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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MAN / 정준원

긴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며. 배우 정준원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다.

오버사이즈 재킷은 YCH. 레이스 톱은 맥퀸(McQueen).

브라운 컷아웃 롱 코트는 YCH. 블랙 티셔츠와 팬츠, 더비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이어드 셔츠는 사카이(Sacai). 팬츠는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 실버 네크리스는 프로세스(Process).

레이어드 화이트 셔츠는 모스키노(Moschino).

레이어드 화이트 셔츠는 모스키노(Moschino).

보머 재킷은 렉토(Recto). 펀칭 니트는 노클(Nocle). 버뮤다 팬츠는 아더에러(Ader Error). 블랙 더비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발리 단체 여행까지 마쳤으니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생활> (<언슬전>)의 긴 여정이 끝이 났네요.
마지막 방송 날에 모두 모여서 ‘단관’을 했어요. 여의도 호프집이었죠. 종방연을 한 번 더 한 셈이에요. 좋은 분위기였어요.

스스로의 무드는 어땠나요?
저는 마냥 아쉽고, 서운하고….(웃음) 오래 기다리기도 했고 이제 진짜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묘했어요. 그 사이에 배우들끼리 자주 봤거든요. 이제는 이걸 빌미로 만날 기회가 없어지니까요. 단톡방이 있지만 이제 자주 보긴 어렵겠죠.

드라마 방영 전에 엄재일, 그러니까 강유석 씨를 만났는데요. 고윤정 씨와 러브라인인 거냐 했더니, 말 그대로 기겁을 하더라고요.
하하, 공개 전에는 그렇게 알고 계신 분이 많았대요. 제가 드러나지 않았고.

빨리 드러내고 싶진 않았나요?
어차피 바로 나오니까요. 아마 1, 2회 때 사돈지간인 게 비밀이었을 거예요.

배우들이 캐릭터에 녹아들고, 점점 합이 잘 맞아가는 게 보이는데 끝나버리니, 시청자로서도 섭섭하더군요.
맞아요. 촬영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 사이가 더 막역해졌어요. 촬영을 마칠 때면 이제야 몸이 풀린 느낌이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죠. 끝날 때는 항상 아쉽지만. 이번에는 유독 아쉬웠어요.

다시 하면 어떤 부분이 달라질까요?
그럴 자신은 없는데,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웃음) 그 생각은 촬영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항상 하거든요. ‘그냥 흐름에 맡기자. 그냥 운에 맡기자’ 해요. 어쨌든 나는 할 수 있는 걸 했고, 최선을 다해서 했으니까.

이 작품으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죠. 로코는 아니지만 굉장히 로코 남주 같은 역할.
그렇죠, 어려운 미션이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는데, 그 외의 것들이 설득이 될까? 윤정이가 너무 미인이니까. 안 그래도 누군지 모르는 애가 나와서 이렇게 해도 되나? 초반에 신원호 감독님과 상담을 많이 했고, 그때마다 자신감을 북돋워주셨죠.

뭐라고 하셨나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웃음) 제가 좀 느끼하고, 멋있고 이런 걸 거부하는 사람이라, 엄청난 미션이었죠. 그냥 저대로 한 것 같아요. 캐릭터를 잘 써주신 덕분이죠. 물론 저도 외적으로는 노력을 했습니다. 감량도 했고요. 제 이목구비가 큰 편이 아니라 감량하니까 표정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안 돌아가려고요.(웃음) 그거라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약간 이렇게 생각하기로….

겸손하게 말하지만, 저처럼 <VIP> <허쉬>부터 보던 사람도 많아요. 예를 들면 목소리 좋다는 얘기는 항상 나오죠. 이번 제작진도 “목소리가 너무 좋지 않냐”라고 여러 번 말했고요.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이긴 해요. 콤플렉스였던 게, 중학생 때부터 지금 목소리였어요. 작은 체구였는데, 목소리와 외모가 안 맞는 거죠. 그게 큰 고민이었어요. 데뷔 후에도 오히려 어떤 감독님은 “목소리 깔고 얘기하지 마” 하기도 했고요. 저는 그냥 얘기하는 건데도요. 내가 감독이어도 ‘날 얻다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이제 얼굴과 목소리가 맞아지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오히려 방해되곤 했다고요? “목소리가 너무 좋으니 배우를 해봐라” 이런 말을 누군가 해줬을 것 같은데요?
진짜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친구 따라 연극반 하다가 시작하게 됐죠. 고3 때. <전국청소년연극제>에 나간 게 계기가 됐어요.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던 것 같아요. 달리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요.

