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2004. <지구오락실 3>에서 이은지가 구연한 그 시절 명작들.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11.08~2004.12.28)
예능 찍으러 갔다가 20년 전 드라마 폐인이 돼버린 MZ들. <지구오락실 3>의 미미, 이영지, 안유진입니다. 이은지가 인생 드라마로 이 작품을 소개했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호주로 입양돼 거리의 아이로 자란 ‘무혁(소지섭)’이 우연히 만난 ‘은채(임수정)’를 통해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 <미안하다, 사랑한다>. 당시 임수정이 입은 무지개 니트와 어그 부츠의 대유행으로 지하철 같은 칸에서 도플갱어를 만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소지섭은 소지섭만이 소화할 수 있는 폭탄머리와 그런지 패션으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은지는 무혁의 친모이자 왕년의 톱스타 배우 ‘오들희(이혜영)’를 복붙 수준으로 재연했는데요. 친아들을 친아들인지 몰라보는 오들희와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는 미스터 차, 무혁의 ‘라면신’은 미사 폐인들의 눈물 버튼으로 통합니다.
<발리에서 생긴 일>(2003.12.24~2004.03.07)

<미사> 차무혁이 대한민국 여성의 울음 버튼이 되기 전, 울음을 삼키는 통화로 대한민국 여심을 뒤흔든 남자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방영 시작 당시 스물일곱 살의 조인성이 연기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 재벌 위의 귀족처럼 자라 머리 나쁜 주변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 거만한 인간을 울린 건, 가진 거라곤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동생을 빚더미에 올린 오빠가 전부인 이수정(하지원)이었죠. 둘은 재민의 정혼자 최영주(박예진)와 영주가 잊지 못하는 강인욱(소지섭)과 얽히고 설킵니다. 전형적인 캔디와 테리우스의 로맨스인가 싶지만, 비극적인 엔딩으로 화제가 되었죠. 주제가 ‘My Love’는 이 드라마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난 안 되겠니 이 생에서, 다음 생에선 되겠니?’
<파리의 연인>(2004.06.12~2004.08.15)
<지구오락실> 첫 시즌에 이영지가 멤버들에게 소개한 2000년대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57.6%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이었습니다. “내 여자한테서 손 떼!” 소리 치는 까칠한 남자 한기주(박신양)와 “이 안에 너 있다” 세상 로맨틱하게 고백하는 윤수혁(이동건). 극중 강태영(김정은)에게 과몰입 해 ‘사촌 지간인 재벌 2세 둘이 나를 좋아하면 어쩌지?’라는 쓸데 없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던 건 김은숙 작가의 홀리는 대사들 때문이었죠.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한기주에게 “이 꼴을 하고서 어떻게 그래요!” 울먹이며 한 방 먹이는 강태영, 이어지는 박력 키스… 지금까지 이 장면을 따라 한 방송인은 무수히 많았지만, 이은지의 구연이 압권인 건 호흡 때문인데요. 박신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정은으로 갈아 타는 게 포인트입니다.