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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아틀리에 에르메스가 선택한 작가 이요나

2025.08.26허윤선

서울의 아트는 아트 페어 밖에서도 이어진다. 스테인리스스틸 배관을 통해 끊임없이 멈추고 이동하는 삶을 구현하는 작가 이요나의 작품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만날 수 있다. 

이요나, ‘간 방 벽’, 설치 전경, 2025 ©에르메스 재단

이동하는 삶, 이요나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두 번째 삶>을 오픈하자마자 서울을 떠났다. 평소엔 뉴질랜드에 거주한다고 들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
호주 시드니에서 아트스페이스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감회가 깊다. 2010년, 석사 과정 중 혼자 시드니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탄 기억이 난다. 2018년 시드니 주립 미술관 전시에 참여했고, 같은 해 전속 갤러리 파인 아츠 시드니(Fine Arts Sydney)와 인연을 맺으며 시드니가 점점 또 다른 집처럼 느껴졌다. 이번 프로그램으로 내년 중순까지 머물 예정이다. 

‘인 트랜짓(In Transit)’이라는 영문명으로 계속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문으로 치환하면 어떤 게 가장 잘 어울리겠나?
여러 차례 고민했지만 아직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이동’ ‘통과’ ‘경유’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복합적 의미를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인 트랜짓’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개인의 삶도 통하는 것 같다. 서울, 뉴질랜드, 호주 등을 ‘이동’하며 살고 있는데, 개인적 삶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짐’의 개념이 점점 축소됐다. 진짜 필요한 것만 남고 불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덜어낸다. 어느 순간, 내 삶은 이동에 적합한 짐 가방 두세 개로 정리되는 삶의 형태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내 정체성이나 소속감에 대해 강하게 생각했는데,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여러 면이 섞이고 공존하는 상태를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품을 구상할 때 그곳의 지리적 특성이 어떻게 반영되나?
오랜 시간 체감하면서, 공간에 대한 시각과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움직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두 도시의 밀도 대비는 내 작업에서 중요한 조형적 언어가 되기도 한다. 서울의 속도감과 압축된 구조는 작업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오클랜드의 느린 호흡은 여유와 관찰의 시간을 더해준다. 제작 단계에서는 서울의 효율적인 환경이 잘 맞지만, 구상할 때는 뉴질랜드의 차분한 환경에서 더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동하는 삶 속에서 특히 어떤 부분에 집중하나? 
일상 속 다양한 공간과 사물을 관찰한다. 길을 걷다가 가구나 길거리 구조물을 보면 재료, 구조, 기능, 마감 모든 것이 궁금하다. 줄자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는데, 건축적 요소나 사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치수를 재본다. 이동 중일 때도 그렇다. 버스나 기차, 비행기 안에서도 주변 사물의 구성과 기능을 관찰하고 ‘사람이 살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하고, 또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 묻게 된다. 

이요나의 작품 하면, 스테인리스스틸 배관이라는 재료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떻게 이 재료를 발견했나?
첼로 연주와 관련된 아주 작은 부품에서 시작됐다. 아래쪽에 달린 스파이크가 첼로 몸통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움직임을 보고 그 선이 계속 바깥으로 뻗어나가 공간을 엮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서울에 머물 때, 혼자 도시를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는데, 스테인리스스틸 배관이 서울 곳곳에 유독 많이 쓰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의 짐칸 프레임, 계단의 핸드레일, 버스 내부 손잡이 바, 공중화장실과 호텔 욕실의 타월걸이처럼, 다양한 환경과 용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초기 작업에 사용하던 가느다란 로드보다 더 두껍고 자립적인 ‘배관’ 형태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느껴 쓰게 됐다.

사용해보니 작가 입장에서 어떤 장점이 있었나? 
100% 재활용할 수 있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단단하면서도 일정한 유연성을 갖고 있어 구조적 실험이 가능하다. 오브제 스케일과 건축적 스케일 모두 다룰 수 있고, 녹이 슬지 않아 실내외 모두 쓰기 좋다. 표면은 차갑지만 빛을 반사하면서 주변 환경을 받아들인다. 어디에 두어도 비교적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업 과정에서 생긴 흔적도 용접과 폴리싱을 거치면 대부분 회복된다. 대신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 용접, 벤딩에서 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습도와 온도에 따라 매번 기계 세팅을 달리할 정도다. 작은 환경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재료다. 

