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장에 모인 스태프 모두 ‘오드리 누나’의 팬이라는 걸 알아요?
영광이에요. 다들 너무 반겨주셔서 감사했어요.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모두 퍼펙트! 준야 와타나베 드레스는 훗날 결혼식에서 입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오드리 누나’의 음악 혹은 영화<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의 ‘미라’로 당신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어요. <케데헌>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음악을 하며 K-팝과 관련한 프로젝트 제안을 많이 받아요. 너무 많아서 까다롭게 고르는 편인데, <케데헌>의 ‘나 자신에게 충실하자’는 메시지와 콘셉트를 듣고 크게 공감했어요. 살면서 애니메이션에서 김밥 먹는 장면, 꽃무늬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춤추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죠!
몇몇 장면은 언젠가 어린 시절에 본 K-드라마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익숙한 연출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어요.
한국계 뮤지션으로서 이 작품에 참여해 남다른 쾌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케데헌> 속 한 명의 플레이어로 참여했다는 게 영광스러워요. 저 역시 미국 뉴저지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 김밥 같은 음식은 냄새가 심해 숨어서 먹고는 했어요. 시간이 흘러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걸 목격하는 것도 놀랍고요.
‘미라’의 보컬은 기존 오드리 누나의 소리와는 사뭇 달랐어요. 보컬을 완성하며 어떤 이미지를 그렸어요?
‘미라’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자세히 설명해준 프로듀서의 공이 커요. 덕분에 곡의 장르 자체는 다르지만 미라와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미라는 어느 쪽에서도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걸 오히려 용기로 전환하려 애쓰는 친구였죠. 미라를 볼 때면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올해 초, 미국 단독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어요. 단독 투어는 처음이었죠?
오롯이 저 혼자 이끄는 공연은 처음이라 시작할 때만 해도 도전으로 느껴졌어요. 크고 작은 거 하나까지 선택할 게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지만, 기꺼이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어요. 음악뿐 아니라 스타일링과 무대의 전개, 조명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저를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것 역시 엄청난 성장 포인트였어요. 확실히 팬들 앞에서 모든 걸 하려니 떨리더라고요.
‘현장감’의 묘미를 경험했군요?
그 현장감! 촬영이나 녹음은 몇 번이고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데 공연은 지금, 이 순간뿐이잖아요. 한순간이기 때문에 더 사적이고 더 보람찼어요.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없는 ‘관객’이라는 요소도 있고요. 2019년, 제 음악이 시작될 때부터 저를 알고 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과 만나고, 음악과 관련한 추억을 직접 전해 들으며 왜 음악을 하고 싶은지를 반추하게 되고 더 나아갈 힘을 얻었어요. 동시에 어떤 책임감도 느꼈고요.
어떤 종류의 책임감이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스무 살 무렵에는 아티스트로서 내가 창조하고 만드는 것에 더 집중했어요. 저 자신을 위한 좀 더 이기적인 마음에 가까웠죠. 음악을 만들 때 진심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의 눈을 보며 그 중요성을 더 깊이 깨우치면서 더 큰 책임으로 다가왔어요. 그 책임이 아티스트를 더욱 의미 있고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도요.
오드리 누나의 음악이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는 어디로 향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너 자신이 되어라(Be yourself)’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자신의 결점까지도 포용하라는 메시지요. 그게 곧 나의 또 다른 힘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미라가 속한 그룹 헌트릭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도 닮았네요. 그래서 미라와 제가 더욱 닮았다고 느꼈나 봐요.(웃음)
미국 투어 기간 중 그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어요. 공립학교 프로그램과 어린 여성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죠?
저와 제 매니저 폴라(Paular)의 아이디어였어요. 폴라는 미국의 유명 매니지먼트 회사 스쿠터 브론즈 컴퍼니(Scooter Bronze Company)에서 수년간 일하며 아리아나 그란데와 저스틴 비버의 자선 단체 리더로 활동했어요. 저 역시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고요. 어머니가 배우 오드리 헵번의 열렬한 팬이라 제 이름을 ‘오드리’로 지으셨는데, 그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가 자선 활동에 헌신했기 때문이었대요. 매니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관심사가 같다는 걸 알았고,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수시로 나눴어요. 나눔은 ‘오드리 유니버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예요. 이 작은 활동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큰 프로젝트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교육 형평성에 초점을 맞춘 이유도 있어요?
교육은 일종의 희망이에요. 한번 정해진 시스템은 바뀌기 싶지 않은데 어린 세대를 교육하는 건 이 희망을 모으는 전략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어요. 희망이 모여야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선한 영향력’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시대에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1960~70년대에는 혁명과 변화를 이끈 작가, 예술가, 문화 지도자, 사상가, 정치인 등이 모두 친구이자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뜻을 함께했죠. 오늘날에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음악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결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됐으니까요.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벼요. 올해도 서울을 비롯해 호주, 일본 등 여러 나라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를 가진 관객이 있는 무대에 오를 때 떨리지는 않아요?
떨리기는 하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제가 관객 앞에서 처음 노래한 곳이 뉴욕 브루클린이었어요. 그곳에서 굉장히 냉정하고 혹독하게 배웠죠. 두세 명의 소규모 관중, 박수를 절대 치지 않는 사람, 저보다 더 크게 떠드는 사람 등 다양했어요. 관객이 어떻든 제 공연으로 전달하고 싶은 에너지를 잘 전달할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어요. 한국 관객은 늘 무한한 사랑을 퍼부어줘서 감동받아요.
무대 아래에서의 모습과 위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으흐흐흐 맞아요. 오드리 추와 추혜원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가족도 그래요. 어릴 때부터 감정적으로 예민했는데, 무대 위에만 서면 완전히 자유로워져요. 그걸 처음 느낀 게 일곱 살 때, 교회에서 열린 음악 대회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제 첫 무대였죠. 고모의 도움을 받아 ‘꽃밭에서’라는 동요를 부르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항상 수줍은 아이였는데 우주 어딘가로 이동한 것 같았죠. 그때부터 무대 위에서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무대에서 심드렁한 관객을 봐도 ‘난 열심히 잘했어, 내 음악이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이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자신감을 북돋워요. 무대에서는 이런 자신감이 더 강해지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을 느껴요. 무대 위에 있을 때 우주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게 참 신기해요.
음악을 만들 때도 무대를 상상해요?
매번 조금씩 변하지만 다양한 시각적인 요소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걸 즐기는데, 인상 깊은 비주얼을 보면 이야기를 구성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짜고 그 안에 캐릭터를 녹이는 식으로 작업해요. <Trench> 역시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었죠.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노래도 결국 한 편의 이야기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요즘은 저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관점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요. 대화를 나누며 제 자신을 더 잘 알아가기도 하고요.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으면 스튜디오에서 더 깊이 생각하고 확장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음악을 완성하는 데에 꽂혀 있어요. 지금 앨범을 만들면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요즘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음악에 푹 빠졌는데, 시대를 초월한 음악을 만든 사람을 보며 계속 배우고 있어요. 다프트 펑크(Daft Punk)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가사, 엠에프 둠(MF Doom)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이런 게 바로 타임리스(Timeless)지’ 하고 감탄해요. 학생의 자세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갈 길이 멀죠.
- 포토그래퍼
- 윤송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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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