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古), 복 복(福), 쌍희 희(囍). 오래된 아름다움에 대한 김성호와 김지은 부부의 깊은 애정으로 탄생한 고가구 상점 ‘고복희(古福囍)’는 이들의 취향을 품고 훨훨 날 준비를 마쳤다.

올해 동대문구에 ‘고복희 아뜰리에(이하 아뜰리에)’와 ‘고복희 소품상점(이하 소품상점)’을 열었다. 고가구와 골동을 수집하게 된 계기는?
성호 결혼을 준비하면서 첫 골동을 들였다. 작은 것 하나하나 소품처럼 모으다 보니 자연스레 개수도 늘었다. 벌써 8년째다. 얼마 전 장만한 해태도 두 달에 나눠 값을 치르고 들여왔다.
지은 첫 골동인 떡살은 여전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원래는 떡에 무늬를 새기던 용도의 물건이지만, 지금은 도장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아파트 선반을 골동으로 채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가구에도 관심이 생겼다. 작은 함부터 높이 2m가 넘는 커다란 찬장까지 다양하게 수집했는데, 단순히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 쓰임을 다한다.
수집을 위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다. 장한평에 위치한 아뜰리에는 원래 부부의 작업실이자 수집 창고였다던데?
지은 그렇다.(웃음) 수량도 많아지고, 크기도 커지다 보니….
성호 아뜰리에에 놓여 있는 강원도 찬장만 해도 크기가 엄청나다. 지은이 4년간 탐내던 것을 창고를 마련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들였다.
창고에 차곡차곡 모으던 수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은 둘이서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구를 이리저리 배치하며 창고를 꾸미다 보니 우리가 모은 물건이 공간과 잘 어우러진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일단 기록부터 하자 싶어 사진을 찍었고, SNS에 업로드하며 공개했는데,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성호 골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의 취향은 다르다. 나는 부채나 해태, 백자 같은 작은 물건을 좋아하는 반면, 지은은 커다란 선반이나 찬장 같은 큰 물건을 선호한다. 취향 차이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을 거다,
소품상점 역시 장한평 바로 옆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위치한다. 성수나 한남 같은 ‘핫플’ 말고 왜 그곳에 자리 잡았나?
지은 고미술계에서는 답십리와 장한평이 근본이다.(웃음)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보낸 어르신들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기도 해서 더 마음이 쓰였다. 1980년대에는 어깨를 안 부딪치고는 고미술 상가를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고 들었다. 상상이 안 된다.
성호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고가구와 골동을 구경하려고 자주 찾았다. 한번 방문하면 최소 2~3시간 이상 머무르게 되더라. 그래서 창고도 장한평에 얻었다. 집까지 물건을 옮길 필요가 없어 편리하기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 만약 고복희가 성수나 한남에 있었다면 특이하긴 했겠지만, 고가구나 골동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와는 완벽히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각각의 공간은 어떻게 구성했나?
지은 아뜰리에에는 덩치가 큰 가구가 자리하는 반면, 소품상점에는 집에 놔도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모여 있다. 실제 공간 안에서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상상해보고 싶다면 아뜰리에를, 한눈에 들어오는 귀여운 물건을 구경하고 싶다면 소품상점을 찾으면 된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고복희를 찾나?
성호 평소 고가구나 골동에 관심 있는 이들도 반갑지만,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이 고복희를 찾아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옛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거니까.
지은 골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어피 안경집을 가방에 키 링처럼 매달고 다니는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인적이 드문 고미술 상가에 활기가 돈다.
그야말로 고복희가 불러온 변화가 아닐까?
성호 실제로 고미술 상가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사간다’고. 고복희에는 없는 물건을 찾는 손님에게 옆 상점을 안내한 적이 있는데, 곧장 커다란 가구를 구매하더라.
한국적 미감이 선명하면서도 우리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것을 찾는다고 했다. 고복희만의 큐레이션 기준을 설명한다면?
지은 기존에 소장하고 있는 물건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와도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너무 장식이 많고 고풍스러운 물건보다는 약간의 현대적 미감이 가미된 모던한 스타일의 물건이 주를 이룬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구한말을 지나온 친구들이다.
성호 연식으로 따지면 100년에서 150년 정도 된 거다.
100년이 넘은 물건들은 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고가구를 더 오래 보고, 쓰기 위한 관리법이 있나?
지은 습도 유지가 관건이다. 겨울이면 물에 적신 솜을 담은 종지를 가구마다 넣어둔다. 안 그래도 건조한 겨울에 히터까지 틀면 가구가 다 터진다. 반대로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가구가 불지 않게 에어컨을 활용한다. 기름칠도 꾸준히 한다. 100년 넘는 시간을 견딘 가구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정도 관리는 얼마든지!