작년 아트선재센터와 함께한 한옥 전시도 호평을 받았다. 새하얀 갤러리를 떠나 나무가 주재료인 한옥에서 작품을 선보일 때는 어떤 구상을 했나? 
한옥의 따뜻한 목재와 금속이라는 서로 다른 재료의 대비와 조화를 많이 고민했다.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랐다. 한옥 내부뿐 아니라 계단과 옥상까지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전통과 현대,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지도록 구성했고, 관람객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시간과 속도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서울처럼 빠르고 역동적인 도시는 기능적인 면모가 강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삶은 편리해지지만, 그에 반해 기후변화 같은 부작용도 생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 구조물의 밀도를 최대로 끌어올려 기능적 요소들이 과도하게 채워질 때, 오히려 본래의 기능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요나: 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돌아보니 어떻게 남았나? 
설치하거나 마무리할 때, 내가 끌고 오던 작업이 어느 순간 공간에 맡겨지고, 공간 스스로 그 의미를 채워넣으며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바로 작업이 내 손을 떠나 공간과 하나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옥상 작업이 그랬다. 옥상에 있던 교통신호등이 실제 거리의 신호체계와 엇갈리며 만들어낸 장면도 흥미로웠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24시간 내내 불을 켜두고 싶었는데, 가로등과 교통신호등 불빛이 너무 강하다며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와 밤 11시 이후에는 꺼야 했다. 새벽에도 도시와 작업이 이어지길 바랐는데, 그 흐름이 끊긴 것이 좀 아쉬웠다. 

가을이면 서울은 아트의 도시가 된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2025(이하 프리즈 서울)’ 등 크고 작은 전시가 계속 열린다. 작가로서 어떻게 보나? 
서울의 아트 시즌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외국 미술 관계자도 많이 오고, 작가로서 내 작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분명 긍정적이다. 그와 동시에, 짧은 시기에 너무 많은 전시와 이벤트가 몰리면 각 작업이 서로 묻히거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순간도 있다. 마치 배가 너무 부르면 음식의 맛이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예술의 경험도 포화 상태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로 돌아가보면, 이번 전시는 작가 5명이 함께하는 그룹전이다. 이때 고려하는 점은? 
그룹전을 할 때는 큐레이터를 많이 신뢰한다. 안소연 선생님은 내 작업을 통해 공간을 벽처럼 나누고자 했다. 나는 그룹전이나 비엔날레처럼 여러 작업이 모이는 자리에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원치 않는다. 서로의 작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내 작업 안에 벤치나 소파 같은 공간을 두어 관객이 앉아 다른 작업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 작업이 다른 작업과 연결되고, 때로는 관객이 다른 작품을 더 잘 경험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뭐였나?
우리의 생활 속 공간을 보면, 벽과 문 같은 ‘이동하는 공간’과 침대나 소파처럼 ‘머무르는 공간’이 뚜렷하게 나뉘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두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고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벽과 문은 공간을 구분하고 질서를 만든다. 이런 구분은 분명 삶에서도 필요하다. 효율적이고 실용적이며, 행동과 소통을 정리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흐르기 쉽다. 물리적 공간에서뿐 아니라 인종, 젠더, 계급 같은 사회적 정체성까지 이런 분류 방식이 적용되며, 차이를 부각하고 때로는 차별과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벽의 역할을 하지만 많은 것들이 통과되는 벽이다. 
우리가 나누고 구분하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벽은 단절만이 아닌 동시에 연결되는 ‘열려 있는 벽’이다. 벽이지만 벽이 아니고, 경계이지만 통로이기도 한 공간.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이고, 열린 경계 안에서 더 많은 공감과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짐도 놓고, 꽃도 놓고, 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설치작품만의 매력일 수 있는데.
그날 받은 꽃 등을 즉흥적으로 작업물 위나 주변에 두었다. 작업을 ‘살 수 있는 구조(Livable Structure)’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술작품은 보통 눈으로만 감상할 때가 많고, 만지는 작업은 별도의 규칙이 따르지만, 내 작업 안에서는 그런 경계가 없다. 그 자리에서의 생활과 감상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관람객이 설치미술을 어떻게 즐겼으면 하나? 
미술관에는 경직된 분위기와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가까이 가면 경고음이나 경비원의 시선 등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그런 규칙에 도전하고 싶다. 관객의 일상이 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바란다. 관객이 작업과 공간,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며,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느끼면 좋겠다. 

당신이 다음 ‘이동’할 곳은 어디인가? 
지금은 시드니에 머물며 뉴질랜드를 오가지만, 내년에는 한국에서도 작업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새로운 공간과 경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포토그래퍼
    김상태, 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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