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NESS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와 전시에서 포착한 디자인 위크 모먼트 (1)

2025.05.27허윤선

해마다 4월이면, 세계의 관심이 밀라노로 향한다.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와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외 전시 ‘푸오리 살로네’가 열리기 때문. 여기에 패션 하우스까지 뛰어들면서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감각의 축제가 되고 있다.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를 단순히 가구 박람회로 기억하지 말 것. 점점 경계를 넓히고 있는 ‘살로네 델 모빌레’는 올해 전 세계 37개국의 전시업체 2103곳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를 선보였고,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의 공식 전시와 이벤트는 1066개에 달했다. 참여 브랜드와 기업은 자신들의 철학과 꿈을 펼치고, 관람객은 새로운 영감과 감각을 채운다. 예전처럼 제품을 소개하던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를 하나의 무대처럼 활용해 디자인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몰입형 전시는 202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가장 큰 트렌드였다.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새롭게 협업함은 기본,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계속된다.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의 캠페인 슬로건이 ‘인간을 위한 생각(Thoughts for Human)’이었을 정도로 기후변화는 묵직한 화두로 다가왔다. 캠페인 디자인을 맡은 사진작가 빌 더긴(Bill Durgin)은 나무, 금속, 패브릭, 플라스틱이 사람의 피부와 맞닿은 장면을 담으며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전했고, 친환경 전시 부스를 위한 그린 가이드라인도 강화하며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패션 하우스의 존재감도 해마다 커진다. 홈웨어를 앞세운 이들은 열정을 불태우며 패션의 영역을 일상으로 확장했다. 더 로우(The Row)마저도 인도 카슈미르 장인이 600시간 걸려 손으로 짠 직물과 퀼팅 담요로 구성한 첫 홈 컬렉션을 선보였을 정도! 이렇듯 이제는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를 앉고 덮고 음미할 수도 있게 된 것. 모두가 가장 예민한 감각을 드러내며 명실상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디자인 행사가 되고 있는, 2025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빛나는 모먼트들. 

1 HERMES 

‘하나의 제품은 감정이 될 수 있다’는 철학 아래, 라 펠로타(La Pelota)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캐시미어 담요와 유리 장인이 만든 오브제에 이어 토마스 알론소(Tomas Alonso)의 테이블에 주목할 것. 아이디어와 소재를 넘나들며, 상반된 요소를 조화롭게 구성해온 작가는 유리 하부 위에 일본 전통 기법으로 만든 삼나무 원형 박스를 더해 테이블을 완성했다. 


2 VERSACE 

하렘 체어에 주목할 것! 이번 디자인 위크에서 베르사체는 하우스 오브 닌자(Haus of Ninja)와 협업해 2010년에 처음 출시된 하렘 체어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밀라노를 기반으로 한 하우스 오브 닌자는 설치 예술과 플로럴 아트 작업을 통해 예술과 디자인 세계를 탐색하는 프로젝트로, 지속 가능성과 자연에 대한 존중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사진작가 루카 그로톨리(Luca Grottoli)가 촬영한 매혹적 이미지를 참고할 것. 이번에 선보이는 ‘하렘 암체어’는 베르사체 홈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세련된 안락함과 베개처럼 부드러운 감각을 표현한다. 조각적인 스틸 구조는 풍성한 패딩과 함께 다양한 소재와 가죽으로 정성스럽게 완성되었고, 좌석은 세 겹의 쿠션이 풍성하게 층을 이룬다. 등받이의 금색 메두사 디테일도 잊지말길. 일부 제품은 베르사체 공식 이커머스를 통해 한정 판매했다. 


3 LOEWE

로에베가 차린 티 파티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로에베는 티포트에 주목하며 유머러스한 전시를 완성했다. 밀라노 팔라초 치테리오(Palazzo Citterio)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 디자이너, 건축가 25명이 작업한 티포트로 구성된 컬렉션을 선보이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관객을 즐겁게 했다. 이번 컬렉션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티포트에 대해 저마다 고유한 접근 방식을 선보인다. 전 세계의 다도, 차와 관련된 문화, 도자기 및 세라믹 같은 전통적 소재를 재해석했고, 특히 티포트의 손잡이와 주둥이 부분, 유약을 바르는 여부 등이 흥미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민석 건축가, 이인진 도예가가 25인의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작품 외에 이번 디자인 위크를 위해 특별한 컬렉션 ‘로에베 티포트(Teapots by Loewe)’도 감상할 수 있었다. 직조 가죽으로 완성한 코스터, 티포트 덮개, 세라믹 포트에 담긴 얼그레이 티 향초는 물론 갈리시아 지역의 점토를 이용해 스페인 장인과 협업한 티포트 등이다. 찻주전자에 차가 빠질 수는 없는 일. 포스트카드 티스(Postcard Teas)와 손잡고 시그너처 티 블렌드도 제작했다. 인도의 홍차잎, 프랑스 레몬 버베나, 모로코 장미, 크로아티아 캐머마일,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베르가모트 오일을 조합해 완성한 이 차의 이름은 ‘피오리 에 사포리(Fiori e Sapori)’로 꽃과 풍미라는 뜻. 