골동을 탐구하기 위해 많은 곳을 방문했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소개한다면?
지은 최근 합천 해인사에 다녀왔다. 오랜 역사를 품은 곳을 찾으면 느닷없이 선조의 지혜에 대한 동경심이 느껴진다.
성호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열린 호림박물관 특별전 <향香,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 가장 놀라웠던 건 우리 선조가 향을 엄청 즐겼다는 점이다. 궁궐 안에는 제사에 쓰이는 향료의 수급과 관리를 전담하는 향실과 향을 다루는 향장이 있었다고 한다. 향과 관련된 도구도 굉장히 많았는데, 흔히 우리가 아는 노리개에도 향을 넣어 다닐 수 있었고, 향주머니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 외에 연적, 백자, 향합, 접시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향 문화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더라. 전시를 보고 난 뒤, 향과 연관된 소품에 관심이 더 깊어졌다.

고가구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무수히 탄생하고 사라지는 오늘날, 세상에 하나뿐인 고가구는 어떤 존재로 다가오나?
지은 썼던 흔적, 수리한 흔적 등 가구에 남은 모든 흔적들. 컬렉터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다쳐서 깨진 걸 수리하는 게 좋다. 그런 흔적이 가구에 남아 있다는 건 그 가구가 지나온 역사를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니까.
성호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의 가구는 세련되고 아름답지만, 그 쓰임새를 상상하게 되지는 않는다. 반면 골동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물건은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부채는 왜 저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기와에는 왜 저런 얼굴을 새겼을까?’ 산업화가 되기 전, 하나하나 필요에 따라 맞춤으로 만든 물건이다 보니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지은 더불어 인주가 묻은 떡살처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골동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보면 좋겠다.
성호 중고가 빈티지로 불리며 그 가치를 인정받듯, 골동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 것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고가구 수집은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고가구 수집 전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성호 단조롭던 삶이 확장됐다. 평생 알지 못했을 사람들과 만나 취향을 나누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취향인 줄 알았는데,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짜릿했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골동을 거래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는 중이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고가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새로 배운 것도 있나?
지은 과한 욕심을 내지 말자.(웃음) 그러다 보면 꼭 탈이 생긴다. 컬렉팅뿐 아니라 인생의 전 과정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알고 자각하는 것.
성호 겸손함. 내가 알고 이해하던 것들이 사실은 더 깊이 있는 뒷이야기를 품고 있거나 잘못된 정보일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게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끝없이 의심하며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불신이 가져온 의심이 아니라 믿기 위한 의심이다. 그래서 누구의 말이든 귀담아듣고 정보를 찾아보는 게 몸에 뱄다.
고가구와 골동을 직접 돌보고 관리하며 몰두의 시간을 보낼 것 같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열정을 쏟는 일은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나?
성호 지은과 가족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요소의 범위가 넓고 새롭다는 건 굉장히 좋은 신호다. 경매에 나온 물건이라든지 새로 관심이 가는 골동이 끊임없이 생기다 보니 대화할 거리가 매일 늘어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지은 나랑 너무 다른데….(웃음) 아무도 없는 아뜰리에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가장 만족감을 느낀다. 내 취향으로 가득 찬 곳에서 향 하나 피우고 가만히 앉아 있는 일.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스스로의 취향이나 관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성호 ‘수집가’ ‘컬렉터’라는 호칭은 왠지 어색하다. 누구든 자신만의 컬렉션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모은 노트, 스티커, 레고 같은 것들 말이다. 모두 같은 맥락이다. 뭔가를 탐구하는 행위에 대해 ‘컬렉팅’이라는 거창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천천히 연결하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생 때부터 낡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사진 동아리에서 출사를 나가면 경동시장, 석상, 한약재 거리 같은 곳만 찾아다녔다. 골동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남은 환경이 편했던 거다.
지은 나도 그렇다. 대학생 시절, 서양 미술사는 잘 안 듣고 한국 미술사만 골라 들었다. 그냥 그게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즐기며 사는 것 같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은 나 자신을 알고, 정도를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호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자주 고민하는 편이다.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며 젊은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보니, 그 고민에 대한 여러 시각을 접하게 된다. 골동도 마찬가지다. 골동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는 경험은 행복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지은 가늘고 길게 지속하기. ‘고복희’ 하면 바로 ‘고가구 큐레이션 상점’이 떠오르면 좋겠다. 여러 상황이 따라야겠지만, 현재 고미술 상가에 자리 잡고 계시는 분들처럼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꾸준히 이어가는 게 목표다.
성호 그렇게 오래 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게 만드는 것. 지금은 상점이 100개가 넘지만 매년 그 수가 줄고 있다. 10년 안에 반 이상이 문을 닫지 않을까. 자생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북적이는 고미술 상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 포토그래퍼
- 오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