT 오빠들이 입어 알게 된 텍스리버스, 배드보이, 안전지대… 유난히 스타일이 깔끔했던 날 입고 있던 청바지 택엔 한글로 ‘잠뱅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빠 3.

몇 년 전, 반려인의 옷들을 정리하다 기겁했다. 처음 만난 2004년부터 줄기차게 입어 애착바지인가 싶었던 ‘빽바지’ 택에는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쎄…르..지오 발렌…테? 써지오 바렌테(SERGIO BALENTE)! 의자 퍼포먼스를 각인한 리복 광고(1989) 후 이종원이 모델로 나선(1991), <무도> 키즈들은 정준하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추억의 브랜드였다.

원래부터 뭘 못 버리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브랜드를 몰랐던 그 반바지에 못 잊을 추억이라도(혹시 첫사랑?) 있는지 취조에 가깝게 물었다. “대체 언제 산 걸 2004년에도 입고 있었던 거야?”

한참 기억을 더듬은 후에야 90년대 중반, 출신 지역 ‘중앙로’에서 산 것 같단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 시절에 왜 써지오 바렌테를 산 거야, 그 많은 브랜드를 두고? 어린 시절 신지 못한 한을 돈 버는 어른이 되어 푸는 남자들의 나이키 조던 컬렉션과 달리 반려인의 써지오 바렌테 바지는 어쩐지 안쓰러웠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성공적으로 부활했지만 써지오 바렌테는 이름처럼 바랜 추억이 되어서?

나의 반려인이 힙한 아재가 될 수 있도록 조만간 써지오 바렌테도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혹시 아나? 트루릴리젼을 소환한 티모시 샬라메가 어느 날 아빠 옷장에서 찾은 써지오 바렌테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지?

*<Y2K쌀롱>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고, 다시 우리를 설레게 하는 Y2K 스타와 콘텐츠에 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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