인생 첫 연기에 대한 반응은 어땠어요?
보러 오는 사람들이 지인이잖아요. 엄마, 아버지, 친구들, 친척들. 무조건적으로 호응이 좋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도 내가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박수인 줄 알고, ‘이제 이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장려상 같은 거를 받았어요.

요 앞에 영동고등학교 시절 맞죠? 그 유명한 교복 입던 시절.
맞습니다. 파란색 체크에 빨간 넥타이. 크크. 그때 이미 제가 공부로 대학에 가지 않을 걸 알았어요. 그런데 3년 전쯤 엄마가 “엄마는 네가 배우가 될 줄 알았어” 이러시는 거예요. 태몽이 그랬다고? 그때 완전 빌빌거리고 있을 때라 ‘엄마 꿈이 잘못됐나?’(웃음)

그래도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우호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운 게 서울예대 떨어졌을 때예요. 가나다군 다 떨어지고, 서울예대까지 떨어진 거예요. 버스 뒷좌석에서 폭풍 오열을 하고 집 앞 상가 화장실에서 세수한 다음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괜찮아 또 하면 되지” 하는데, 또 오열했죠. 그때도 그러셨어요.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렇게 속상한 거야. 좋아하는 거 해서 다행이다.”

어머님이 교육방송 드라마에 나오시는 분 같네요. 그렇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되지 않나요?
그래서 더 죄송했어요. 항상 단역 아니면 조연인 데다 작품 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 주연 배우 스케줄처럼 1년에 한두 작품밖에 못하니까. 맨날 집에 있고 해도 항상 믿어주셨어요.

그런 인고의 세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건 연기다”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나요?
딱 그거였어요. 이것보다 재밌는 일이 없었고, 할 줄 아는 게 진짜 없었어요, 연기밖에는.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까 30대 후반이 되어 있었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90년대생 이후 출생자’ 이러니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어디 있는 것 같아요?
뭐, 마찬가지예요. 그땐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이 작품이 탁 잡아준 거죠. 그래서 벼랑 끝으로 다시 올라왔어요. 사람들은 유명한 배우들만 기억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평범한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아까 표현한 일상을 생각하면 작품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데도 도가 텄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친구들한테 “좋겠다. 다달이 어쨌든 월급 들어오고 안정적이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친구들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니가 제일 부럽다”고. 근데 저는 일 안 하면 100원도 안 들어와요. 다행인 건 저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까. 영화 <독전>을 기점으로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 배우만 했거든요. 출연료 받으면 저축하고 쪼개서 국내 여행 다녔어요.

어떤 여행을 했어요?
이제보니 도피성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무작정 버티는 거죠. 그거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저렴한 평일에, 사람 없고 맛있는 것 많은 곳이요. 고성 같은 강원도를 자주 가요.

그 시절 가장 위안이 된 건 뭐였나요?
말하기 조금 창피한데 자기최면을 걸어요. ‘내가 이렇게 지금 시간이 남아돈다고? 나 놀 수 있는 거 얼마 안 남았다’ 이런 최면을 걸어요. 근데 이게 하루에도 수백 번 왔다 갔다 해요….(웃음) 그것도 진짜 노력이 필요해요.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무섭거든요. 진짜 너무 무서워요.

<언슬전> 촬영할 때는 정말 신났겠는데요?
6개월 동안 약간 다른 세상에 있다 온 것처럼 현실을 좀 잊었어요. 다시 현재로 돌아와 감사하게도 보내주시는 대본을 읽고 또 읽는 중이에요.

얼마 안 남았겠네요, 쉬는 것도.
일상을 평범하게 잘 살아야 좋은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지금 이 선선한 초여름 날씨를 즐기고 싶어요.

참, 여름에 인생 첫 팬 미팅도 열리잖아요? 춤과 노래를 해야 할 텐데, 준비됐나요?
저 너무 걱정돼요. 춤은 죽는 게 나아요.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드라마 촬영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그날이 오면’ 챌린지였어요. 유석이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차라리 노래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래방에 가면 뭐 부르는데요?
‘숙녀에게’요. 존박 노래도 부르고요.

제가 아는 1989년에 발표된 변진섭의 ‘숙녀에게’ 맞습니까?
맞아요. 저는 제일 좋은 건 다 옛날에 나왔다고 생각해서. 팬 미팅에선 진짜 뭘 불러야 할까요?

    포토그래퍼
    김선혜
    스타일리스트
    정혜진
    헤어&메이크업
    장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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