4 GUCCI 

올해 구찌의 전시는 브랜드의 유산인 대나무 소재에 집중하며 <Gucci | Bamboo Encounters>로 명명되었다. 스튜디오 2050+와 창립자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Ippolito Pestellini Laparelli)가 큐레이팅과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16세기 건축 유산인 산 심플리치아노(San Simpliciano) 수도원 회랑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한국의 이시산 작가를 포함한 전 세계 아티스트 7인이 참여해 1947년 구찌의 대나무 가방 손잡이에서 영감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시산은 한국의 미학과 현대적 기법을 결합하며, 소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5 LORO PIANA

로로피아나는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몰입형 전시로 호평받았다. 로로피아나 밀라노 본사 안뜰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디모레밀라노(DimoreMilano)가 선보인 설치 작품 ‘고요한 밤(La Prima Notte di Quiete)’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작품 제목도 1970년대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그 시절 영화관 로비를 아름답게 되살렸다. 이번 설치 작품은 다이닝 룸, 거실, 침실, 욕실, 작은 정원 등으로 구성된 ‘로로피아나 하우스’를 통해 외부의 소음과 혼란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로로피아나 특유의 캐시미어, 울, 벨벳, 사이잘 등 자연 소재로 채워졌으며, 공간에 부드럽고 차분한 깊이를 더했다. 


6 MIU MIU

미우미우의 두 번째 문학 클럽 ‘여성의 교육(A Woman’s Education)’에서는 어떤 작품이 등장했을까? 미우치아 프라다가 기획에 직접 참여해 더욱 주목받은 이 문학 클럽은, 현대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미우미우의 기본 철학을 담고 있다. 이번 문학 클럽에서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시몬 드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와 일본 쇼와 시대 여성 작가 엔치 후미코의 <기다리는 세월>이 선정됐다. 두 작품은 모두 여성의 사랑과 성, 욕망 등을 다루면서 당시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글의 힘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다른 여성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두 작품을 주제로 한 대담을 비롯해 음악 공연과 산문 및 시 낭독이 진행됐다. 


7 SAINT LAURENT

생 로랑과 안토니 바카렐로의 키워드는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생전에 페리앙의 작품을 좋아해 평생 그의 작품을 수집한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번 디자인 위크에서 생 로랑은 1943년부터 1967년까지 페리앙이 디자인한 가구 4점을 선보였는데, 프로토타입이나 스케치 형태로만 존재하던 작품을 세밀하게 재현한 것으로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페리앙의 책상 위에 놓인 모형으로 존재한 ‘밀푀유 테이블(Table Mille-Feuilles)’은 그야말로 새롭게 태어났다. 페리앙은 이 테이블의 축소 모형을 오랫동안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뒀지만, 상판 가공이 어려워 실제로 제작하지는 않았는데, 이번 협업을 통해 처음으로 실물 크기의 완전한 가구로 탄생했다. 


8 PRADA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기차의 탄생. 밀라노 중앙역에서 열린 ‘프라다 프레임’의 네 번째 행사 ‘인 트랜짓(In Transit)’은 단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프라다 프레임’은 매년 주제를 선정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뽑아 토론하는 심포지엄이다. 디자인 및 리서치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가 큐레이팅한 이번 심포지엄은 ‘인 트랜짓’을 주제로, 모빌리티, 디자인,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디지털 혁명과 글로벌 유통 네트워크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인터넷과 대규모 물류 시스템이 상징하는 인프라의 발전과 조달 및 유통 방식의 혁신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나? 상품과 제품은 지리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반면 인간의 이동은 제한받는 현실을 비교하며, 현대사회의 모순을 고찰한다. 이런 주제를 다룸에 있어 최근 복원한 1950년대 지오 폰티(Gio Ponti)와 줄리오 미놀레티(Giulio Minoletti)가 디자인한 아를레키노(Arlecchino) 열차와 밀라노 중앙역 내의 과거 이탈리아 왕족과 국가원수의 전용 대기실이던 역사적인 파딜리오네 레알레(Padiglione Reale)는 더없이 완벽했다는 평. 


9 LOUIS VUITTON

팔라초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에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확장한 홈 컬렉션을 공개했다.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와 오리지널 트렁크, 그리고 새롭게 선보이는 홈 컬렉션까지 아우르며 디자인 부문의 존재감을 강조했다. 인디아 마흐다비(India Mahdavi),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 에스투디오 캄파나(Estudio Campana) 등 세계적인 장인과 디자이너들이 함께한 리미티드 에디션 컬렉션뿐 아니라, 가구와 조명은 물론 데코 라인, 홈 텍스타일, 테이블웨어, 유니크 게임 아이템까지 전례 없는 규모. 1854년부터 트렁크 제작의 전통을 이어온 루이 비통은 트렁크도 잊지 않았다. 곳곳에 상징적 트렁크를 배치해 메종 컬렉션과의 조화를 꾀했다.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